10년만에 세 번째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사법개혁 논의에는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 대법원이 종래의 입장과 정반대로 로스쿨제도 시행에 찬성한다는 것이다. 들리는 바로는 그 태도가 자못 적극적이어서 검찰이나 변협 쪽의 불만이 적지 않다고 한다.
로스쿨제도는 말 그대로 사법체제의 근본을 다시 짜는 선택이다. 사법고시에 의존하는 관료사법체제 대신 변호사자격증에서 출발하는 법전문직체제를 시작하겠다는 결단이다. 그렇다면 몇 년 전까지 고집스럽게 반대하던 입장을 바꾸어 대법원이 극적인 방향전환을 선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매년 5월쯤 미국의 명문 로스쿨들에 가면, 이제 곧 연수를 마치고 법원행정처에 배치될 엘리트 한국 판사들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그 영향이겠지만, 대법원은 지난 10년동안 로스쿨제도에 기반한 미국식 체제에서 판사들이 압도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검사나 변호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미국 판사들의 권위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로스쿨이나 법조일원화, 심지어는 배심제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지난 달 기수와 서열을 뛰어넘어 김영란 부장판사가 신임 대법관후보로 지명된 것 역시 이런 구상의 일단을 짐작케하는 사건이다. 시민사회의 환영을 받은 대법원은 이제 사실심의 강화를 명분으로 법원의 재판부 숫자를 늘리고자 할 것이 틀림없다. 사법서비스의 확대를 주장해 온 시민사회로서는 반대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이고, 결과적으로 사법부의 고질적인 인사적체에는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다. 대법관 승진에서 탈락한 고위법관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법부 전체로 보자면 이처럼 경제적인 거래가 또 있을 것인가?
‘전관예우’라는 말에서 보듯이 지금껏 판사직은 사실상 변호사직의 수련과정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로스쿨제도와 법조일원화가 시작되면 이런 인식은 바뀔 수밖에 없다. 대법관이든 아니든 판사직은 법조경력의 종착지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판사가 누리는 권위 역시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고양될 것이다. 학계와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사법개혁이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라면, 굳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한 것 같다. 바로 이것이 사법개혁의 각종 이슈에 관하여 대법원이 지금 일종의 일괄타결안을 선도하고 있는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법원의 이러한 입장선회를 정치권이 수용할 태세를 보이면서 사법개혁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정원제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제도를 시행하며 법조일원화를 주장하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오랜 요청이 드디어 본격적인 제도개혁의 차원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사법개혁논의 자체에 대하여 ‘사법이 흔들린다’는 투의 여론몰이가 시도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이다. 사회변화와 그것을 올라타려는 대법원의 물밑구상을 통찰하지 못한 채 파편적인 불만에만 집중하는 것은 관료사법체제의 기득권에만 집착하는 세력에게 반전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뿐이다. 시민을 위한 사법개혁의 대의에 공감할수록 일차원적인 문제제기를 그만두고, 구체적인 제도개혁논의 과정에 집중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병통치약이 있을 수 없듯이, 대법원이 주도하는 변화의 방향에도 경계해야 할 문제점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위에서 지적한 판사집단, 나아가 법률가집단 전체의 패권화는 장기적으로 민주정치의 위해요소가 될 수 있으며, 이에 관하여 합리적인 인사제도와 시민감시체제가 구비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현대정치에서 사법의 정치적 역할이 강화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지만, 동시에 사법 자체에 대한 민주적 통제 역시 반드시 요청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글이 주목하는 바와 같이, 사법개혁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대법원이 혹시 그와 같은 구상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새로운 사법체제의 문제점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국운/한동대 교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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