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입국하자 조사관들은 『제일 먼저 가 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남조선 감옥과 쓰레기장』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런 귀순자는 처음이라며 『왜 하필 그런 곳인가』라고 하였다.
나는『어떤 나라에 가든지 그 사회의 인권상황과 생활수준을 그대로 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어렵지 않게 남한 감옥과 쓰레기장을 가보았다.
경찰간수보다 더 뚱뚱한 죄수들보고 놀랐다.
쓰레기장에서... 버린 것이 너무 아까워 혼났다.
법 어기고 살 것 같지 않던 내가 탈북 망명자가 되고 또 감옥까지 가보리라고는, 그것도 세 나라의 감옥(북한, 중국, 러시아)에 갇혀 볼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남한에 와서 조사 받은 반년간의 「무자유한」기간 까지도 포함시킨다면 도합 네 나라의 감옥에 갇혀 보는 것으로 된다.
이러한 체험은 나라마다 감옥 실태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객관적 처지에 나를 세워 놓았다.
탈북동기
북한에 있을 때 나는 정말 충성분자였다.
항일투쟁을 한 인민의 수령이라는 것 하나 만으로도 김일성 부자는 나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고, 여기에 고지식한 성품과 또 조국과 인민을 위해 무언가 남기고 죽는다는 생의 좌우명까지 겹쳐 있었다. 따라서 『쌀은 곧 공산주의이다』라는 김일성의 교시를 받들어 전자공학이라는 꿈을 접을 정도였다. 나는 오직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일념으로 일 밖에 몰랐다. 술, 담배, 연애는 물론 그 흔한 주패(카드놀이)와 장기 놀음도 할 줄 몰랐다.
혁명의 요구대로 서른 살 늦장가 가서 첫날밤에 여자를 어찌 할 줄 모를 정도로 농업연구에만 전념하였다. 마침내 내가 맡은 연구분야에서 공화국 제일의 권위자가 되였고 그처럼 바라던 농업생산기술도 완성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훌륭한 연구성과들이 집단농장 현실에 나가기만 하면 빛을 잃는 것이다.
충성심은 안락한 연구실을 떠나 농민을 직접 돕기 위한 현지에 나가게 하였다. 6년 간 현장 속에 있어 보니 뜻밖에도 식량난은 근본은 기술보다는 농업정책의 잘못(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근로자 개개인의 의욕을 마비시키는 공산주의적 집단농장방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는 소출 차이로 극명하게 나타냈다. 즉 집단농장 밭에 비해 개인화 된 밭에서 나는 곡식 량은 3배 이상 높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식량난의 근본대책은 현 집단농장을 개인농화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염원을 담아 <인민의 어버이> 앞으로 편지(북에서는 '중앙당제1호 편지'라고 함)를 보냈다.
말 한마디 글 한자에 죽고 사는 북한사회에서 이 제의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위험천만한 정치적 제기라고 만류하다 못해 처는 이혼에 이를 정도였다.
처의 우려대로 개인농 주장은 이색사상으로서 북한사회에서 허용이 안 된다. 인민이 굶어도 권력유지가 우선인 김 부자의 속성을 깨달은 순간 수령 우상화는 무너지게 되였다.
식량문제 해결에 삶을 걸었던 나는 북한사회에서 살 의미를 잃었다.
한편 자체분석과 중국교포들을 통해 남조선이 결코 북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자유가 억압되고 깡통 찬 사회가 아니라는 것도 어느 정도 알게 되였다. 김 부자 앞으로 편지 쓰기 전 까지는 꿈에서조차 생각 못하였던 망명과 월남의 뜻을 불현듯 가지게 되였다. 특히 언론의 자유가 있는 곳에 가서 『북 식량난은 개인농을 하면 해결된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중국에서 잡혀 오다
탈북을 결심할 때 심리적 고통은 「조국반역자」가 된다는 죄책감이다. 조국반역자 걱정부터 하는 북한사람들은 그만큼 사상교육과 교양으로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의 갈등은 이남도 내 조국 땅으로서 조국반역자로 될 수 없다는 이해로 해소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금방 깨닫는 것을 지금껏 수 십 년 간 생각해 보지도 않고 살았다는 것이 참 이상할 정도였다.
다음으로 무섭고 두려운 것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과 가족친지에 대한 걱정이다.
이렇게 살 바에는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각오는 가졌으나 가족이 문제였다.
가족연대처벌은 북한당국이 쓰는 가장 악랄한 통제방법이며, 중세기적 인권유린 행위이다. 그러나 이혼함으로 처자식은 무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고, 기타 관련자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방법으로 탈출을 실행하였다. 국외에 나가서 탈북하는 것은 땅 집고 헤염 치기이다. 북한 내에서부터 탈북은 매우 힘들다. 남쪽의 군사분계선, 동서는 바다, 북쪽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압록강, 두만강이 가로 막혀있고 제일 큰 백두산과 그 밀림이 가로막고 있다. 나는 그래도 탈북하기 좀 나은 조·중 국경 압록강을 넘기로 했다.
탈북자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사선은 국경이다. 특히 사격 태세의 국경경비대를 피하는 것이다. 현재 북한당국이 남북 군사분계선보다 더 경계하는 것이 조·중 국경이다.
탈북자와 외부 사상을 막기 위해 북 당국은 무력을 수배나 증강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경계와 추적을 피하려 벼랑을 타고 내려 압록강 국경을 넘었다.
