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110개를 반박하겠다. 중.
40. 안기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몇 피해상황에는 북한군내용들이 언급되지않았다.
반박. 안기부의 전신은 중앙정보부이고 1980년에는 안기부가 아니라 중앙정보부였다. 광주에 있던 중앙정보부분실,보안사분실,경찰서에 있던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이 기록된 서류들을 광주가 북한군치하인 5월 21일부터 5월 24일사이에 북한군들이 전부 수거해서 불태웠다.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는 폭도들 중에 공산주의자,공산당,적색분자,간첩,불순분자가 있다고 말했다. 공산주의자, 공산당,적색분자,간첩,불순분자가
북한군과 비슷하지않은가. 광주폭동때 광주에서 북한군 600명과 간첩 약 10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다. 그 사실이 인정이 되면
중앙정보부와 보안사와 광주경찰은 큰 책임을 져야하고 큰 문책을 받을 수 있고 큰 비난을 받을 수 있고 아주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나의 추측인데 광주에 있던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이 기록된 자료들도 전부 불타서 없어진김에 큰 책임을 지지않기위해 큰 문책을 받지않기위해
큰 비난을 받지않기위해 아주 부끄럽지않기위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몰랐다고 말하거나 부정해버리자라고 결정한건 아닐까?
안기부와 국정원이 광주폭동때 북한군남파를 알고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안기부와 국정원이 그렇다면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도 알고있었을것이다.
김대중정부의 국정원은 탈북자들에게 절대로 광주사태에 말하지마라고하며 5.18보안각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광주폭동때 북한특수부대로 광주에 침투해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철수해서 북한에 살다가 북한에서 못살게 되어서 탈북하여 남한에 온 탈북자에게는
김대중정부의 국정원이 광주사태에 대해 말하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고한다. 진실이 공개되는게 두려워서 그렇게 하는 것일 것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정보를 왜곡했다는 증언이 있다. 미국항공모함 두 대가 남한에 입항한 이유를 왜곡했다고한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북한군들 600명의 광주폭동때 광주침투개입을 알았다는 증언도 있다.
41. 탈북자들의 말들은 일관성이 없다.
반박. 탈북자 2만명이 말하니 약간씩 다를 수야 있지. 탈북자 2만명이 비공개적으로 북한군침투개입을 말하고 공개적으로 북한군침투개입을 말하는
탈북자들은 극소수이다. 북한에서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공공연한 확고한 사실이니 탈북자들 거의 대부분이 그렇게 말하지.
광주에 침투,개입한 북한군들은 4경로로 침투했다.. 잠수함으로 침투한 북한군무리.땅굴로 침투한 북한군무리.
적은 수의 북한군들이 배로 침투한 무리, 적은 수의 북한군들이 광주폭동이 나기 몇달전에 침투한 북한군무리.
여러 경로로 나누어 보냈으니 어떤 경로만 알고있는 탈북자들은 말들이 다를 수가 있다.
42. 미육군방첩정보요원 5.18비밀요원 김용장의 말. 1980년 당시 미국에 군사첩보위성이 있었다.주로 한반도를 2~3시간 간격으로 순회한다.
5.18당시에는 광주상공체를 돌았다.
반론. 2.~3시간마다 군사첩보위성이 순회하니 새벽 3시에 잠수함으로 영광해안에 상륙하는건 몇분이면 되니 군사첩보위성이 못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1980년에는 군사첩보위성으로 야간에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식별하는건 어려웠다고한다. 아주 어두운 새벽 3시에 군사첩보위성으로 영광해안으로
상륙하는 북한군들을 식별하기 힘들다. 설령 군사첩보위성으로 보았다고해도 북한군들은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북한군들임을 알아보지못한다.
광주폭동때 주한미군2사단에서 광주에 북한군침투개입정보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주한미군 2사단 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 말했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
43. 간첩 이창용조차 침투하지못했던 광주.
반박. 2의반박을 참조. 남한에 있던 북한간첩들과 북한에서 내려온 북한간첩들 합쳐서 북한간첩들 약 1000명이 광주폭동때 활동했다.
