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앙당안국(기록보관소)은 3일부터 일제 전범(戰犯)의 '중국 침략 죄행(罪行) 서면자백서'를 하루 한 편씩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이 자백서는 중국에 붙잡힌 일제 전범 1017명이 직접 작성한 '참회록'의 일부다. 총 20만쪽 분량에 이르는 이 자백서에는
 ▲학살·고문
▲군 위안부 강제 동원
▲생체 실험
▲독가스 살포 등에 참여했던
전범들의 고백이 실려 있다. 중국 정부는 이 가운데 45편을 뽑아서 '반(反) 파시스트 전쟁 승전 기념일(우리의 광복절)'이라고 부르는 8월 15일까지 매일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첫 편으로 공개한 자백서에서 스즈키 게이쿠 당시 일본군 117사단장은 "한·중 부녀자를 유인해 위안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후지타 시게루 당시 28연대장은 2편에서 "중국군 포로 600여명을 일본군의 '총검술 교재'로 살해했다"고 밝혔다. 가미사카 가쓰 당시 일본군 소장은 3편에서 "독가스로 중국 군인과 주민을 학살했다"고 고백했다. 중국은 사사키 노스케 당시 39사단장의 4편 자백서를 통해 "(일제가) 중국 부녀자 50여명을 성폭행했고, 일반인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살해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공개한 이 자백서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일제 전범들이 진실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949년 집권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일제 전범에 관대한 조치를 취했다. 1000여명에 이르는 B·C급 전범 가운데 중국이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당시 전범 재판을 했던 연합국 가운데 한 사람도 사형시키지 않은 경우는 중국 공산당이 유일했다. 연합국의 B·C급 전범 재판에서 미국은 140명, 영국은 223명, 네덜란드는 226명을 각각 사형에 처했다. A급 전범은 도쿄 국제 재판을 통해 처벌했다.

중국 공산당은 당시 전범 재판에서 '죄는 일본 군국주의에 있을 뿐 일본 인민에게는 없다'는 원칙을 내걸었다. 지금도 랴오닝성 푸순(撫順)시의 전범관리소에는 "일제 전범의 인격과 민족적 습관을 존중하라"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지시가 걸려 있다.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일제 전범은 고문이나 폭행을 당하지 않았다. 전범들은 하루 세끼를 먹었고, 필요한 치료도 받았다.

대신 중국 공산당은 일제 전범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백지에 써가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현재 중국이 공개하고 있는 서면 자백서는 이 같은 과정을 거쳐서 작성된 것이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에 붙잡힌 일제의 B·C급 전범은 강압적이거나 폭력적인 분위기에서 자백서를 쓰지 않았다"며 "자신의 잘못을 과장하거나 지어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당 정권은 1964년까지 자백서를 썼던 전범들을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푸순 전범관리소 관계자는 "당시 공산당 지도부는 혁명 성공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일제 전범들도 '공산주의적 신(新)인간'으로 개조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고문보다는 사상 교육을 통해 전범의 반성을 유도했던 것이다.

중국은 2차 대전 때 3500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용서와 화해'라는 전후(戰後) 질서를 수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도 중국이 현재 '전범 자백서'를 공개하고 나선 건, 일본이 이 같은 전후 질서의 원칙을 일방적으로 깨뜨렸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최근 한국·러시아 등에 내년에 '반(反)파시스트 승전 70주년'을 공동 기념하자고 제안한 것도 일본의 우경화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