이제는 살았구나 했는데, 그만 뜻밖에도 날카로운 북 경비대가 아닌 중국 경방대(국경경비대)에 붙잡혔다.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잡히면 죽는 다는 각오는 실제 잡히고 나니 그 것도 감상일 뿐 실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혼이 빠졌는지 벙벙하여 이름도 무엇도 속일 줄도 모르고 대라는 대로 대는 정도였다.
어이없이 잡힌 것은 그만큼 개방개혁 된 중국은...하고 방심했던 것이다. 난생처음 찬 수갑은 중국제이고 감옥도 중국이다. 중국은 북한과의 협약으로 국제난민 법을 무시하고 탈북자들을 잡으면 북송하는 것이 보편이다. 나 역시 중국 장백시 외국인 감옥소에 있다가 압록강 <친선다리>를 거쳐 북한의 혜산으로 넘겨졌다. 말이 <친선다리>이지 탈북자에게서는 죽음의 다리였다.
북한 국경초소에 이르니 자동보총을 든 군인은 나를 보자마자 날카로운 목소리로 <굽어 앉자!』라고 소리친다. 땅바닥에 굽어 앉지 않으면 그 대로 칠 판이다. 마중 나온 권총 찬 정치보위원과의 간단한 인계인수처리가 되자 나의 손목에서 중국제 수갑대신 보다 많이 사용한 듯한 도금 벗겨진 북한 제 수갑을 채우고 후송하였다. 기름 사정으로 인해서인지 아니면 세관과 가까운 곳에 감옥이 있어서인지 걸어서 데려갔다. 이 모든 과정이 마치 꿈속에서 벌어지는 듯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었다.
집결소 생활
국경을 무단으로 넘은 자는 일단 정치적 범죄로 보는 북한은 정치보위부(현 국가보위부)가 직접 예심처리 하게 한다. 월경자를 일차적으로 가두는 감옥은 <정치보위부집결소>라고 부르며 양강도에는 도청 소재지인 혜산에 있었다. 집결소는 예심소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며, 그 사명은 월경자 중 정치범과 경제범(밀수꾼)을 확인 분류하여 정치범은 관리소(정치범 수용소)에, 경제범은 교화소에 보내는 곳이다. 북한 감옥(집결소)에서 처음 당하는 수모는 자살을 방지 조치로서 혁대, 지퍼, 단추, 심지어 빤쯔의 고무줄까지도 뽑아 낸다. 그러므로 일어설 때에는 바지춤을 손으로 잡고 있어야 한다. 이 약점을 알고 두 손을 들고 일어서라고 하면 아래 도리는 자동적으로 발가벗겨진다. 이런 수치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다. 『너는 민족반역자다. 죽어 마땅하다. 솔직히 털어놓지 않으면 살아 나갈 수 없다』는 말로 기를 죽인다.
그렇지 않아도 다시 살아 나올 수 없다는 정치보위부 감옥 안에 들어와 제 정신이 없는데 이런 「사형선고」 말까지 들으면 정말 싸늘하게 심장이 얼어드는 것 같다.
『이제는 죽었구나』하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속에 감방의 첫날밤은 이루 형용할 수 없다. 잠을 이룰 수 없다가 어느 덧 대낮보다 더 밝은 광야를 정처 없이 다니는 나를 본다. 정말 자유로운 창창한 광야다.
이 밝은 <낙원>은 <기상!>(아침)하는 날카로운 소리에 순식간에 깨진다. 하루 밤을 모두 설친 것이다. 밤새 광야는 자유로운 바깥 세상이 너무 사무쳐 그 염원이 신기루와 같이 반영된 꿈이라 할 수 있다.
『너는 사람이 아니다』
감옥 첫날 『너는 이제부터 사람이 아니다. 네 이름은 223번이다』라는 말부터 듣는다. 이 선언과 함께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이 새끼」, 「개새끼」,「개 종간나 새끼」, 「처먹어」, 「자빠져」 등 짐승에게도 흔히 쓰지 않는 온갖 쌍말을 듣게 됐다.
대신 계호원(간수)에게는 깍듯이 「선생님」으로 불러야 했고, 또 같은 인간이지만 그들을 마주볼 수 없다. 마주보면 주먹과 발길이 날아든다. 좁은 감방문을 나설 때는 머리부터가 아니라 뒤로 엉덩이부터 나가 머리 숙이고 굽어 앉았다가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초보자들은 제 정신이 아닌데다 감옥 규정도 익숙지 않아 어쩔 바를 모른다. 그러면 간수들이 직접 또는 감방장으로 정한 수인을 시켜 「정신을 차리게」 해준다.
나 역시 첫날부터 코피 터지도록 맞았다.
맞으면서 얄밉고 격분한 것은 간수보다 감방장이다.
같은 수인처지로서 위안해야 할 자가 마구 치는 것이 도무지 이해 안되고 참을 수 없었다.
피를 보자 나도 모르게 그 자를 거꾸로 메쳐(인민학교 때 씨름선수였음), 변기에 쓸어 놓고 죽여 버릴 듯 족치는 바람에 계호원이 뜯어말린 정도로 소동이 났다.
의외로 처벌대신 완력자로 인정 되여 즉시 감방장으로 임명됐다.
