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사소한 일에 신경쓸 여력있음
조국통일에나 신경 쓰시오
----------------------------------------------------------
김진(울산대 철학과 교수)
필자는 우연한 기회로 2004년 12월 3일(금) 9시 30분, 울산지방법원 104호 재판정에서 열린 즉심재판을 지켜보게 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재판이 원칙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판사의 법 적용이 너무나 자의적이었고, 유사사건들에 대한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심판결 후에 대부분의 시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물론 한 판사의 재판행위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모든 재판을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시중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필자의 소감을 적극 피력하여 피차간에 자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법개혁위원회는 일제시대의 잔재인 즉심제도를 폐지하고 경죄재판부를 설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판사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그 같은 개혁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1957년에 제정된 “즉결심판에관한절차법”에 근거하고 있는 즉심제도는 “범증이 명백하고 죄질이 경미한 범죄사건을 신속, 적정한 절차로 심판”하기 위한 것으로서, 현재는 주로 신호위반 등 경찰의 단속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민들이 이 재판에 회부되고 있다.
즉심재판은 정식재판 이전의 절차이지만, 서민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경찰의 단속이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시민들은 그래도 판사가 심판한다는 점에서 즉심재판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본다. 그러나 즉심재판을 경험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것이 부질없는 기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판사에게 주어진 재량권이 거의 무원칙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지켜본 필자로서는 먼저 사법고시 제도의 문제점을 떠올리게 되었고, 한 사람의 재판관이기에 앞서 건전하고 상식적인 교양인을 양성하지 못한 교육제도의 무력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한 재판정에서 열대여섯 건의 사건이 공개 처리되었다.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은 점이 문제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교훈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여러 사건들에 대한 판사의 선고원칙이 일관성 있게 적용되는가에 필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도박을 비롯하여 취중 난동, 택시 무임승차, 무전취식 등 범죄행위가 분명한 경우에는 3만원 정도의 벌금이 부과되었으며, 대부분 순응하는 듯 했다.
그러나 교통법규 위반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경찰의 진술만이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시민의 의견은 거의 묵살되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판사의 선고가 지나칠 정도로 자의적이고 원칙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한 판사가 동일한 재판정에서 유사사건을 원칙 없이 다루는 것은 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형평성과 정의의 원리에 위배된다. 그것은 판사에게 부여된 재량권을 오용한 것이다.
교통법규 위반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경찰과 시민의 주장이 상반되는 경우가 많으며, 판사는 즉심절차법 제4조에 명시된 경찰 측의 서류와 증거물, 그리고 동법 제9조에 명시된 피고인의 진술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대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경찰 측에서 단속경찰관을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것이 관행이다. 그런데 문제는 판사가 경찰관의 진술을 증거와 같은 것이라고 천명하면서도, 특정한 사건에 있어서는 이유 없이 이를 무시함으로써 형평성의 위기를 초래한 사실에 있었다.
판사는 경찰의 증언이 증거와 같은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하였다. 그러나 단속경찰관이 자기 스스로 잘못 단속했다고 인정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사는 출두한 경찰관이 단속경찰관과 동일인인지 여부를 확인했어야 옳았지만 그런 절차를 일체 밟지 않았다. 어떤 피고인은 법정에 출두한 경찰관이 단속경찰관과 동일인이 아니라고 지적하였고, 다른 사건의 경우에는 단속경찰관 대신에 다른 경찰이 출두하였지만 판사는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심지어는 경찰관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상식적으로 증언과 증거물은 전혀 다른 것이다. 물론 단속경찰관의 증언이 증거와 같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라고 인정할지라도 그 둘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증거물이 경찰의 진술을 반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에 판사의 생각대로 경찰의 증언이 결정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즉심제도 자체는 사실상 무의미하게 된다.