광주에 있던 북한간첩들도 있었겠지만 상당수는 광주밖에서 광주에 침투했을 것이다.수백명이상의 북한간첩들이 광주에 침투했는데 북한간첩 한 명이
광주에 침투못했다고 광주폭동때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나 근거가 되나?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긍정하는 근거이다.
44. 국방부장관 김관진이 5.18북한군개입을 부정했다.
반박. 김관진은 전북 임실출신이다. 전라도출신들은 극소수의 양심선언을 하는 전라도인들이외에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인정이 되면
전라도세력에 결정타가 됨을 알기에 우파,좌파,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일치단결하여 광주사태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한다.
45. 1980년 6월 2일 CIA문건에 미국국가정보위원회회의자료에서 현재 북한은 남한의 사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처하고있다. 북한군의 눈에 띠는
어떠한 행동도 전두환에게 북한의 도발위협행동이 빌미를 제공하고 이는 결국 전두환을 돕는 행위라는 것을 김일성은 잘 알고있다는 내용이 있다.
반박. 6월 2일은 광주폭동이 완전히 끝난후이다. 그 말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광주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
해주에서 대기하고있던 북한군 10만에서 15만이 남한을 기습남침을 하지않는 것이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런 도발위협을 안한다는
의미이다. 해주지역이외에 휴전선근처에 있는 북한군들도 눈에 띠는 행동을 안한다는 의미이다.
46. 강명도의 책에 광주폭동소식이 북한정권에 전해지자 김중린은 3호청사의 전부서에 비상을 걸었으나 김중린은 타이밍을 놓쳤다. 김중린이
정세판단서를 김일성에게 수표(재가)를 받을때쯤에 이미 광주폭동은 진압국면에 들어가 있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반박. 1979년 10.26사태와 12.12사건이후 김일성은 김중린을 불러 한국내의 현정세를 이용하여 비밀공작조직을 더욱 활발히 움직일데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고 광주폭동에 대비한 북한군지원작전을 지시했고 김중린은 북한군정찰국 및 특전사부대들을 광주에 투입할 것을
당시 북한군 정찰국장과 정찰부장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달했다. 김일성은 오진우,김정일,이을설,문제심,김중린 등 북한군수뇌부와 북한정권수뇌부와
1979년 10.26사태발생때부터 적화통일의 호기로 보고 북한군침투를 준비하다가 김일성이 1980년 5월1일정도에 직접 북한군광주침투를 지시해서
이을설과 문제심이 북한군 534특수부대를 이끌고 1980년 5월 2일 출격하여 1980년 5월 3일 광주에 침투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다.
김중린이 타이밍을 놓쳤고 김일성에게 수표(재가)를 맡을때쯤에 이미 광주폭동은 진압국면에 있었다는건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다.
북한정권과 북한수뇌부가 광주에 북한군 600명을 침투시켜 광주폭동을 일으켜 남한사람들 많은 수를 (광주시민들 약 120명 계엄군 약 20명
합쳐서 약 140명) 살해한데 대해 책임회피용으로 기만하는 것 일것이다.
위의 김중린에 대한 내용을 쓴 강명도는 북한이 5.18광주소요를 계획하고 지휘했다고 정반대되는 말을 하였다.
47.1980년 남북이 총리회담준비를 위한 고위급실무대표회담상황이 기록된 남북한대화록에서 5.18과 북한군의 상관관계가 확인되지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반박. 북한정권에 있는 자들이 바보가 아닌데 바보처럼 남북한총리회담을 준비하는 자리에서 북한군600명을 광주에 침투시켜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고 광주시민들 약 120명과 계엄군 약 20명을 죽였다고 말하고 인정하겠나? 남북한총리회담은 김일성의 평화제스처였다.
48. 광주에서 멀지않은 전북 군산에 주한미군 공군베이스캠프가 있고 광주 송정동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했으니 북한군들이 정말 개입했으면
주한미군사령부와 미국정부가 이를 수수방관했을리가 없다.
