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후손들이 겨레의 땅을 빼앗고 있다”
친일재산환수법 발의를 계기로 짚어본 친일파 재산 현황과 그 대책
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토지조사부(1910년대, 일제시대)에 따르면 땅에 대한 권리를 최초로 인정 받은 사람은 이근호다. 이후 그 소유권 관계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가운데 이를 국가가 국유화한 것은 원인 없는 행위다. 이에 국가의 소유권은 무효이므로 소유권 보존을 말소하라”
을사오적 이근택의 친형인 친일파 이근호의 후손이 제기한 재산반환소송에서 지난해 10월 15일 수원지법은 이처럼 친일파 후손의 손을 들어줬다. ‘원인 없는’이라는 표현대로 국가 소유에 법률적 근거가 없기에 헌법 정신을 따라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서다.
이처럼 일제시대 친일파 후손들에 의한 재산환수 소송과 그 승소가 잇따르는 가운데 그들의 땅 되찾기를 막고 이를 국고로 환수할 가능성이 열렸다.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을 필두로 과반인 의원 169명이 24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환수 특별법(이하 친일재산환수법)’을 공동 발의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반환 소송에서 법조계는 ‘사유재산보호의 원칙’에 따라 친일파의 재산권과 상속에 따른 재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하지만 친일재산환수법은 이 같은 법리를 막을 수 있는 입법안이다.
같은 날 최의원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연구에 의해 추가로 확인된 대표적 친일파 이완용과 송병준 등 주요 친일파 11명이 일제시대에 보유했던 토지 약 345만평도 친일재산환수법이 없으면 언제든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존에 확인된 이들의 땅 95만평까지 더하면 모두 약 440만평으로 토지 가격만 시가로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가 친일파 후손에게 땅을 빼앗기다’
친일파 후손들이 재산반환소송의 근거로 제시하는 일제시대 토지조사부. 사진의 것은 이완용의 토지조사부이다.ⓒ미디어다음
친일재산환수법이 없어서 친일파 후손이 승소한 가장 최근의 사례는 이근호 후손이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일대의 땅을 되찾는 1심 재판에서 승소한 것이다. 이근호 후손은 국가를 상대로 2건의 소송을 걸었다. 그 중 남양동 인근의 707평 짜리 도로를 따라 편입된 국유지에 대한 소송에서 국가가 1심에서 패소, 항소한 상태다.
국가를 대리해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 재산관리과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국회의 친일재산환수법 공동발의 소식을 반겼다. 조만간 법원에 제출할 항소 이유서에 법적인 근거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발의 이후 임시국회에서 법안 통과 후 발효할 때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어 눈을 빤히 뜨고 친일파 후손에게 패소했기에 그에게 친일재산환수법 공동발의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소송의 대상인 남양동 땅은 거의 도로에 편입돼 있다. 하지만 화성시청이 2001년 그곳으로 옮긴 이후 도로 주변의 땅들은 천정부지로 값이 뛰었다. 당시 평당 30~40만원 하던 땅이 최근에는 400~500만원을 호가한다. 인근의 못쓰는 땅, 버려진 땅도 70~80만원이 최저가다. 다른 소송 대상인 42평 짜리 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씨의 후손이 차후 상급 법원에서도 승소를 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도로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지, 어느 시점에서 새로 생긴 것인지를 먼저 가려내야 한다. 원래 있던 도로라면 공공을 위한 제공 차원에서 계속 국유지가 된다. 반대의 경우 이씨의 후손은 국가에 땅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때 보상금은 인근의 땅 값을 기준으로 매겨질 수밖에 없다. 보상 받을 확률도 반반이다. 친일재산환수법이 없을 때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이근호의 땅은 일제시대 초창기의 토지조사부 확인 결과 이 일대(당시에는 경기도 수원군 음덕면 남장리)에 모두 1만8천여평으로 밝혀졌다. 그 후손이 소송을 진행한 근거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이근호의 땅은 충북 음성군과 경기도 안성시, 시흥시 등 모두 34만평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헌법을 어긴 사람들이 민법으로 소송을 걸다뇨?”
지난해 1월 송병준 후손들의 소송건에 대한 재판이 있던 날 시민단체 인천 평통사 회원들이 서울지법 앞에서 "송씨 후손들의 소송은 반민족 행위"라고 규탄하고 있다. [제공=인천 평통사]
정미조약에 앞장선 ‘정미7적’ 중 한 명인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은 인천시 부평의 미군부대터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미군이 부대 부지를 2008년 12월31일 인천시에 반환한다. 인천시는 부대를 정부(국방부)에게서 사야 하고 정부는 그 돈으로 1천억원 이상의 부대이전비용을 댈 계획.
