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년간 한 피고인을 239회나 소환
몇 년전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이 한 기업체의 간부를 수사하면서 1년여 동안에 무려 239차례나 소환을 한 것에 대하여 크게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신문의 사설이 지적한 것처럼, 과잉소환은 크나큰 인권침해이다. 형사사건의 97% 이상을 담당수사하는 한국경찰 60년 역사에서 이런 엄청난 인권침해 사실은 단한번도 없었다. 필자는 아직까지 세계의 선진국에서도 이런 예는 찾지 못하였다.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 부여 문제가 광복후 지금까지 수십년간 논의되어 오는 동안에, 검찰이 시종일관 이를 단호히 반대한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검찰과 경찰의 법률지식(자질)에 격차가 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일류대학 출신에 사법시험 합격자이지만, 경찰은 어느 것도 검찰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인권의 존중이냐, 침해냐 하는 문제는 법률 지식 수준이 높으냐 낮으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수사관의 인성(인간성)과 정치권력 체제에 달렸다. 그것은 유식한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고 덜 유식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와도 같다. 인류역사상 가장 인권 유린이 극심한 체제는 독제?전제?전체주의 국가이었다. 나치스 독일, 팟쇼 이태리, 군국주의 일본등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팟쇼체제에 빌붙어서 이를 합리화 해주고, 탄압기술을 제공했던 자들은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고 바로 출세지향의 일류 대학 지식인들이었다.
이른바 5공시대의 집권 지배집단을 항간에서는 “육법당”이라고 하였다. 인권유린이 가장 많았던 이 시대의 권력주체 집단을 육법당이라고 호칭하였는데, 이것은「정치군인 집단과 법률지식 집단」의 합성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고도 “인권＝법률지식‘이라는 등식이 성립될수 있는가. 결코 아니다. 필자는 그 정반대라는 사실을 인류역사를 통하여 확신하고 있다.
피의자(피고인) 한 사람을 1년동안 이백사십번이나 불려다니게 하여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법률지식이 모자란 경찰의 소행이 아니라 법지식이 풍부하다는 검찰의 소행이었다. 그외에도 백수십번씩 소환 조사당한 사례는 많다. 교도소 수감자들 사이에 흔히 있는 말로서 “판사는 재판을 자꾸 미뤄서 조지고, 검사는 자꾸 불러서 조진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신속재판의 지연과 소환조사의 남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정신적 침해가 보다 큰 인권침해
우리가 인권침해라 할 때에는 흔히 고문?폭행?가혹행위등 육체적 피해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침해는 정신적?영적 고문이라고 생각한다. 취조(조사)를 하면서 가족과 사업체에 대한 협박이나 “이것만 자백하면 무엇?무엇은 빼주겠다”는 식의 흥정, 과거의 위신이나 체면을 엉망으로 비하시키는 모욕?멸시?욕설, 장시간 휴면 방해등등 그 방법은 일일이 열거할수 없을 만큼 많다.
최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고 자살한 고위공직자, 기업체 대표등이 많았다. 그들이 비록 육체적 고문은 받지 않았을 지라도, 정신적 고통은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컸다고 할 수 있다. 어떻든 스스로 목숨을 버린 자살로 치닫지 않도록 검찰의 조사방법은 크게 개혁되어야 한다.
19년전에 필자가 존경하는 한 경무관이 어떤 사건의 지휘 책임 때문에 2～3일간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나와서, 당시의 심경을 토로하였는데 근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의 말씀이 필자의 가슴에 저려옴을 느낀다. 수모스러운 취조를 받고 있는데 바로 그순간 고층건물의 취조실 창밖에 한 청소부가 줄을 타고 내려와 유리창을 닦고 있더라는 것이다. 고층건물의 외벽에 줄을 타고 유리창 청소를 하는 위험한 직업이야 말로 3D 직업으로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직업이다. 그런데 그 경무관의 마음에는 취조받는 자기가 지금 지옥에 있고, 고층건물 창밖에 줄을 타고 있는 청소부는 지금 천국(천당)에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그 행복한 천국의 모습이 부럽더라는 것이다. 지옥과 같은 정신적 고통을 체험한 것이다.
조사받는 처지가 인격멸시의 지옥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취조방법도 개선되어야 한다. “변하지 않는 권력과 변하지 않는 검찰”(2000. 1. 19. 문화일보 시론)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검찰은 수사권을 독점적으로 장악하려 하는 손을 이제 펴야 한다.
3. 수사구조 개혁은 국민을 위해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Acton경) 이 세상에 선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권력, 특히 독점적 권력은 견제가 없는 한 남용하고 부패?타락하게 된다. 견제와 균형은 권력의 필수적인 안전장치이다. 3권분립(권력분립)이 민주주의 기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국민 인권을 생각한다면, 수사권(경찰)?기소권(검찰)?재판권(법원) 역시 분권화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법체제의 분권화 없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검찰이 독점하려 하는 것은 국민의 인권보장과 사법서비스에 배치되는 이권(利權)의 욕심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독점적 사법체제는 영?미국, 독일?프랑스?일본등의 제도에는 그 유례가 없다.
경찰에게 독자적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론은 압도적이다. 05. 6. 15 한나라당의 자체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조사대상 2,472명중 69%가 지지하였고, 05. 8. 19 월드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조사대상 1,000명중 79.4%가 경찰수사권을 지지하였다. 정부여당도 경찰에게 독자적 수사권을 부여하기 위한 형소법등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검찰은, 수사구조 개혁이야 말로 돌이킬수 없는 당위이며, 대세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진정 국민을 위한, 민권을 위한 기본권의 원상회복이다. 수사권을 더 이상 이권적 차원에서 독점하려고 집착해서는 안된다.
4. 경찰수사체제의 획기적 혁신
한편 경찰수사체제와 방법도 이대로는 안된다.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과 책임에 상응한 일대 혁신을 계획성 있게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지면관계로 그 모든 것을 여기에 열거할 수는 없고 몇가지만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21세기 초고속 정보화 시대에 부응할수 있는 과학수사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원초적이면서 중요한 것은, 역시 수사두뇌(인력)?장비?정보자료 관리 D/B등이 혁신되어야 한다.
둘째, 수사과정의 공정성?투명성?청렴성?신뢰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예컨대 수사(취조)과정의 녹화검증, 수사상황의 실시간 통지 및 열람, 서면수사 지휘제도, 이의 사건의 검증, 청렴성에 대한 객관적?정기적인 진단평가등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인권존중과 피해자보호 및 수사의 서비스화를 수사경찰의 최고의 가치로 제고시켜야 한다. 인권위원회 설치, 인권규칙의 시행, 조사실 환경개선, 불구속수사 원칙 피해회복과 보상의 실질화등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과거 검찰이 수사권를 독점하고 있을때와 비교해서 경찰의 독자적 수사가 국민측에서 볼 때 인권과 청렴성 및 편의성과 수사 서비스면에서 획기적으로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게 되어야 한다.
(백형조, 경찰학 박사,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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