같은 처지므로 서로 위안해야 한다는 것은 나의 생각일 뿐 감옥에서는 말 그대로 약육강식이라는 것을 인차 깨달았다. 감방장에서 해임된 자는 훗날 그 악심으로 얼토당토 고자질하는 통에 애를 먹은 적 있다. 감옥의 고통은 감옥생활 자체뿐 아니라 수인 사이에서도 이루어져 힘이 약할수록, 마음이 어질수록 2중의 고통을 겪게된다.
혜산 정치보위부 집결소 감방 수는 대략 10개 정도인데 내가 갇혔던 감방호수는 4호이다.
감방당 평수는 8평 미만이며 콩크리트 벽으로 되어 있고 출입구는 1m 높이 가량의 낮은 철문, 철문 웃 단에는 밥을 넣거나 수갑을 채우기 위해 두 손을 내미는 구멍이 철 덮개로 가리워 져 있다. 철문 맞은 켠 은 벽 대신 굵은 쇠창살로 복도와 연결되어 있다. 복도에는 간수들이 권총 차고 왔다 갔다 감시한다. 바닥은 나무마루고 한구석에 변기 통이 있으며 여기다 대고 세면도 해야 한다. 냄새가 나는 것은 수인 보다 간수들이 더 못 참아 깨끗이 닦으라고 호령 친다.
배설이라는 생리적 현상도 감옥 안에서는 자유가 없다.
대소변은 반드시 승인 받고 봐야 한다. 수도 물이 중단 될 경우에는 대소변을 억제하므로 수인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허락하지 않아 어떤 수인은 열흘째가 돼서 야 대변을 보는 고통을 당했다. 먹는 것이 적어 변비 속에 대변 허락까지 않으니...
대변 본 후에도 위생지가 없으므로 손바닥만한 걸레조각을 이 사람 저 사람 맹물에 빨아 써야 한다. 그러니 세수 수건, 치약, 치 솔 등이 있을 리 없다. 단지 소금이 있을 뿐이어서 손가락 양치를 해야 한다.
북한 정치보위부 집결소의 특징의 하나는 한 감방 안에 있는 수인 외에는 서로 모르도록 격리된다는 점이다. 몇 달이 지나도 옆 감방의 수인 얼굴을 모르고 지낸다. 다만 심심함을 참지 못해하는 간수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수인의 말을 통해 어떻게 잡혀왔으며 대략 몇 살쯤 된다고 짐작할 뿐이다.
고문 보다 어려운 육체적 고통
평시 감옥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은 고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 믿음은 정치보위부 집결소에서 여지없이 깨졌다. 사형 그 자체 보다 사형 당하기 전까지의 과정이 더 고통스럽다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이 고문이라는 순간의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최소한 6개월 걸리는 수감기간 중 줄곧 돌부처처럼 꼼짝 못하게 정좌시키는 것이다.
정좌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머리는 45도 각도로 벽을 바라봐야 한다. 말해도 안되고 웃는 것은 더욱 안 된다. 또 취침과 잠시 운동시간 외에는 누울 수도 없고 팔, 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다. 앉는 것이 편안한 줄로만 알았던 나의 상식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움직이던 사람을 갑자기 정좌시켜 놓으니 관절 마디마디는 쑤시다 못해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다. 무생물체가 아닌 이상 참다못해 몸을 한번 펴려고 움직이면 어느새 간수가 나타난다. 감방 설계를 어떻게 했는지 그들은 바스락 소리도 다 감지한다.
수인들을 복도방향과 반대로 앉혀놓아 뒤의 간수들을 볼 수 없다. 또 간수는 삵의 발처럼 움직인다. 앞으로 가는 듯 뒤 거름 질 하여 와서는 움직이는 수인들을 색출한다. 특히 간수장이란 자가 악랄하였는데 그가 근무 설 때는 죽어난다. 규정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규정 대로라는 긴장심리는 수인보다 자유로운 간수들이 더 못 견딘다. 그들이 못 참아 수인에게 말을 건다. 한번은 석탄 실러 갔던 간수들이 차가 굴어 다치는 통해 한동안 살고 났다. 간수가 모자라 장기 근무시키니 우리를 마냥 옥죌수 없었다.
움직인 데 대한 처벌은 감옥에 처음 들어 온 사람에게 더욱 가혹하다.
감옥 맛을 처음부터 톡톡히 보여 주어 기를 꺽어 놓으려 어떻게 하나 트집을 잡는다. 처벌 방법은 정좌보다 더 가혹한 무릎 굽고 팔은 들고 있게 한다. 무릎 아픔을 참느라, 또 천근같은 팔을 들고 있느라 땀을 빨빨 흘리며 떨다 못해 쓰러진다. 이렇게 되면 반복 동작, 또 철창 밖에 손 내밀게 하고 손등을 쇠꼬챙이(총소재대)로 때리기도 한다.
나 역시 그때 맞은 손등에 상처자국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황해도 신계 출신의 한 수인(227번)은 두 손을 수갑으로 철창에 결박, 매달린 채 너무 맞아 골병 들었다. 얼마나 가혹했으면 집결소 소장이 간수들에게 주의를 줄 정도다. 사실 수인을 동정해서 보다 예심 하는데 지장 있기 때문이다. 원래 예심기간 중에 수인이 죽어서는 안 된다.
흔히 수인들은 고통을 참다못해 차라리 죽는 편이 낮다고 생각한다.
자살 못하게 모든 조치를 취해 놓았지만, 그래도 수인들은 단식 또는 밥숟갈 삼키는 것으로 시도한다.