송병준 후손이 소송을 낸 시점은 이 같은 반환결정 소식이 알려진 이후다. 송씨 후손이 승소하면 시민 세금으로 부대 이전 비용의 상당 부분을 감당해야 할 판이다.
송씨 후손의 소송으로 부대 근처 한 아파트 주민들이 지난해 여름 동안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송씨 후손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2792평의 땅에 가등기를 했기 때문이다. 작은 평수였지만 아파트 공동부지가 포함돼 아파트 매매 등이 지난 여름 한 동안 중단된 것. 현재는 송씨 후손이 가등기를 취소한 상태다.
웃지 못할 일이 뒤이어 벌어졌다. 민영환씨 후손들이 소송 대상 부지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그들은 1910년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를 근거로 들었다. 원래 민영환씨 땅이었던 그곳을 송병준이 가로챘다는 점을 호소하는 광고였다. 이후 이른바 3자 간 소송이 되자 재판부는 일단 재판 진행을 연기했다.
송씨 후손은 토지조사부에 등록된 송병준의 땅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만 소송을 냈다. 여기서 승소할 경우 소송을 확대할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소송 대상이 된 부지 규모는 전답 7필지, 2792평. 하지만 토지조사부에 등록된 전체 땅은 13여만평이다. 공시지가로만 3000억원대로 부평에서도 노른자위에 속하는 땅. 토지조사부를 근거로 하면 송병준은 경기 고양시 일대 70만6천평 등 수도권에만 모두 161만9000평을 소유한 것으로 돼 있다. 송씨 후손은 강원도 철원군 일대 땅의 반환 소송에서는 이미 승소했다.
전동석 인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인천평통사) 사무국장은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는 한 나라의 헌법을 부정한 것이다”라며 “그들의 땅을 하위법인 민법에 기대서 되찾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미 땅을 되찾거나 되찾는 과정에 있는 친일파’
지금까지 이완용 후손이 총 17건의 토지반환소송을 벌였고, 송병준의 후손은 4건, 이근호의 후손은 5건, 윤덕영과 이재극, 이해창, 이기용의 후손이 각각 1건씩 소송을 냈다. 총 31건으로 1990년 이전에 1건에 그쳤던 것이 1990년대에 23건, 2000년 이후에 7건이 접수되면서 점차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자료=최용규 위원실, 민족문제연구소]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는데 앞장섰던 이완용의 후손도 97년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일대 712평을 되찾았다. 그 시가는 30억원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서울 고법에서는 “친일파의 땅이라도 법률적 근거 없이 빼앗을 수 없다”며 이씨 후손의 손을 들어줬다. 이씨 후손들은 또 경기도 광주군 도척면 일대 필지 900여평도 이미 되찾은 상태다. 이밖에도 이완용은 경기도 김포 일대 80만평을 비롯해 경기도 광주 일대 9만평, 고양 일대 8만6000평 등 모두 106만평을 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까지 국가가 전혀 몰랐거나 손을 안 댄 것이 친일파 재산부분”
최용규 의원과 함께 이번 연구를 진행해온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동현 박사(역사학). 그는 “조사하면서 국가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손도 안 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우리 사회의 실태가 이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조사대상은 매국행위인 각 조약에 가담했던 대표적인 친일파와 반환소송을 했던 친일파 후손들을 중심으로 11명이었다”며 “그런데도 440여만평이나 되는 엄청난 땅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소유권이 바뀐 재산 등도 많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조사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힘들다”며 “이젠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매국형 친일파의 재산은 매국이라는 행위를 통해 형성된 것 아니냐”며 “시민사회가 그 재산들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당연히 국가가 환수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상범 동국대(헌법학) 교수도 법관이나 법조인들의 헌법정신에 대한 인식을 꼬집었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따른다고 명시돼 있으니 임시정부의 건국강령(1941년)과 제정헌법 부칙 101조(1948년)에 따라 친일반민족 행위는 엄연한 범죄다”라며 “특히 친일파가 매국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은 범죄행위로 얻은 ‘장물’이다”라고 성토했다.
그는 “현재 사법부가 사유재산 보장 일변도의 사고방식을 갖는 것은 상급심 재판관으로 올라갈수록 심하다”라며 “사유재산이라고 무조건 보장하는 것이 국민 법생활의 안정성과 법감정에 비춰볼 때 과연 옳은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또 친일재산환수법에 대해 “헌법정신에 비춰 올바른 입법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며 “민족과 민주 양 잣대로 친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그 이전에 승소한 친일파 후손의 반환소송에 대한 소급입법 문제는 빠져 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친일재산환수법 제정에 앞장섰던 최용규 의원은 “(재산반환소송은) 돈에 눈이 먼 토지브로커와 친일파 후손, 변호사의 합작품이었다”라며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을 통감하고 이제라도 친일 청산에 온 국민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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