반박. 수수방관안했으니 북한군광주침투개입정보로 주한미군 2사단에서 대책회의를 했고 미국항공모함 코럴시호와 미국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한반도에 전개되었다.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을 격퇴하는건 한국군들이 맡게 한걸로 보인다. 광주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 해주에서 대기하고있던
북한군 10만에서 15만이 남한을 기습남침하는걸 막기위해 미국항공모함 2대가 남한에 입항했다고한다.
전라도것들 중에는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미국에서 지원하기위해 항공모함을 남한에 입항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으나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광주시민들이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데 미국항공모함 두 대가 남한에 입항할리가 있나? 당시 미국의 항공모함 두 대가 남한에 입항한건
한반도의 상황이 최악으로 갈 위험성이 있기때문에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위한 것이고 광주폭동의 상황도 최악이라는 의미이다.
광주폭동의 최악의 상황 즉 북한군 6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광주사태가 정말 민주화운동이었다면
미국은 한국의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지말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지 미국항공모함 두 대가 남한에 입항을 안한다.
49. 많은 병력이 광주에 진입했다면 북한군 침투시에 타고온 선박이나 이동할때 사용된 차량 그리고 인민군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목격되었을텐데
목격한 사람이 없다.
반박.북한군은 잠수함으로 침투했고 잠수함에서 영광해안으로 상륙하는 북한군들을 본 사람들이 없다. 땅굴로도 침투했고 땅굴출구에서 나오는
북한군들을 본 남한사람들도 없다. 침투한 북한군들은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광주로 잠입했고 광주에서는 시위대들이나 시민군들로
위장해서 활동했다 그래서 북한군들을 남한사람들은 보고도 북한군들임을 알아채지못한 것이다.
남한사람들 중에서 북한군들의 전술,지휘체계,침투방법,특징을 알거나 눈썰미가 아주 뛰어나거나 침투한 북한군들이 실수로 북한말씨를 사용할때
북한군들과 같이 있은 남한사람들은 북한군들임을 알아챘다. 북한군들은 아세아자동차를 습격하여 차량 420대를 탈취하여 이동했다.
시위대들이나 시민군들로 위장해 탈취한 차량들을 타고 이동했으니 북한군임을 알아보지못한것이다.
50.무장한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출몰했다면 계엄군과 조우하는 것과 쌍방간 무력충돌이 필연이었을텐데 교전을 벌였다고 밝힌 아군군대도 없었고
치열한 교전을 목격한 시민도 없었으며 사살되거나 부상 혹은 생포된 북한군은 왜 없는가?
반박. 연고대생으로 가장한 북한군들이 5월 21일 계엄군들을 광주에서 쫓아낼때 계엄군과 교전했고 북한군들이 광주교도소를 5회 습격할때 계엄군과
교전했고 북한군들이 광주밖에서 북한으로 도주할때 계엄군들과 교전했다. 그 교전들을 목격한 목격자들 많다. 그러나 시위대들이나 시민군들로
알았고 북한군들인줄 몰랐다. 침투한 북한군 600명 중 490명이 사망했다. 광주망월동묘역에 아직도 신원이 확인이 안된 12구의 시신 중 11구의 시신이
북한군들의 시신들이다. 북한군들은 교전으로 부상을 입어서 행군속도에 지장을 주면 2~3키로그램 폭약과 맞먹는 개인마다 몸에 지닌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자폭을 했고 계엄군에 사살당한 북한군은 역시 개인마다 지닌 100그램의 고성능 폭탄으로 살아있는 북한군이 시신을 폭파해서 자폭흔적
또는 폭파흔적을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 그렇게 하면 북한군시신들을 찾기어렵고 발견하기 어렵다.
51. 말 몇마디만 섞어봐도 남한사람인지 북한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다.
반박. 북한군들은 남한사람의 말씨를 배우고 남한사람의 말씨를 써도록 6개월간 훈련을 받고 침투했고 광주에 와서도 남한사람의 말씨를 썼다.
북한군들은 실수로 북한말을 써서 북한군임을 알아챈 광주시민들을 2명만 제외하고 전부 죽였다.