실제로 나는 227번 수인의 이런 행동을 발견하고 제지시킨 일이 있다. 자살시도는 감시체제 하에서 성공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시도하는 것은 설사 죽지는 못해도 병원에서 치료받는 잠시만이라도 감옥생활의 고통을 모면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 못하기 때문이다.
꼼짝 못하게 정좌시켜 놓는 북한 감옥에 비해 중국 감옥이나, 로씨야 감옥은 천국이다.
일단 감방 안에 들어서면 눕거나 말거나 마음 대로다. (적어도 나의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남한에 온 후 그 유명하다는 감옥영화 <빠피용>을 기어코 보았다. 그 영화를 보고 감상은
한마디로 북한감옥에 비해 천국이라는 것이다. 감옥 안에서 바퀴벌레 잡아먹을 자유라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보위부 집결소에서 겪는 정좌의 첫 고통은 그런 대로 보름만 지나면 한 고비 넘긴다. 맨 바닥에 앉혀 놓던 것도 이제는 요포를 깔게 한다. 살이 급격히 빠져나가 뼈만 남은 맨 엉뎅이로 딱딱한 바닥에 오래 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도 체념상태에 이른다.
개새끼, 소새끼 소리는 물론 죽인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는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만사가 어떻든 졸기도 한다.
이 고비를 넘기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 그러나 고통을 다 넘긴 것은 아니다.
정좌보다 더 무서운 고통인 배고픔이 엄습한다.
배고픔은 최고의 고통
정좌의 고통보다 배고픔은 장기적이고 최고의 고통으로 된다. 감옥생활 보름만 지나면 아우슈비츠 유태인 마냥 피골이 상접해져 도망가라고 해도 도망 갈 힘이 없다. 물론 반항할 힘도 없다. 이쯤 되면 간수들은 수갑도 채우지 않고 호송한다.
사람을 우롱하듯 한끼 한 두 줌 밖에 안 되는 깔깔한 강냉이밥에 소금물이나 다름없는 멀건 염장 국밖에 못 먹는 수인들은 각종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생체에 필수적인 단백질과 비타민이 절대 부족하여 야맹증·괴혈병·펠라그라 등에 시달린다.
눈앞에는 고기와 밥덩이 가 둥둥 떠다닐 때도 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면 허상인 것이다.
햇빛 쬐기를 시키지 않는 집결소 생활은 사람을 더욱 약하게 만든다.
64kg 정상 체중에서 40kg 이하로 체중이 급감돼 말 그대로 뼈에 가죽을 씌워 놓은 것 같다. 장장 강냉이밥만 먹으니 몸에서는 살 내가 아닌 강냉이 냄새가 난다.
목욕과 세탁은 감옥생활 내내 시키지 않아 때와 이가 많아진다. 때를 벗기면 추울 정도로 두터워 진다. 흥미로운 것은 무골충 같은 <이>들이다. 오래된 수인이 얼마나 맛없는지 하루 밤 자고 나면 새로 잡혀 온 사람에게 몰려가기 때문이다.
별 따기만큼 먹기 힘든 콩밥
감옥 가는 것을 <콩밥 먹으로 간다>는 통속 말처럼 감옥 음식은 콩밥을 연상했다.
그러나 콩밥 먹기는 하늘에 별 따기이다. 오랜 기간 음침한 감방에서 강냉이밥만 먹다 보면 말라죽기 마련이다. 그래서 소량의 콩을 지급 도 록 돼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쌀보다 콩이 더 귀하기 때문에 간수들은 자기들이 가로채 먹어 치운다.
이래저래 수인들만 죽어나는 것이다.
영양부족 고통이 너무 심해 이판 사판 콩밥 달라고 하면 가끔 대여섯 알씩 주는 게 고작이다. 이것도 수감 생활 두 달 정도가 지나 야 겨우 해당된다. 이때 신참은 고참의 밥그릇을 보며 그렇게도 부러워 보인다. 나는 언제 고참이 되어 콩밥을 먹을 가하고...
이에 비해 중국 감옥(길림성 장백현 장백시)에서는 강냉이 빵과 두부 조각 몇 개 떠다니는 국을 주었다. 더 달라고 하면 더 주기도 했다.
망명시절 연길시에서 거리하수도 작업을 하는 중국 죄인들의 식사를 우연히 보았는데, 작업주체사업소에서 공급했는지 쌀밥에 고기 국 먹는 것을 보았다. 그래 선지 죄수들의 얼굴에 살이 쪄 있었다. 같은 공산국가라도 개혁정치와 물질생활 수준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난 다는 것을 실감했다.
러시아 감옥에서 체험해 보면 식사는 검은 빵에 고기국물 과 뻐터를 준다. 물론 중국, 러시아 감옥 내에서 가혹행위와 위생 불결로 인한 이와 바퀴벌레 득실거림은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 감옥에 비할 수 없이 자유롭고 영양 있는 음식을 먹인다는 것이다.
반항과 단식투쟁은 금물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북송 당할 때 중국군인들이 궤춤에 넣어 주었던 빵을 못 먹고 북한 감방에 들어간 것이 허기진 감옥 생활 내내 그렇게도 후회스러웠다.
흔히 처음 감옥에 들어 온 사람들은 음식을 잘 못 먹는다.
