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국과 自由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다
金 東 吉
1928년 평남 맹산 출생. 평양고보·연희大 영문과 졸업. 연세大 사학과 교수·부총장 역임.
통일국민당 최고위원·제14代 국회의원 역임. 現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金東吉 연세大 명예교수
16代 대선은 죽기 아니면 살기의 결전
「敗戰(패전)의 將(장)은 軍事(군사)를 논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민주사회의 선거란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누가 당선되든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통상적인 관념인데 어찌하여 대한민국의 16代 대통령 선거는 민족의 死活이 걸린 죽기 아니면 살기의 결전으로 여겨졌을까. 그렇게 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고 믿는다.
3파전이 벌어졌던 13代 대통령 선거에서 盧泰愚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일반 국민은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그의 임기 5년을 맞았던 것이 사실이다. 민주화를 갈망했던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마땅히 단일화를 했어야 할 金泳三씨와 金大中씨가 따로따로 출마하여 나가떨어지는 꼴을 지켜보면서 『저런 못난 인간들도 있나』하며 욕설을 퍼붓던 사실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나 그때에 全斗煥씨의 뒤를 이어 盧泰愚씨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땅을 치는 유권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14代 대통령 선거를 앞에 놓고 金泳三씨와 金大中씨와 鄭周永씨가 말을 타고 나왔을 때 큰 돈을 쥐고 앉은 사람이 권력의 頂上에까지 오르는 것은 경계할 일이라는 통념이 깔려 있었고, 영남 사람들은 金泳三 후보에게 몰표를 주어 金大中씨는 평생에 세 번째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金大中씨의 사상과 이념을 크게 문제삼는 유권자는 많지 않았으므로 金大中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나라가 망할 뻔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15代 대선이 다가오면서 金大中씨의 사상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자민련을 이끌고 보수정치의 泰斗(태두)로 자처하던 金鍾泌씨가 金大中씨와 손을 잡고 후보단일화를 실현시킴으로써 선거의 판도가 크게 달라진 것이었다.
大選이 있을 때마다 金大中씨를 기피하던 충청도 사람들이 역사상 처음 金大中씨의 손을 들어 주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그의 사상을 의심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을 향해 선거기간 중 金후보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金鍾泌씨와 손을 잡았으니 나의 사상검증은 다 끝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15代 대선에는 공교롭게도 李仁濟라는 여당인 신한국당의 경선불복자가 튀어나와 경상도의 수백만 표를 긁어갔다. 때문에 여당 후보이던 李會昌씨는 40만 표도 안 되는 작은 표 차로 패배의 고배를 마시고 金大中씨는 이 나라의 15代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 결과를 놓고 땅을 치며 통곡한 사람은 없었다. 왜 그랬는가 하면 金大中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햇볕정책 같은 위험한 발상을 가지고 꿈에도 소원이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인 北의 金正日과 불장난을 하게 되리라고 짐작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담담한 심정으로 李會昌 후보의 패배와 金大中 후보의 승리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운동권과 親北세력이 대한민국 大選에 영향을 미친 것은 史上 처음
그러나 16代 대선은 성격이 전혀 달랐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하면 李會昌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盧武鉉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같은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 전혀 국적이 다른 사람들 같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꼭 들어맞는 분류는 아니지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기성세대와 신세대, 그리고 反美(반미)·親北(친북) 세력과 親美(친미)·反北(반북) 세력의 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군사정권下에서 목숨을 걸고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이른바 운동권 내부의 좌경세력이 일단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열광적으로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고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北을 의식하며 장차 민주주의의 패망이 불가피하다고 믿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무리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大選에서 공교롭게도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은 불행한 사고가 유권자의 反美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SOFA(주한미군 지위 협정)가 마치 미국과 한국 사이에 체결된 일종의 불평등 조약처럼 여겨짐으로써 당장 개정하지 않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는 성난 무리들이 도처에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反美 시위를 벌이므로 그것이 57만 표의 승리를 盧후보에게 안겨 주는 일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고 본다.
운동권이나 親北세력이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北의 金正日은 노골적으로 盧武鉉 후보의 당선을 바라고 있었다고 하고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고 느껴진다. 李會昌 후보에게 표를 던진 1100만 명 중에는 그의 패배와 盧후보의 승리가 머지않아 이 땅에 엄청난 위기를 몰고 올 것 같은 예감에 전전긍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가 자유민주주의의 패배라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반면 盧후보의 승리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이 1200만 명에 가깝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 때문에 무조건 석방된 간첩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당국에서 발표한 바 없으므로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공작원들이 北의 인민공화국의 승리를 위해서 대한민국 땅에서 자유롭게 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야 얼마나 감격스럽겠는가.
춤추는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 번도 사회주의적 체제와 이념을 강행해 본 바 없으므로 무한한 동경의 눈으로 북녘 하늘을 바라다보던 문제의 젊은이들이야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고 얼마나 감격하였겠는가.