52.전투요원들을 운송하는 선박이라면 군용선박이라야 하고 북한군 600명과 무기,식량,보급품,군용트럭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수송선이나 상륙정이
북한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있는데 무슨 배를 동원하여 들키지않고 12시간이상 항행할 수 있었을까?
반박. 북한군들은 잠수함으로 또 땅굴로 침투했다. 무기,식량,보급품,군용트럭을 가져오지않고 무기와 보급품은 전남 17개 지역의 44곳 무기고들을 털어
무장하여 현지조달했고 식량은 별로 어렵지않게 현지조달했고 군용트럭은 아세아자동차를 습격하여 군용트럭 328대를 현지조달했다.
그런 대형수송선이나 상륙정이 북한에 왜 없어.
53.상당기간 남한땅에서 숙식을 해결했어야 한다.그런데 어느 곳에도 노숙이나 취사흔적을 남지지않았다.
반박. 아니다 노숙흔적과 취사흔적을 남겼다. 침투한 북한군들은 시민군들이나 시위대들로 위장하여 숙식을 해결했고 북한군들의 숙영흔적이 있다.
광주 송암동 야산에 북한군들의 장기숙영흔적이 있는데 토굴과 숙영지와 북한군들이 소를 잡아먹은 흔적인 소뼈더미가 있다.북한군장기숙영물증이다.
54. 600명이상의 대병력이 승선한 군함이 해상분계선이남에서 아군의 감시망에 포착되어 격침되거나 아군에 나포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는데 전면전을
각오하지않은이상 성공가능성이 별로 높지않은 이런 무모한 작전을 수행할 정도로 북한의 수뇌부가 어리석을까?
반박.북한군들은 군함을 타고 침투한 것이 아니라 잠수함으로 또 땅굴로 침투하여 격침이나 나포가능성이 아주 낮았다.작전성공가능성은 높았고 전면전도
북한은 각오했다. 광주폭동이 전남으로 확산되어 친북성향의 전남국을 세우거나 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당시 남한 정부가 전복되면 해주에서 대기하던
10만에서 15만의 북한군들을 기습남침시켜 남한을 삼키려하는 전면전을 일으키려했다.
55.인민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다가 인명피해없이 북한으로 복귀했다면 북한은 침투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유공장병들에게 대대적인 포상식을
거행하고 경축하는 행사를 했을것이다.
반박. 북한군은 광주에 침투한 600명 중 490명이 죽고 110명이 살아서 북한에 돌아갔다. 북한으로 돌아간 그 110명의 북한군들은 공화국영웅칭호를
부여받았다.북한은 5.18기념식을 매년 평양뿐만아니라 북한전역에서 대대적으로 거행한다.
56.침투한 부대명이나 침투장병의 명단을 제공하는 사람이 왜 없나?
반박. 아니다 있다.침투한 북한군부대는 북한군 534특수부대이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 침투한 북한군들의 명단이 있다.
57.포로,AK소총이 하나도 없다.
반박. 침투한 북한군들은 부상을 입고 움직이지못하는 부상자들이나 행군속도에 지장을 주는 부상자들은 2키로에서 3키로의 폭약과 맞먹는 개인마다
몸에 지닌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자폭을 했고 자폭흔적을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 그래서 북한군포로가 없다.
북한군들은 AK소총을 가지고오지않았고 전남의 44곳의 무기고들을 털어서 무장했다.북한군들은 총격전을 벌이려온것이 아니라 심리전을 목적으로 왔다.
58.데이비드 존스 당시 미합참의장은 1980년 5월 22일 북한의 부대이동은 없습니다.
침투할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이 공격해오리라 생각하지않는다라고 말했다.
반박.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은 5월 21일부터 맹활약을 시작해서 5월 24일까지 맹활약을 했다. 북한군들이 잠수함으로 또 땅굴로 침투해서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광주에 조용히 잠입을 하여 5월 20일까지는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해서 숨어있었다. 북한군들은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하여 와서 새벽 3시에 잠수함에서 영광해안으로 상륙했고 땅굴에서 새벽 2시에 은폐된 땅굴출구를 나왔다. 1980년에는 군사첩보위성이 야간에
지상의 사람들을 식별할 수 없었다고하니 새벽 3시와 새벽2시에 침투하는 북한군들을 군사첩보위성으로 식별할 수 없었다.