감옥 밥이 조 악한데 있지만 그보다도 심리적 불안으로 밥맛이 없으며 실제로 밥을 먹으면 소태 씹듯 쓰다. 당연히 안 먹으리라 보고 곁에 기다리는 고참수인들을 놀리듯 나는 첫 밥부터 다 먹었다. 어쩌면 이것부터 시작하여 감옥에서 살아난 의지인 것 같다.
내가 갇혔던 감옥에 가끔 중국인(대체로 조선족)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처음 며칠 간은 식사를 하지 않는다. 감옥 밥을 보고 중국의 개, 돼지도 이런 것은 안 먹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2∼5일 이후에는 조금씩 먹다가 일주일 또는 열흘이 지나서는 우리와 별 차이 없어진다. 굶주림 앞에는 누구나 어쩔 수 없고 누구나 마찬가지로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북한 정치보위부 집결소 내에서 외국인(중국인)에 대한 특별 대우는 없어 보였다.
다만 특혜라면 신원이 조회되면 훨씬 먼저(약 15∼20일간 체류)본국으로 송환시켰다.
자유롭고 풍요하게 살던 중국인들은 우리보다 북한 감옥에 적응하기 매우 힘들어했다.
고통을 참다못해 한 중국 교포는 감방 문을 발로 차며 항변하였다. 그러자 간수들은 석탄 불 쑤시개 쇠꼬챙이로 무자비하게 때려 기를 꺽어 놓았다.
북한 감옥에서 반항은 금물이다. 보다 가혹 한 형벌과 형기가 차례지기 때문이다. 또 죽여도 누가 나서 항변할 사회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식 역시 가장 어리석은 행위로 될 뿐이다.
감옥 안에서 밥 한끼 안 먹는 것은 평시에 독 감기 한번 걸린 것과 같다고 말한다.
가뜩이나 영양가 없고 소량인 감옥 밥마저 안 먹으면 그것처럼 자기 학 대는 없다.
북한감옥 안에서 병에 걸리면 끝장이다.
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로는 아침 세수시간에 젖은 걸레로 몸을 닦는“냉수 마 찰”로 건강을 다졌다. 간수가 있는 복도에 화독(난로)이 한 개 있을 뿐 모든 감방이 냉방이다. 더구나 내가 수감된 때는 겨울기간이고 백두산과 제일 가까운 고산지대 도시인 혜산 감옥이다. 추위는 또 다른 감옥 고통이었다. 엷은 요포 한 두 장을 깔고 덮는 감방에서의 추위는 잠을 제대로 못 이루게 한다. 아래 도리가 냉기가 와서 설사하기도 한다. 얼마나 추운 지 몸 안에 이는 많아도 바퀴나 빈대 같은 몸 외적 벌레는 한 마리도 볼 수 없다.
감방 안이 추우니 옷과 양말을 입은 채로 잔다. 잠옷이자 외출복인 것이다.
쥐는 최고의 진미
정치보위부 집결소 생활은 정말 감옥살이 중에 감옥살이 이다. 야외 수용소 같으면 솔잎이나 풀잎, 벌레라도 잡아먹으련만 단 한번도 야외에 내보내지 않는 콩크리트 감방 속에서는 주는 것 외에 어찌할 방법이 없다.
콩밥도 제대로 안 주는 북한 감옥 내에서 고기를 먹어 본다는 것은 참말로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도 감옥에서 고기 국을 먹어본 적이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설날 간수들이 먹는 고기를 씻은 물로 국을 끓여 왔을 때이다. 고기 덩이는 전혀 없지만 그 낌새만 나도 비 길데 없이 구수했다.
단백질 부족증은 고기 냄새만 피워도 눈이 번쩍 트이고 그 다음은 먹고 싶은 심리적 고통으로 전환된다. 실제로 어느 날 간수가 수인들 앞에서 난로에 고기를 구어 먹으니 「냄새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이 계기로 나는 자꾸 집에 기르는 돼지새끼를 잡아먹고야 만다는 집념을 털어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석방된 후에는 그 돼지를 잡아먹게 되지 않았다. 이러한 「냄새 고문」으로부터 나타나는 증상은 옆 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혜산 출신의 한 젊은 동료는 자기 집 개를 계속 잡아먹는다는 소리를 곱씹었다.
콩밥도 먹기 힘든 북한감옥에서 나는 진짜 고기를 먹어 본 기적이 딱 한번 있다.
어느 날 나의 국그릇에 엄지손가락 만한 생쥐가 빠져 들어왔다. 아마 <양심 없이> 그 적은 량의 수인 밥을 훔치려 왔다가 발을 잘못 집어 국그릇에 빠진 것 같다.
평상시 같으면 메스꺼웠겠지만 감옥의 허기짐은 누구에게 떼 울 세라 단숨에...
그 고기 맛이 얼마나 좋은지 최고 진미는 쥐 고기라 뇌리에 박힐 정도다.
한편 작은 쥐 한마리를 먹어 배불렀다 기보다는 항상 허기질 때마다 위안이 되었다.
즉, 나는 쥐 고기라도 먹었으니 괜찮은 편이 아니냐는 식으로-
굶주림의 자작시
감옥 안에서 1년 내내 강냉이밥만 먹다가 특별히 입팝(흰쌀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은 김일성, 김정일 생일날과 설날이다. 오랜만에 입팝을 먹을 때는 입안에서 슬슬 녹아 넘어간다. 그러나 소화가 잘되어 인 차 배고파져서 싫다. 오히려 강냉이 밥이라도 많이만 주었으면 하는 것이 수인들의 심정이다.