경찰의 적발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시민들의 억울한 호소를 들어주어야 할 판사가 처음부터 경찰의 증언을 무조건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판사 스스로 재판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시민들이 경찰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그리고 그런 정보들을 경찰이 사전에 인지하여 재판을 준비하는 전체적인 진행과정이 시민들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판사가 경찰과 시민의 중간적인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고 경찰의 발언이 곧 증거라고 인식한다면 이는 제9조 1항을 부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판사는 심지어 경찰의 모순된 진술조차도 그 진리성을 의심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것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경찰은 결코 교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판사는 경찰의 무오류성을 믿었지만, 그의 믿음에는 원칙이 없었다. 이 재판과 관련된 어떤 범칙금영수증을 작성한 경찰관은 피고자의 이름까지 잘못 적어놓고 있었다. 판사의 믿음이 옳다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판사는 자신의 선고가 무원칙적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였는지 억울하면 정식재판으로 가라는 발언을 반복하였다. 이는 과잉단속을 하고서 억울하면 즉심판결을 받으라는 일선 경찰관의 태도와 다를 것이 없으며, 시민들을 허무하게 만드는 불성실한 태도이다.
판사는 검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출두한 경찰이 적발한 본인이었는가, 사실과 다르거나 모순된 진술을 하지 않는가를 주의해서 살펴야 했다. 그러나 판사는 피고인과 경찰의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에 어김없이 경찰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여 벌금을 부과하였다. 정지선이 지워진 경우, 신호등이 20m 간격으로 있어서 혼동한 경우, 좌측 차선에서 직진한 경우와 같이 고의성이 없었던 경우에도 판사는 가차없이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노란불에 진입하여 적발된 어떤 여성 운전자의 경우에는 그 범죄사실이 분명하게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예 처분을 하였다.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일제 잔재인 순종의 미덕이 중시되는 듯 했다.
교통법규 위반을 단속하는 경찰들의 주장 속에서 시민들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경찰들은 운전자가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면 법규 위반을 인정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아무리 시민이 항의를 해도 즉심판결에 가면 거의 패소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로 단속했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운전자가 운전면허증을 제시하지 않으면 교통법규 위반에다가 공무집행방해죄를 추가하여 기소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 판사는 9만원 정도의 벌금을 부과한다. 어떤 경우이든지간에 선의의 피해를 당한 시민들이 구제받을 길은 없다.
판사는 증거물이 제출된 경우에도 원칙 없는 판결을 하였다. 운전 중 휴대폰 사용으로 적발된 사건들이 있었다. 어떤 남성운전자의 경우 경찰은 운전자가 왼손으로 휴대폰을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운전자는 운전석 옆에 앉은 친구가 한 것이라고 각각 다르게 주장하자 판사는 기각 결정을 하였다. 필자기 보기에 이 판결은 판사가 유일하게 내린 정확한 판결이었다. 경찰의 진술대로라면 운전자는 무전을 받고 나타난 경찰관에게 친구의 핸드폰을 내보이고 자신의 핸드폰은 숨겼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경찰은 운전자와 동석자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조회하여 증거로 제출했어야 했다. 그런데 증거물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판사는 증거의 보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판사는 자가당착을 범하였다. 이 사건에서도 역시 경찰은 분명하게 보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다른 사건들에서처럼 경찰의 무오류성을 인정한 판사는 벌금을 부과했어야 하고, 그럴 경우에 최소한 다른 사건들과의 형평성은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바르게 내린 그 판결조차도 빛을 잃게 만들었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 사건에 대한 선고가 얼마나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는가는 다른 여성운전자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운전 중에 휴대폰이 걸려오자 그냥 보기만 했다는 피고인과 휴대폰 사용을 직접 목격했다는 경찰의 주장을 듣고 난 판사는, 경찰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벌금을 선고하였다. 이 여성의 경우에 적발 시간을 전후하여 휴대폰을 사용한 내역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물을 제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판사는 이를 무시하였다. 이 여성피고자가 부당한 판결에 몸을 부르르 떨고 분노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즉심판결도 판사가 하는 재판이다. 그러므로 판사는 최대한 사건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하고 경찰과 시민의 진술을 공정하게 청취해야 한다. 