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사들 사이에 위기감이 팽배하다. 사법개혁의 한복판에서 수사와 재판에 대한 제도적 변화를 겪고 있는 데다 ‘떡값 검사’ 파동 등 악재가 잇따라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지방의 한 간부검사는 “이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환경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요즘엔 차라리 변호사 개업을 해 가족들에게 충실하는 게 더 나은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검찰 내 위기감을 대변했다.

◆퇴직자 급증, 위기의식 반영=검찰 내 팽배한 위기감은 늘어나는 퇴직 검사 숫자로 확인된다. 퇴직 검사가 늘어난 것을 검찰의 현 상황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검찰 관계자들은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72명의 검사가 옷을 벗었고 이 가운데 49명은 정기인사 때가 아닌 시기에 검찰을 떠났다. 통상 한 해에 25명 내외의 검사들이 정기인사철에 승진 누락이나 자녀교육 등의 이유로, 비슷한 숫자는 비정기적으로 퇴직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들어 비정기적으로 퇴직한 검사들은 2003년이 51명으로 최대였고, 지난해 36명이었으나 올해는 8월까지만 49명에 이른다. 비정기적으로 옷을 벗는 검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조직의 미래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내가 아는 부장검사만 두명이 옷을 벗었다. 정말 여태껏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며 “검찰에 남아봐야 비전이 없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고 토로했다. 수도권의 한 차장검사는 “기소나 하는 기관으로 검찰권을 축소시키려 하니 사명감을 가지고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우리나라가 검찰제도를 채택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인데 현재는 너무 흔들고 있다. 형사사법의 한 축인 검찰이 무력해지면 형사사법체계 자체가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반면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돌이켜보면 ‘검찰이 위기’라는 말은 언제나 있었다”며 “물론 요즘 검사들이 사기가 충천해 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춰갈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하기 힘들어진다”=검사들은 ‘앞으로 제대로 수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위기의 근원이라고 진단한다. 이 같은 배경에는 올 한해 숨가쁘게 전개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깔려 있다.

올 정기국회 통과가 확실시되는 사개추위의 형소법 개정안 핵심은 ‘공판중심주의’ 재판 확립을 위해 검찰도 자백 위주의 수사, 조서 중심의 수사에서 벗어나 모든 증거를 법정에 제출해 법관 또는 배심원이 유·무죄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자백했더라도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법 개정은 검찰 수사 패러다임의 획기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건의 경우 큰 관계가 없겠지만 주로 검찰이 수사하는 특수사건, 이른바 정·관계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 사건 등 당사자 간에 은밀히 돈이 오가는 사건의 경우 진술 외에 뚜렷한 물증을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에 검찰은 법 개정에 수사현실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한때 극심한 갈등 양상을 빚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수사권 조정은 외부 자문위원까지 동원했지만 ‘조정’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정치권으로 공이 넘어간 상태다. 검·경은 물밑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여권에서 경찰쪽에 수사권을 이양하는 것으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을 휘청거리게 만들고 있다.

이와 함께 ‘안기부 X파일’ 사건에 ‘떡값 검사’가 등장하고, 브로커 홍모씨 사건은 일부 검사들이 연루돼 또다시 국민들의 검찰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검찰의 비리가 잇따라 불거지자 대검은 감찰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대검 감찰부장을 고검장급 또는 상석검사장으로 격상시키고 감찰부를 장기적으로 검찰총장 직속기구로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현재 2개 과로 구성된 대검 감찰부는 3과로 확대 개편되고, 검사 및 검찰 직원에 대한 감찰은 특별수사에 준하는 고강도 수사로 전환된다. 이는 검찰 수뇌부가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자구책으로 자체 감찰 강화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