차디차고 모래알처럼 깔깔한 메 강냉이(사료용) 밥이지만 한 알 한 알 꼭꼭 씹으면 그것은 그야말로 깨처럼 고소하다. 밥 먹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므로 수저 놓기가 아쉬운 듯 오래오래 씹어 먹게 된다.
또 굶주림은 짠 소금덩이도 사탕처럼 달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227번 수인은 양치용 소금을 몰래 건사했다가 짠 줄도 모르고 계속 입에 녹여 먹었다. 그가 소금이 달다고 해서 먹어 보니 정말 그랬다. 이 충동에 못 견뎌 계속 먹는 그는 몸이 항상 부어 있는 듯했다. 나는 먹으면 해롭다는 생물학적 식견과 의지로 참았다.
나는 평시 시를 좋아할 줄 몰랐고, 시 지을 줄은 더욱 몰랐다.
그러나 <분노는 시를 낳는다>라는 누구의 말처럼 굶주림의 고통은 나도 시를 낳았다. 그리고 무의식 중 계속 읊게 하였다.
「차디찬 강낭 밥은
깨처럼 고소하고
짜디짠 소금은
사탕처럼 달 도다」
굶주림 다음으로 오는 고통
정치보위부 집결소 내에서 책을 읽거나, 글 쓰기, 담배나 술은 절대 금지다. 감옥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배고픔과 함께 점차 대두되는 고통은 지성인들에게서 책과 글을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담배 피우던 이들은 담배를 못 피워 죽을 지경이다. 그 정도는 그처럼 굶는 속에서도 밥을 한 두끼 못 먹어도 담배를 피우고 싶다한다. 이 심리를 이용하여 조사관들은 담배를 한 대씩 주며 조사를 유도하기도 한다.
성욕
굶주림으로 인한 영양부족 특징은 손, 발톱이 잘 자라지 않는 것이다. 머리카락과 수염 역시 잘 돋아나지 않는다. 또한 나의 경우만 그러했는지 몰라도 성욕을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하였다. 물론 석방 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감옥 안에서는 느낀 바가 전혀 없는 데 훗날 나 자신도 놀랐다.
이것을 실험이나 하듯 한번은 젊은 여자가 붙잡혀 들어와 옆 감방에 있었지만 역시 그러하였다. (물론 처자에 대한 일반 걱정은 하였다.)
성욕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성욕을 가질 만한 분위기와 건강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철거하면서 그 내부를 공개하는 사진들을 보니 야한 자태를 한 여자들 을 사방에 붙여 놓은 것을 보고 상대적으로 느낀 바가 컸다.
남조선 감옥
또 서대문 형무소 쓰레기장에 쌓여 있는 라면 박스를 비롯한 차입한 음식 포장지들을 보면서 이 곳은 몸보신 <요양소>라는 느낌이 든다.
남한에 와서 민주화를 위해 감옥에 자주 들락거렸던 유명 인사(김대중)의 옥중수기를 주의 깊게 읽었다. 여기에 보면 감옥 밥이 먹기 싫어 차입한 초콜렛을 자주 먹어 뚱뚱해져 혼이 났다는 구절이 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또 시간이 없어 못했던 영어습득을 감옥 안에서 해냈다고 하니 그 자유 함에 더욱 놀랐다.
비 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보더라 도 칠순이 넘도록 감옥 내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남한 감옥의 실태가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비전향장기수들을 북한에 보내 길 잘했다. 그 자체가 북한주민들에게는 놀라운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북한사람누구다 다 아는 '통일의 꽃' 임수경의 경우도 마찬 가지이다. 일단 실정법으로 몇 년간 투옥은 됐지만 감옥 안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있었다. 얼마 후 석방은 물론 오히려 인기가 높아져 기자 출신의 남자와 결혼까지 하였다. 또 임수경 본인에 한하여 법적 처벌하였지 가족은 그대로 있었다.
그러면 북한의 정치범들은 어떠한가.
정치범은 가장 참담한 수인
북한에서 가장 참담한 수인은 정치범이다. 당사자 뿐 아니라 일가친척까지 처벌을 받는다. 정치범에게서 경제범은 하늘처럼 보여진다. 왜냐하면 경제범은 아무리 형량이 많다 해도 언제까지라고 정해져 있고 또 살아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범은 형량이 형식일 뿐 사실 무기징역, 사형이다. 그만큼 정치범으로 일단 규정되면 사회 육체적으로 매장된다. 특히 직위가 높든 낮든 수령의 권위와 체제에 도전했다고 비친 사람은 용서 없이 처단된다.
필자가 함경북도 화성군(옛 명간, 명천군)에 3년 간 현지 연구사업을 위해 주재하고 있을 때이다. 장가 갈 나이의 총각 연구사여서 혼사 말이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처녀는 어랑촌 골짜기 혁명화 구역(정치범과 그 가족들을 수용한 구역)의 교사였다.
이곳에 수용된 정치범 가족 자녀들은 인민학교(초등학교 4학년까지) 교육만 시킨다고 하였다. 강제노역을 시키는 데 지장 없을 정도의 글자와 산수만을 배워 준다는 것이다.