남한민간인들로 위장했으니 정보요원들에게도 북한군들인 것을 들키지않았다. 광주와 광주근교에 있던 국군들과 주한미군 2사단은 북한군들이
맹활약을 5월 21일부터 시작하니 이틀 지난 5월 23일정도부터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한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광주폭동 중에 주한미군 2사단에서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는 정보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주한미군 2사단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2사단에서
5월 23일정도부터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한 사실을 알았으니 5월 22일에는 데이비드 존스 당시 미합참의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한 사실을 보고를
받지못해 그렇게 말한 것일거라고 추측한다. 정보요원들도 5월 23일정도 되어서야 북한군들이 광주에 침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정보요원들이 광주폭동의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이 이틀은 걸릴 것이다.보고서를 보내도 보고서를 검토하는 시간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데이비드 존스 당시 미합참의장이 그렇게 말했을거라고 추측한다.
59북한특수부대 600명이 한꺼번에 침투하면 드러난다.
반박. 2의 반박을 참조.
60.북한특수부대를 보내 광주를 점령할 이유가 없다.
반박. 12의 반박과 23의 반박을 참조. 북한군들이 남한에 침투하여 폭동,내란,반역을 일으키려면 친북성향,반역성향,폭동성향,좌익성향이 높은 대도시를
선정해서 그런 행동들을 일으키려할 것이다. 북한군들이 폭동,내란,반역을 일으키려면 시골보다는 사회의 밑바닥인 자들과 학생들을 많은 도시에서
그런 자들을 선동하거나 꼬드기어서 폭동,내란,반역에 가담하도록 할것이다. 광주폭동때 실제로도 사회밑바닥인 자들과 학생들이 폭도들로 가담했다.
광주는 전라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북한특수부대를 보내 광주를 점령할 이유가 없는게 아니라 그런 이유들이 많고 침투시킬 곳으로 광주가 유력했다.
61.광수지목은 엉터리이다.
반박.광수는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부대의 별칭이다. 북한사람이 북한티비에서 광주폭동영상을 보다가 아는 사람이 티비에 나오자
쟤 광수네라고 말한 것이 시초가 되어 그런 별칭이 생겼다. 황장엽이 광수라는 주장은 나도 믿지않는다. 그러나 영상분석시스템으로 분석하여 지목한
478명인 광수들 사진들을 6개월간 광주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들에 전시하여 사진의 인물들이 광주시민들 중에 있으면 나타나달라고 했는데 겨우
10명만 나타나 자신이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여 4명이 광수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후에도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광주시민들은
더 나타나지않는다. 478명의 광수지목 중에 4명정도는 잘못 지목이 될 수 있다. 478명의 광수지목이 엉터리라고 주장하려면 광주시민들 중에 300명정도가
광주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200명정도가 광수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야 478명 광수지목은 엉터리라고 할 수있다. 그런데 겨우 10명이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4명이 광수가 아니라고 판결을 받았다. 그러니 478명 광수지목이 엉터리가 아니고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의 증거가 된다.
전라도것들은 광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10명과 광수가 아니라고 판결을 받은 4명을 아주 떠들며 478명 광수지목이 전부 엉터리라고 우기고있다.
62.월북한 윤기권은 핵심요원이 아니다.
반박. 윤기권이 핵심요원이 아니라도 광주폭동때 폭도였고 보상금을 받고 북한으로 월북을 한건 맞지않은가.
63.신원미상의 12구 시신들이 북한군시신이라는 증거가 없다.
반박.남한사람이 아니면 북한사람이지. 그 12구의 시신 중 11구의 시신은 광주폭동때 폭도들로 활동하다가 광주에서 죽었는데 주민등록에 없고
남한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으니 광주에 침투해서 활동하다가 사망한 북한군들일 가능성이 아주 높지.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도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해서 활동한 북한특수부대원들 중 사망한 자들중에 아직도 남한에서
신원이 확인이 안된 12구의 시신 중 11구의 시신이 북한특수부대원들이라고 되어있다.
