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최규민 기자]

작년 12월 29일 대전광역시 건양대 병원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위 수술을 받아야 할 박모(여·64)씨의 갑상선이 절제됐고, 갑상선 수술을 해야 할 전모(여·62)씨는 대신 위가 잘려 나갔다. 전 국민이 놀란 이 사건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당사자들과 병원은 어떻게 됐을까.

◆위암환자로 갑상선 수술받은 박씨

앞으로 평생 갑상선 치료를 받아야 할 박씨는 충남 논산시에 살고 있다. 기자가 찾은 지난 3일에도 그녀는 논산의 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박씨는 뒤늦게 위 수술을 받은 뒤 올 1월 9일 건양대 병원에서 퇴원했다.

‘봉변’이라고 표현해야 할 일을 당한 뒤 박씨는 기약 없이 ‘위’와 ‘갑상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평생 소식(小食), 약 복용, 만성 무기력증과 피부가 붓는 ‘부종’ 등 갑상선 기능 저하증 예방 호르몬을 맞아야 한다. 병원측은 박씨에게 갑상선 수술을 한 데 대해 “수술실에서 박씨에게 우연히 갑상선 결절이 있는 걸 보고 당연히 갑상선 환자인 줄 알았다”는 해명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우연의 일치를 많은 사람들은 ‘초상집에 염장 지르는 것’ 정도의 핑계로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박씨는 아직까지 신경이 무척 날카로운 것 같았다. 어렵사리 전화 통화가 됐지만 “짜증난다” “건드리지 말라” “왜 귀찮게 하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남편으로부터 ‘억울한 사연’을 들어보았다.

“아들하고 며느리가 건강진단 결과를 보내줘서 암인 줄 알았죠. 수술하기 열흘 전에 암 진단을 받았어요. 그때까지는 잘됐다고 생각했는데 당일 ‘수술이 잘못됐다’는 날벼락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박씨는 병원으로부터 아직 금전보상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갑상선환자로 위 수술받은 전씨

정반대로 멀쩡한 위가 3분의 1이 잘려나간 전모씨는 자신이 해외토픽에나 등장할 법한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 그날이 1월 16일이었으니 거의 20일 가까이를 멋모르고 보낸 셈이다. 가족들이 충격을 우려해 사실을 숨겨왔기 때문이다.

뒤늦게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을 알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다 설날 연휴 직전인 1월 27일 건양대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 충격 탓인지 전씨는 원래 살던 충남 조치원읍의 아파트 대신 다른 곳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들도 “못 본 지 한참 됐다”고 말했다. 병원측은 “전씨에게 2억50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이는 자칫 초대형 의료사고 송사(訟事)로 번질 일이 무마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대체 왜… 병원엔 무슨 일이

이렇게 황당한 일은 왜 벌어진 걸까. 당초 박씨와 전씨는 위암과 유방암 분야에서 명망이 높은 두 교수로부터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수술 당일 아침 행적을 보면 두 환자는 아침 일찍 건강을 체크한 뒤 팔목에 이름과 병명 등이 적힌 팔찌를 차고 입원실에서 병원 3층 수술실로 갔다. 오전 8시30분쯤이었다. 이들을 맞은 수술실 마취간호사는 병동간호사로부터 환자들을 인수하면서 차트를 확인했다. 이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 뒤 침대에 걸려 있던 두 환자의 차트가 뒤바뀌는 일이 생겼다. 병원측은 지금도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이낙균 홍보실장은 “스태프들의 진술을 받아보니 의심 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진술이 엇갈리는 데다 징계가 뒤따르는 문제라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후 환자가 뒤바뀐 채 수술이 이뤄졌다. 각 수술실에는 집도의 한 명, 마취의 한 명, 전공의 한 명, 수술간호사 한 명, 마취간호사 한 명, 순환간호사 등 10여명 정도가 있었지만 이들은 신원확인 절차를 밟지 않았다. 이 과실(過失)에 대해 당사자들과 병원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 일이 알려진 뒤 미확인 루머가 퍼졌다. “술을 마시고 수술을 했다더라” “일정이 너무 빡빡해 의료진이 지친 게 원인이었다더라”는 식의 ‘카더라 통신’이다. 사고수습위원장인 이명수 부총장은 이런 루머를 일축하면서 “사고 원인은 매너리즘”이라고 말했다.

사건 후 환자들은 물론이고 건양대도 큰 타격을 받았다. 2004년 보건복지부 평가 대전·충남지역 최우수병원이라는 애써 쌓은 명성에 큰 흠집을 입었다. 병원측은 “외래, 입원 합쳐 환자가 7%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영혁 원장과 당시의 집도의, 마취의 등 의료진 4명과 진료부장, 기조실장 등 행정직 5명은 사직서를 냈다. 그러나 아직 수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사건 발생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이 일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지난 2일 기자가 찾았을 때 대전 서부경찰서 지능1팀은 건양대 병원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를 하고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의료소비자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주목할 만한 의료사고’로 보고 사태의 추이에 관심을 두고 있다.

(논산·조치원=최규민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min4sal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