그 처녀선생의 말에 의하면 1977년경에 숙청된 류장식(김 부자의 총애를 받던 중앙당 대남공작비서)과 가족이 그 곳에 있었다고 한다.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다니던 류장식은 달구지를 몰고 다니는 산골 농민이 되였고, 그 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나의 가까운 친척과 함께 평양전승기념관 있던 류장식의 부인은 호걸 여인, 금요노동에 나가 김매기를 할 때 배 나온 몸이지만 앞장서 일을 해 제켜 나가군 했다는 얘기가 인상깊다.
한편 1974년에 숙청된 공화국 부주석 김동규(김일성과 라이벌로 항일유격투쟁을 함)도 화성군에 있었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TV까지 갖춰진 농촌 집에 감금 되여 있었다는 것이다. 공짜 밥은 안 먹는다며 새끼 꼬는 노동을 하였지만 다시 어디로 사라졌다고 한다.
1984년 초여름 내가 현지 연구로 있던 화성군 룡덕분장 기숙사에 정치범 수용소 경비대들이 무장을 한 채 들이닥친 적이 있다. 정치범 한 명이 탈출하였기 때문이다. 30분마다 한번씩 점검하는 감시체계이므로 탈출자가 시간상 얼마 못 간 것으로 판단하고 외곽을 완전 포위하고 장기전을 하는 것이다. 닷새만에 저수지 하수구 밑에 숨어 있던 정치범은 배고프고 추워 참다못해 한밤중에 이동하다 현장에서 사살됐다. 수용소 탈출자는 무조건 총살시키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다고 하였다.
하루 밤 부부생활 허용
경비대 군인들과 며칠 간 합숙하면서 풍문으로만 알고 있던 정치범 수용소 내부 형편을 처음으로 직접 듣게 되었다.
정치범들은 항상 고된 노동으로 육체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만든다고 한다. 그 결과 수용소 내 곡식 밭에는 풀 한 포기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고 한다.
정치범들은 남녀를 구분하여 관리하는바 지어 부부도 갈라놓는다고 한다. 모범수 부부에 한해서 표창으로 1년에 하루 밤 정도 자게 하는 특혜를 베풀지만 자식은 가질 수 없다. 정치범은 씨를 말려야 한다는 정책 때문이다.
고된 노동만 시키고 외부 세계를 차단한 조건에서 정치범들은 바깥소식을 그렇게도 알고 싶어한다고 한다. 가령 경비대들이 피우던 신문지 말이 담배꽁초가 있으면 어느 새 주어 몇 자 안 되는 글이라도 본다고 한다.
정치범 가족 중 반반하게 생긴 처녀들은 양몰이를 시키는 데, 그 이유는 정치보위원들이 성 노리개로 삼기 위해서라 한다. 처녀들은 몸을 거절 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랬으면 한다고 한다. 적막한 수용소의 막바지 인생인 처녀들의 욕구심리라고 할 수 있다.
유사시 집단 사살
정치범들은 자기들이 갇혀있는 수용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끌려 온 다고 한다.
따라서 탈출한 경우도 어느 방향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모르게 돼 있다고 한다.
전쟁과 같은 유사시 적에게 수용소가 함락될 경우에는 정치범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집단 폭사시킬 장치가 마련 돼 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용소의 물리적 해방은 정치범들에게 있어서 곧 죽음일 확률이 높다.
필자는 화성군 룡덕분장에 있을 때 외화벌이용 송이버섯 채취로 수용소 근처에 직접 가본 적도 있다.(1984년 9월) 내 본 것은 경한 정치범가족 수용소 구역이었는지 의외로 철조망은 허술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일부 주민들은 수용소 내부까지 송이버섯을 따러 들어가기도 한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정치범들의 집은 짐승우리 같은 반 토굴 초가집들이었으며, 또 수시로 점검하기 때문에 꼼짝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 외부 주민이 정치범을 만나게 되면 그들에게서 맞아 죽기 쉽다고 한다. 앞이 막힌 극한 상태의 정치범들은 쌓여 있는 원한을 이런 식으로 분출하는 것 같다고 한다.
감옥내의 밀정
정치보위부 집결소(예심소)의 주되는 기능은 월경자가 정치범인가 경제범(밀수꾼이 기본)인가를 명확히 하는 데 있다. 특히 월경자가 남조선으로 가려고 했는가를 밝혀내려 한다.
이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수인자가 생기면 우선 경력조사와 물증확보를 하며 다음으로는 대질심문을 한다. 한편 감옥내의 수인들 중 정치적 가정성분이 좋은 자를 골라 밀정임무를 주어 수인들을 은밀히 조사 한다. 감옥 내 밀정 활용은 예심의 최종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극도의 굶주린 속에서 어 떤 수인이던 간에 입팝(쌀밥)과 담배를 한 두 번 먹이면 좋아라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 두끼의 밥과 담배 몇 대를 위해 한 사람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지든 말든 상관없을 악 본능만 남아 있게 만드는 환경이 북한 감옥이다.
필자가 처음부터 감옥 내 밀정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한시도 꼼짝 못하게 감시하던 간수가 갑자기 몇 십분 간 자리를 비우고 없어질 때가 있다. 말과 움직여서는 안 되는 감옥규정을 어기고 수인 두 명이 내 곁에 와서 이래저래 말을 걸고든다. 묻는 말의 주된 것은 월남한 유학생들이 잘 살고 있다는데 어떠냐는 식이다. 월경원인이 남한 행인가를 알아내기 위한 작전인 것이다.