사건기록을 재판정에서 이리저리 뒤적이며 읽는 것도 보기에 민망하지만, 자신의 원칙을 최소한 자신의 법정에서만큼은 일관되게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증거 없이 쌍방의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에 판사는 어떤 때는 경찰 진술의 무오류성에 기대어 판결하다가 다른 경우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경찰의 진술을 배제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의 경찰이 아무런 이유 없이 시민들을 교통법규 위반자로 적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의 적발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시민들 중에도 자신이 위반했으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법규를 위반하지 않은 시민을 경찰이 실수하여 범법자로 단속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사례들과 심심치 않게 마주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제도는 이런 자잘못을 가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이나 즉심재판의 판사들이 성실한 자세로 복무하는 대신에, 억울하면 다른 절차를 통해서 해결하라는 발언을 남발하는 것은 국민들을 허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대개의 경우 이의가 제기되는 교통현장은 신호체계나 정지선 등이 운전자에게 혼선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경찰은 이런 부분들을 사전에 인지하고 적극적인 개선 노력을 하는 동시에 계도하는 방향으로 근무원칙을 정립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판사 역시 과거의 일제시대처럼 범죄사실의 여부와 관계없이 다소곳한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시끄럽게 항의하는 사람들에게는 벌금을 부과하는 그런 유치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판관이라면 하찮은 즉심판결일지라도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최대한 투입하여 흔들림이 없는 원칙을 가지고 성실하고 공정한 자세로 재판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가장 논란이 많은 교통법규 위반의 경우에도 국비의 지원으로 인력과 장비를 활용하는 경찰 측에서 확실한 증거를 재판정에 제출하게 함으로써 시비를 분명히 가릴 수 있는 과학적인 재판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다른 형사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찰은 교통단속의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증언이 아닌 증거물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필자가 지켜본 즉심재판은 낙제점수였다. 재판관에게 주요한 덕목인 형평성과 정의, 무당파성과 지혜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더 이상 담당경찰관의 증언에만 의지하지 말고 객관적인 증거물을 바탕으로 시비를 분명하게 가리도록 해야 한다. 판사에게 부여된 양심의 원칙과 재량권은 판사 개인의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판결해도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양심과 재량권은 모든 사건들을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부합되게 판단하라는 것을 뜻한다. 한 재판관이 내린 판단은 다른 이성 존재의 경우에도 타당한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양심과 재량권 역시 자의적인 것이 아니며 확고한 원칙 하에서 운용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 글로 인하여 본 재판정의 담당판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모든 재판관들이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단돈 1000원을 받아내기 위하여 다툼에 말려든 피고인에게 3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면서, 화가 난다고 상대방의 돼지껍질을 땅바닥에 팽개치면 되느냐고 훈계하는 그 판사는, 왜 자신의 원칙 없는 판결로 시민들이 온몸을 떨고 분통해 하는 사실은 모르는 것일까? 5원을 받아내기 위해서 50만원을 들여 재판을 했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 않은가?
재판이 끝나고 억울해 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경찰들에게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마라"고 퍼붓자, 얼굴이 상기된 의무경찰들이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시선을 피한다. 재판 도중에 경찰에게 "똑바로 말하세요"라고 소리쳤다가 벌금형을 받은 부산 아주머니였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말한다. "교통단속에 경험 없는 의무경찰들을 투입하여 저런 고생을 시키는데, 정식재판까지 가면 아들 같은 저 얘들이 엄청난 괴롭힘을 당한다고 해서 정식재판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국가가 시켜서 한 일인데 저 얘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국가에 6만원을 기부했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말하고 총총히 사라지는 시민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 판사들이 얼마나 많은 시민들에게 부당한 판결을 내렸는지를 자성해 보는 계기로 삼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줄인다.
2004년 12월 4일 새벽 1시 45분에 글을 마침.
71469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