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면 까."
징병제니 군소리 없이 끌려가야 한다.
병장-상병-일병-이병으로 이어지는 계급제가 신분제보다 완강하니 선임 명령은 '하늘'이다.
'왜'라고 묻기보다는 '예'라고 답해야 한다. 과거 대한민국 군대가 보여준 권위주의와 폐쇄성이다.
"이등병을 소모품 노릇을 하는 '계급'으로만 대했지 군대와 사회에 기여하는 '직급'으로 봐주지 않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존댓말 쓴다고 병영문화가 바뀌지 않습니다.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죠."
이르면 6월 발족할 한국군(軍)상담학회가 한국 사회의 엄연한 사각지대인 '군 문화' 개선에 뛰어든 이유다.
한국군상담학회는 석사 이상 상담전문가 200여 명이 참여해 전군(全軍)을 대상으로 인성교육과 상담교육을 도맡아 하는 단체다.
1년간 294개 부대 장병 2만명이 '능력육성 상담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병영문화의 이해' '의사소통' '위기관리' '병사의 심리이해' '긍정적 부대생활을 위한 명상' '비전만들기' 등 6개 과목으로 운영된다.
추진위원장인 차명호 평택대 교수(43)는 "그동안 군문화는 너무 일방적이었다"며 "군대에 충성하고 국가에 헌신하면 병사들에게도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경쟁력 있는 병영문화와 사회적 지원시스템이 갖춰지면 지금보다 군생활이 단축돼도 현재 전투력 수준이 유지된다"고 단언했다.
"자살한 탤런트 이은주 씨를 흠모했다는 초급장교가 있었습니다. 자살을 염두에 뒀다는 얘기죠. 상담교육을 받은 뒤 그런 생각을 접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답니다."
최근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한 한 사병이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군대 내 허술한 대응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당초 '관심사병'으로 분류돼 관리감독이 필요했던 이 병사는 자살 전 선임들의 가혹행위를 상세히 기록한 메모를 소지했음에도 이를 발견한 분대장이나 책임 장교는 이를 묵살했다.
군내 자살자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방부 집계에 따르면 1994년 155명이었다가 2003년에 69명, 2004년 66명으로 줄었다.
"자살을 예방하려면 사전 '징후'를 알아채는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평소 담배를 안 피우던 병사가 담배를 찾으면 그게 징후죠."
"부산 태종대 자살바위에 철조망을 쳐서 출입을 막았더니 자살률이 떨어졌답니다. 옆에 다른 바위가 있더라도 그곳에서 자살하진 않으니까요. 그게 예방이죠."
차 교수는 "자살 징후를 드러낸 사람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6개월 안에 반드시 일을 저지른다"며 "고민을 토로할 때 '왜'라고 되묻기보다는 한번쯤 이해한다는 표현을 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군상담학회 상담교육은 군대에서 최초로 외부 전문기관과 손잡고 병영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이다.
국방부 병영문화팀 우국익 중령은 "1년간 상담교육을 진행한 결과 3월 현재 자살률이 전년에 비해 65%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교육받은 초급장교들은 96%가 만족감을 표했고 일반 사병들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홍보위원장인 손정필 교수(42)는 "2년간 썩고 나오는 군대가 아니라 충분한 교육기회를 제공해 능력개발이 가능한 신병영문화를 만들고 싶다"며 "수직적으로는 군기가 확실하더라도 수평적으로는 대화가 가능한 군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20만원도 안 되는 강의료는 강원도 오지에서 백령도, 제주도까지 쉬지 않고 오가는 상담원 200여 명에겐 많지 않은 액수다.
'불량문화' 온상이었던 군대를 '경쟁력 있는 문화'의 대명사로 바꾸고 싶은 사명감으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76460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