북한고위층들이 남한에 오면 휴전선에서 먼 광주까지 가서 광주망월동묘역에 가서 참배를 할려는 이유도 그 11구의
북한군들 시신에 참배를 할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4.19희생자묘역에 북한고위층들이 참배안한다.
64.전두환정권하에서는 북한군들이 침투,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이를 반드시 확인하려했을 것이다.
반박. 전두환은 1980년 6월 4일 22구의 신원미상시신들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침투요원으로 보고있다고 말했다. 북한특수부대원으로 추정되는
시신22구의 단서가 있지. 광주와 광주근교의 국군일선지휘관들은 5월 23일정도부터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고한다.
5월 23일 이전에는 북한군들이 영광해안으로 침투했다는 첩보가 있었다고한다. 검문소 김대위의 말이 협회지에 났다.
계엄군 5.18상황실장 홍순영의 증언.국군일선지휘관들이 상부에 보고했으나 상부에서는 일리가 있다는 의견과 과한 주장이다라는 의견이
대립했다고한다. 광주와 광주근교에 있던 국군일선지위관들의 증언들과 상부보고도 단서가 되지.
주한미군 2사단에서 광주폭동때 광주에 북한군침투개입정보로 대책회의를 했고 주한미군 2사단 부대장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했다고말했다.
그 대책회의와 그 말도 단서가 되지.
계엄군지휘자들과 계엄사령부는 공산당,공산주의자,적색분자,간첩,불순세력이 광주에 침투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한다고 말했다.
공산당,공산주의자,간첩,적색분자,불순세력이 북한군과 비슷한 의미이다. 단서가 없는게 아니다.
65 1997년 대법원판결로 종결됐다.
반박. 1997년 대법원판결이 날때는 북한군침투개입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었다.북한군침투개입이 재판의 고려사항이 전혀 아니었는데 1997년 당시
대법원이 무슨 수로 북한군의 침투,개입이 없었다는 판결을 할 수 있었겠나.
전두환이 내란죄를 선고를 받았다고 북한군들이 침투,개입을 한 것이 안한 것으로 되는게 아니다.
66.북한이 해마다 국가차원의 기념행사를 한다고 광주폭동때 북한군들이 왔다고 할 수 없다.
반박. 김일성과 북한정권과 북한군수뇌부는 북한특수부대 600명을 광주에 침투할 것을 지시해서 침투한 북한군들6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다.
김일성,북한정권,북한군수뇌부,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그랬으니 북한은 5.18광주폭동(광주인민봉기)를 국가차원의 기념행사를 매년 거행하니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의 근거가 된다.
67.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 이미 역사적 사실이다.
반박. 광주폭동은 처음에 법률적으로도 그렇고 평가도 광주폭동,내란,반역으로 규정되었다. 처음의 판결과 평가가 맞았다.
그후 민주화세력의 득세와 국민화합차원에서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러주고 보상도 해주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하고 최근과 근래에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들이 많이 발견되었고 근거들도 많이 나왔으니 더욱 더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한다.
68.여러번 진상규명과정에서 북한군침투개입의 증거가 없었다.
반박. 1988년 광주특위. 2005년 국방부과거사규명위원회.2017년 국방부 5.18특조위. 2018년 5.18진상규명법.
2018년 5.18진상규명법이전에는 북한군침투,개입이 논의과정에 없었다. 2018년 5.18진상규명법에서 북한군개입에 대해 진상규명하도록 주제로
선정되고 법에 규정되었다. 광주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을 해놓고 그에 맞게 진상규명을 한다고 했으니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을 조사에서 배제하거나
무시했다. 그런 중대한 사실에 대해 입증할 증거들과 근거들이 전에는 부족했으나 이제는 입증할 증거들과 근거들이 충분하다.
69.김관진 국방부장관과 정홍원 국무총리가 북한군개입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박. 그런 발언은 5.18성역화에 부역하는 발언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론의 장을 봉쇄하는 발상이다.
