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비참한 현실
싱가포르선 법인세 15년 면제, 투자액 40% 융자 …
한국은 법인세 5년만 면제
[중앙일보 김영욱] 싱가포르 남동쪽의 탬핀공단（Tampines Park）. 삼성전자가 독일 반도체 장비업체인 실트로닉사와 공동 설립한 실트로닉 삼성 웨이퍼（SSW）가 입주한 반도체 전용공단이다. SSW는 반도체 중간 재료인 웨이퍼를 생산하는 회사다.
양사가 각각 2억 달러씩 투자해 지난해 6월 준공한 이후 12인치 웨이퍼를 월 20만 장 생산 중이다. 종업원 수는 현재 600여 명. 그러나 조만간 생산량 월 30만 장, 종업원 수 800여 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여기서 만든 제품은 전량 한국의 삼성전자로 운반된다. 최근 현지에서 만난 이 회사 박영욱 법인장은 “삼성전자 근처에 있으면 물류비도 절약되고 기술·공정상 문제에 대한 대처도 훨씬 쉬워 합작 공장을 가급적 수원의 삼성전자 옆에 설립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워낙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바람에 한국이 제시한 조건으로는 합작 파트너인 실트로닉사를 설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올해 일자리는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수십만 개 줄어들 게 확실하다. 그래서 기존 일자리를 여러 개로 쪼개는 일자리 나누기 운동（잡셰어링）도 활발하고, 엄청난 돈을 투자해 저이산화탄소 녹색 성장 등 신수종 사업 창출에도 안간힘이다. 그러나 돈을 별로 들이지 않으면서도 한결 수월한 방법이 있다.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바로 그것이다.
◆싱가포르의 격적 인센티브
싱가포르의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4000달러. 한국의 두 배나 되는데도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SSW를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15년간 법인세 면제라는 특혜를 제공했다. 심지어 투자액의 40%를 저리로 빌려 줬고, 부지 임대료도 4년간 면제해 줬다. 그러나 한국은 겨우 법인세 5년 감면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SSW 관계자는 “합작사인 실트로닉은 처음부터 싱가포르를 희망했지만 우리는 한국을 우기던 상황이었다”며 “그러나 조건 차이가 워낙 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준공식에는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선약을 바꾸면서까지 참석했다고 한다.
반도체 부품업체인 네패스가 싱가포르에 합작 설립한 자회사（네패스 Pte）도 파격적 인센티브를 받았다. 웨이퍼상의 칩에 미세한 돌기（범프）를 형성시켜 소형·고집적 패키징을 가능케 하는 기술특허를 갖고 있는 회사라는 점이 평가받았다. 이 회사 김두희 이사는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회사는 모두 혜택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네패스도 법인세 10년 면제 혜택을 누렸다. 또 기계와 원재료 구입비, 연구개발 및 인건비 등도 각각 30~50%의 지원을 받았다.
싱가포르가 이처럼 인센티브를 주면서 외자를 유치하는 것은 일자리 창출 목적이 크다. 외자에 혜택을 주면서도 일정 규모 이상의 자국인 고용 유지를 반드시 조건으로 내거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박영욱 법인장은 “전체 종업원 중 싱가포르인 채용 비중이 60%”라며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기개발연구원 이선화 박사는 “기업 환경이 싱가포르만큼만 됐어도 SSW는 한국에 설립할 수 있었고 800여 명의 좋은 일자리도 뺏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로 빠져나간 한국기업 유턴시키자
중국 톈진에 진출해 있는 성주음향은 TV와 자동차용 스피커 제조업체다. 경기도 포천에 있다가 10여 년 전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인력난이 주된 이유였지만 수도권 규제 탓도 컸다. 군사보호시설과 상수도보호시설, 수도권 정비계획법 등의 규제로 공장 신·증설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 회사 최윤길 사장은 “규제가 완화되면 국내로 돌아올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톈진 공장의 근로자 수는 900여 명. 이 회사가 U턴한다면 이만큼의 일자리가 국내에 생긴다.
경기개발연구원 김은경 박사는 “올 초 중국에 진출해 있는 21개 한국 기업을 조사했더니 이 중 6개사가 국내 기업 환경이 좋아지면 U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황인학 상무도 “해외로 나간 국내 기업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도 일자리 창출에 큰 보탬이 된다”며 “이를 위해 임대료 지원 등 외국인 투자에 준하는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수도권 규제도 대폭 완화해 기업들이 원하는 곳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싱가포르=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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