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민군 입대를 피하여 방공호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나는 1950년 10월 15일
경 한국 국방군이 평양에 입성하자 자원해서 군입대를 한 곳이 ‘윔프스’ 라는
첩보부대였습니다. 부대장 김원길중령, 공작과장 김상복대위, 소대장 김ㅇㅇ
소위와 통신병, 중사, 상사 십여명과 새로 입대한 대원 약 70명이 5명씩 각방에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계급도 없는 이 대원들은 전원 평양출신으로 반공정신이
투철한 대원들이었습니다. 입대 후 3주간의 군사정보교육과 함께 낙하산 낙하
교육을 받았는데 교육관은 미국장교 ‘캡틴 부로리’ 였고 통역은 홍ㅇㅇ씨였습니다.
이 부대가 위치한 곳은 서평양의 한 주택가였는데 어느 날 5~6명의 대원들이
평안북도 만포진과 강계로 (당시 전투가 치열했던 곳) 출동한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그 당시의 심경으로는 내가 선발되어 출동해서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돌아와서 영웅
대접을 받기를 원했는데 이 선발에서 빠졌고 다음차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출동준
비상황을 지켜보았는데 어느 대원은 인민장교복장 또는 사병, 중공군복장 등으로 다
양하게 위장되었습니다. 공작과장 김상복대위가 출동대원들을 일일이 호명하자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 보이는 대원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서며 ‘제가 김철입니다’ 라고 해서
그때부터 이 사람의 이름 두 자를 기억하게 되었고 내 눈에는 30세 이상으로 보이는
그때 그 모습의 ‘김철’ 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후 전세가 악화되어 1950년 11월말 경 ‘윔프스’ 부대는 평양을 철수해서 서울을
거쳐 1951년 4월 경 대구시 침산동으로 이전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루한 옷
차림의 젊은 여인이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부대 정문 앞에 나타나 부대간부들에게
면회를 요청하였는지 간부들 몇 분이 들락날락하였고 졸병인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그 부인 옆에 가만히 서서 이 부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왔나 하고 궁금하였는
데 이 부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울먹이면서 ‘김철’ 은 우리 애기아빠라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듣자마자 부대 안으로 뛰어들어가 김철 부인이 왔다고 몇몇 대원
에게 알렸고 대원들과 함께 황급히 정문으로 나와보니 그 부인은 이미 사라진 후
였습니다.
그 당시의 실정으로 보아 평양에서 대구까지 어떻게 찾아올 수 있었으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북한공작부대이지만 남편이 잠시나마 속해있던 부대에서 임무수행
을 위해 낙하산을 타고 출동했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전사한 사실도 모르고 이
부인은 사선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남편이 있는 부대를 찾았을 때의 그 기쁨도
잠시, 남편 ‘김철’이 낙하산을 타고 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부인의
충격을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가 있을까요. 지금도 김철 동지와 부인의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선하며 밤을 지새울 때가 있습니다. 하온데 국가는 더 늦기 전에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서 위로를 해주어야 하고 또 예우를 해준다 해도,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 해도 이미 무심한 세월 속으로 흘러가 무참하게 묻혀버렸습니다.
그래도 국가는 이런 무명용사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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