44의 반박을 참조. 정홍원국무총리가 그런말을 한 날은 2013년 6월 10일인데 그 당시에는 아주 중대한 사실인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인정하기에
증거들과 근거들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이 충분하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여부는 매우 중대한 문제인데 정홍원 한 사람의 의견으로 모든걸 결정하려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주장들과 의견들과 증거들과 근거들을 모두 검토하고 연구하여 신중하게 결정을 하여야 한다.
70. 군과 정보기관과 경찰에 당시 작성된 서류에 그런 기록이 없다.
반박. 40의 반박을 참조. 북한특수부대의 행동지침에는 흔적을 남기지않아야 한다는 지침이 있다.
그 지침에 따라 그런 서류들을 북한군들이 수거해서 전부 불태웠다. 수배받고있는 북한간첩은 즉시 구별해서 잡아내었겠지만
남한민간인으로 위장해 있다가 시위대나 시민군으로 위장해서 5월 21일부터 5월 24일까지 활약하다가 짧은 기간에 치고빠져나가는 북한군들을
확실히 북한군들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7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반박.5.18광주폭동의 기록에는 허위사실인 유언비어들이 가득한 대자보들과 성명서들이 많이 있다. 유네스코에서 심사할때 그런 자료들이 허위사실인
유언비어인줄 유네스코가 어떻게 알겠나? 또 5.18광주폭동기록 중에는 북한방송이 허위로 남남갈등을 조장하기위해 모략하는 내용들이 들은 기록들이
상당수 있다. 유네스코가 그런 기록물들이 북한방송이 허위로 모략하는 내용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이 있는 기록물들은 전부 제외하고 유네스코에 보냈으니 유네스코에서 북한군침투개입여부를 알지못한다.
북한군침투개입정황이 있는 기록물들을 유네스코가 보았으면 유네스코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지 않았겠지.
광주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을 해놓고 그에 맞는 기록물들을 유네스코에 보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달라고 떼를 쓰니 유네스코도 들어준거지.
72.2013년 박근혜보수정부에서 북한군침투,개입이 부정된 적이 있다.
반박. 그 당시에는 북한군침투,개입여부가 주된 주제가 아니어서 철저한 조사가 행해지지않았다.
또 그 당시에는 그런 중대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기에 증거들과 근거들이 부족한 면이 있었으나 현재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인정할 증거들과 근거들이 충분하다.
73.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주장은 정부와 국군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반박. 국군이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지못한 것은 부끄러운 면이 있지만 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 중 490명을 사살했으니
국군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도 아니고 국군을 모욕하는 것도 아니다. 당시 정부도 침투한 북한특수부대600명이 일으키고 주도한 광주폭동,내란,반역을
빠른 기간에 효과적으로 잘 진압했으니 당시 정부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도 아니고 당시 정부를 모욕하는 것도 아니다. 부끄러운 면이 있다고 그런 중대한
역사적 사실을 무작정 부정하거나 숨기거나 덮을려는건 국가와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74.계엄군이 연행자들과 부상자들에 대해 대공용의점을 수사했으나 그런 혐의가 확인된 관련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박. 1980년 5월 24일에 생존해잇던 북한특수부대원들은 5월 24일 밤에 전남도청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5월 24일 죽어있던 11명의 북한특수부대원들은 신원이 확인이 안되었다.사라진 북한군들과 죽어있는 북한군들에게서 어떻게 대공용의점을 찾을 수 있겠나
죽어있던 북한특수부대원들 11명은 사람들이 시민군들로 알았다.
75. 1980년 5월 20일 한미연합사령부가 미국에 보낸 전문에 그 시점까지 북한군의 어떤 이상한 동향은 발견되지않았다는 구절이 있다.
반박. 58의 반박을 참조.
76.1개대대라면 500명정도의 인원인데 이 많은 인원이 광주에 들키지않고 진입하는게 가능했겠나?
반박. 2의 반박을 참조.
77.전남도청지하실의 다이나마이트들은 뇌관을 끼우지않았고 도화선을 연결시키지않았다.엄포용으로 쌓아놓은 것이다.