그러나 이제 공이 좌측으로 굴러갔기 때문에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면 역사의 엄청난 시련을 예감하고 몸서리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反美·親北이 매우 민족적이고 자주적인 주장 같지만 어떤 그럴 듯한 주장도 대한민국 존폐의 위기를 몰고 와서는 안 된다. 北의 金正日이 원하는 대로 적화통일 되기를 바라는 간첩들이 또는 이에 동조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상당수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헌법을 지킨다고 서약을 하고 나서 그따위 불순세력에 동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北의 南侵 가능성을 부각시켜 젊은 세대를 설득하지 못한 기성세대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패배가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패배의 원인이 틀림없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득권을 누려 온 사람들이 지나친 교만에 빠진 것이었다. 된장찌개에 보리밥도 배불리 먹지 못하던 시절에는 그것이라도 배불리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느끼는 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이지만, 비록 된장찌개에 보리밥을 배불리 먹게 되었다고 그 사람이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웃에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사람을 보면 자연 속이 뒤틀리고 된장찌개도 보리밥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고 그 가슴속에 오직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이 나라 백성 중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특권층의 상상 못할 사치를 목격하고는 속이 뒤집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른바 명품이라는 물건들 중에는 핸드백 하나, 신발 한 켤레, 블라우스 한 가지가 가난한 사람들의 열두 달 벌이와 맞먹는 고가품이 수두룩하다. 일전에 서울 시내 어떤 호텔의 와인 전시장에 진열된 포도주 가운데 1병에 755만원짜리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거기 서 있는 여직원에게 『이런 포도주를 사 먹는 사람도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여직원은 미소를 지으면서 『네, 있습니다』라고 하더니 『비싼 맛에 먹는 것이겠지요』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포도주 1잔에 100만원이 넘는다는 말이 아닌가. 제정신으로야 어떻게 그런 술을 사 마시겠는가. 20억, 30억원짜리 빌라를 짓고 산다는 부자들도 적지 않다. 단칸방에 사는 가난뱅이가 그런 기사를 신문에서 읽으면 속이 뒤집힐 것은 사실 아닌가.
李會昌 후보와 그를 내세운 한나라당 그리고 李후보를 지지한 많은 유권자들이 지나치게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빛의 아들들이 어둠의 아들들에 비하여 어리석은 것은 확실하다. 학생 사회에, 근로자 사회에, 저소득층에, 그리고 인터넷에 정권교체 아닌 세대교체를 부르짖으며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는 盧武鉉 후보의 지지자들은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北으로부터의 남침 가능성을 부각시켜 젊은세대들을 설득하는 일에 기성세대는 실패한 셈이다. 北의 위협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주장하는 저들 앞에 기득권을 누리던 기성세대는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국민, 軍은 각성해 대한민국의 헌법을 死守하라!
그래서 전쟁은 이제부터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 대한민국의 헌법을 우리는 死守(사수)해야 한다. 간첩이나 北의 인민공화국에 동조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저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수많은 이 나라의 젊은 혼들의 염원을 저버릴 수는 없다.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남북의 통일이 이루어져야지 北이 원하는 대로 적화통일이 되면 역사는 방향을 잃고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당선된 대통령이 民意(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나라 일을 좌지우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각이 있는 국민이라면 민주적 국회를 육성하고 또한 사법부로 하여금 행정부의 독주를 헌법으로 견제하게 할 것이다.
軍의 자성과 각성이 매우 시급한 때이다. 軍의 통수권이 대통령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공산침략에 대비해야 하는 국군의 자주성을 무시할 수 없다. 軍이 방심하면 공산정권下의 노예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이 마당에 軍 본연의 사명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자유민주주의를 사수해야 할 대한민국의 지성인, 지식인들이 (공산화가 되면 먼저 처형돼야 할 사람들이 이 사람들인 것을 우리는 6·25 전쟁을 통해 깨달아 알고 있는데) 목숨을 걸고 나서야 할 때가 바로 이때가 아닌가. 멍하고 앉아 있다가 저 사람들 손에 맞아 죽느니보다는 녹슨 칼이라도 뽑아 들고 일선으로 달려갈 비장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다 만들고 미국은 이라크와 북한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 이때에 우리는 경솔하게 또는 어리석게 행동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일이 잘못되고 난 뒤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면 잘하는 일인가. 민족의 자존심 운운하는 것은 위기에 처한 조국의 입장에서 볼 때 사치일 수도 있다.
이 국민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잘 준비된 반듯한 지도자 한 사람을 외면하고 이제부터 새롭게 준비해야 하는 불안한 지도자 한 사람을 선택한 셈이다. 일단 그 자신과 그의 청와대와 그의 주변의 부정부패는 논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제야 죽을 자리를 찾았구나!』
이제 누가 8억원이라는 少額(소액)을 들여(본인의 주장이지만) 30억도 더 되는 돈이 들었으리라고 전문가가 알아보는 어마어마한 199평의 저택을 짓고 그 속에서 당분간은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요새 金大中 대통령을 두고 「하늘이 무섭지 않은가」라는 오래된 속담을 되새기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金大中 정권을 계승하는 盧武鉉 정권이 장차 국민이 신뢰할 만한 정직하고도 선의에 가득 찬 정치를 할 수 있으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민족의 앞날은 암담하기 짝이 없다. 그 모든 거짓말, 그 모든 공약에도 불구하고 盧씨가 대통령이 되어 할 수 있는 일이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국민만 살아 있으면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된다는 속담도 있고 심지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옛어른들의 가르침도 있다. 오죽하면 그런 말을 뇌까리며 그 조상들은 위기를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 아닌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진정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솔직하게, 허심탄회하게 한마디 하고자 한다.
나는 조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가 돼 있다. 나는 그런 동지들을 찾는다. 이때에 죽지 않으면 언제 죽겠는가. 南岡 李昇薰(이승훈) 선생 말씀대로 『내가 이제야 죽을 자리를 찾았구나!』
3·1 독립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33인 중에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전갈을 받고 평북 오산에 은거해 있던 남강 선생이 그 한마디를 던지며 무릎을 쳤다는 것 아닌가. 전쟁은 이제부터다. 죽을 각오는 되어 있는가. 이렇게 한마디 물으며 붓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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