반박. 아니다.전남도청지하실에 북한특수부대들이 8톤 TNT들로 제조하여 설치한 폭탄들은 뇌관도 끼우고 도화선도 연결시켜
터트릴 준비를 완벽히 하여 대폭발이 가능하게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만든 것들이었다. 그 8톤 폭탄들이 폭발하면 광주시의 상당부분이 날아갈 정도로
위험한 것들이었다. 전라도계엄군에서는 배승일만이 그 폭탄들을 해체할 수 있었다고한다.남한에 그 폭탄들을 해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몇명 안될 정도로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폭탄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수부대훈련을 아주 많이 받지않은 군인들은 그런 폭탄들을 만들 수 없었다고한다.
그래서 매우 위험하니 김창길 등 온건파시민군들이 계엄군들에게 그 폭탄들을 해체해달라고 요청하여 계엄군지휘자와 계엄군들은 폭탄을 해체할 수 있는
폭탄전문가 배승일을 전남도청지하실에 보내 5월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어렵게 폭탄들을 해체해서 대폭발이 일어나지않았다.
78 화순광업소에서 탈취한 다이나마이트 8톤은 일반인도 조립할 수 잇는 간단한 것으로 설치를 했던 사람들은 화순광업소에 근무한 김영복이었다.
반박. 77의 반박의 참조. 전남도청지하실에 8톤 TNT로 제조되어 설치된 폭탄들은 일반인들도 조립할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이 아니라 특수부대훈련을
아주 많이 받은 군인들만이 제조가 가능한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만들었다. 북한특수부대가 전남도청지하실에서 폭탄을 제조할 당시 김영복은
신문마을 가정집에서 자신이 구한 다이나마이트들을 결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김영복은 북한특수부대가 전남도청지하실에서 폭탄을 제조하고
설치하는 것을 구경도 못했다. 김영복은 북한특수부대가 전남도청에 폭탄들을 제조하고 설치한후 전남도청지하실에 가서 폭탄관리팀으로 있었다.
김영복과 시민군들 중 누구도 설치된 8톤 폭탄들을 해제를 못하니 김창길 등 온건파들이 계엄군들에게 그 폭탄들을 해체해달라고 요청했다.
79. 전남도청지하실에 있던 TNT는 10상자였다.
반박. 아니다. TNT10상자는 한국화약광주보급소에서 탈취한 것이고 8톤 TNT는 화순광업소에서 탈취한 것들이다. 8톤 TNT는 TNT3000상자였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도 8톤트럭 1대분량의 폭발물을 전남도청지하실에 설치했다고 되어있다.
80. 서정갑은 황장엽이 자신에게 말하기를 북한군이 머리가 나쁜가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황장엽은 광주사태는 북한군특수부대가 침투하여 선동하여 벌인 폭동반란사건으로 북한정권과 북한군이 일으켜놓고 남한정부에 책임을 전가했다고 말했고
광주학생문제는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北공명주의자들이 책임전가한 일이다라고 말했고 5.18은 북한이 배후조종한후 남한에 책임전가한 것이라고
말했고 북한대남공작부인 조선노동당대남부서에 소속된 상당수가 광주사태가 끝난후 일제히 훈장을 받았다고 말하여 명백히 북한군광주침투개입을
주장했다. 서정갑은 황장엽이 말한 북한군이 머리가 나쁜가라는 말을 의미를 왜곡해서 말하거나 일부만을 잘라내 왜곡하는 것 아닌가?
북한군들이 머리가 나쁘지않으니 광주에 침투해서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고 북한군 600명 중 110명은 북한으로 돌아갔지.
81.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도 물랐다.
반박. 40의 반박을 참조.
82.한미연합사령부와 육군본부정보참모부에 따르면 5월초부터 5월 18일까지 북한의 특이동향은 감지되지않았다고 함
반박. 58의 반박을 참조.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은 5월 21일부터 맹활약을 시작해서 5월 24일까지 맹활약을 했다. 국군과 주한미군이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한 것을 안 날짜는 북한군들이 맹활약을 시작한 5월 21일의 이틀후인 5월 23일정도일 것이다. 5월 18일에는 광주에 북한군들이 침투한 것을
알지못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