또 친근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과학자인 나에게 자기 부모들도 과학자라고 하였다. 과학자란 말에 내 가 본능적으로 반가워하며 무슨 연구사업을 하며 어디에 연구소가 있는 가고 물었다. 대답은 식물연구소에서 크로바를 연구하며 연구소는 평성에 있다는 것이다. <아차! 주의해야겠다> 라고 경계한 것은 이때였다. 왜냐하면 식물연구소는 평성이 아니라 평양에 있었으며 또 북한실정에서 크로바를 전문하는 연구사는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밀정질을 하는 수인은 가끔 불려나가 남달리 기분이 좋아서 들어오곤 한다. 입술가에 기름기가 있는 것을 보면 좋은 음식을 먹은 것이 틀림없고 따라서 유달리 만족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감옥 내에서 간수 보다 수인끼리가 더 무섭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오히려 감옥 내 밀정을 역이용 즉 전혀 남조선에 가려는 뜻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실수 한 적도 있다. 그것도 집결소 소장에게 서다.
예심과정 나도 모르게 격한 나머지 '이렇게 하면 로므니아(루마니아) 차우쉐스크 처럼 될 것'이라고 소리지른 것이다. 제정신 아닌 소리로 문제삼지 않아 다행이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가슴이 섬 짓 할 정도의 실수였다.
석방사유
한번 갇히면 다시는 놓여 나오기 힘들다는 정치보위부 감옥에서 내가 살아 나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천명이다.
천명에도 근거는 있다.
내가 석방될 수 있었던 근거는 우선 국경을 넘자마자 중국에서 하루천하로 체포된 것이 화가 복이 되었다.
왜냐면 중국에서 여러 날 체류하다 체포되었다면 그동안 그곳에서 무엇을 하였을까 하는 의심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탈북 하루만에 잡혔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너무 적었다.
다음 석방요인은 중국으로 왜 월경했는가에 대한 집요한 심문에 시종일관 『나는 농업과학자로서 식량문제를 해결한 중국의 농업기술(종자)을 얻으려 했다』고 주장한 것이 먹혀들은 것이다. 죽나 사나 과학자의 변태적 집착성이 월경의 결과라고 믿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월남하려고 했는데 용서해달라고 만약 자백하였다면 다시는 용서받을 수 없는 북한정치를 잘 알고 있었다.
중국에 간 것이 과학 때문이라는 강변이 먹혀든 것은 지난 기간 과학연구밖에 몰랐던 나의 전적이 뒷받침하였다. 실제로 국가보위부는 나의 경력조사 특히 가택수색과 수 십 권의 일기장까지 검열하였다. 그러나 나의 경력을 조사하면 할수록 충성분자로 확인될 다름이었다.
따라서 훗날 석방사유는 <충성분자의 과잉행동>으로 규정되었다.
한편 내가 맡아 연구하던 강냉이 깜부기 내병성 육종사업은 공화국적으로 나 외에 누구도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도 석방요인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제일주의 북한에서 또 악명 높은 국가정치보위부가 위의 사실만으로 월경자를 순순히 내놓기는 만무한 것이다. 따라서 사상 유례 없는 북한정치하의 감옥 속에서 희망이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희망의 빛이 있었다.
북한감옥에서 희망의 빛
뜻밖에도 그것은 외부세계에서 벌이는 북한인권개선운동의 여파였다.
정치보위부 집결소 당비서가 예심원들에게 하는 말을 심문 받던 중 내가 직접 들은 바이다. 당시(1990년) 유엔을 비롯한 국제인권단체들이 평양방문을 하여 인권문제를 김 부자에게 질문하였다고 한다. 이에 정치범이 단 한 명도 없다고 공언하면서 내적으로는 『너무 많이 잡아들여 적을 많이 만들지 말며, 또 감옥이 차고 넘쳐 국제 인권운동의 표적이 되고 있으니 될 수 있으면 근로단체조직들에 맡겨 교양 개조시키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당과 근로단체조직이라면 감옥과 같은 독재기관이 아닌 노동당의 외곽 사회단체조직 즉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현 김일성 청년동맹), 소년단, 직맹, 농근맹, 녀맹 들이다.
세계인권단체들의 북한인권운동이 시끄러워서라도 무시하지 못하였던 김부자의 이런 내적 지시로 하여 월경 죄 3년 징역, 또는 최소 6개월 간 집결소 감옥에 있어야 했던 나는 3개월만에 석방되었다. 이외 다른 수인들도 많이 감형되고 나 석방되었다.
지난 기간 탈북월남자는 그의 가족까지도 무작정 처벌하던 법도 현재는 조건적으로 완화하였다. 월남자의 아내가 남편과 공모하지 않은 경우와 이혼한 경우, 본인 처벌은 없을 뿐 아니라 그 자녀의 성도 어머니 성으로 따 피해를 줄이도록 하였다.
국제 인권운동의 여파
국제 인권운동의 여파는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80년대 초반부터 북한 당국의 태도변화를 유도하였다. 당시 조치에 의하면 간수들이 수인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지 말 것을 지시하였으며 구타 경우가 검찰에 제기되었을 때에는 처벌을 받도록 하였다. 상부의 지시가 이러하니 간수들은 조심하게 되였고, 때리는 경우도 근거(상처)가 남지 않도록 하였다.
이런 제약 속에서 간수들은 수인을 시켜 수인을 때리게 하는 방법을 적용하였다.
나는 정치보위부집결소에서 정치범이 아니라는 판정에 따라 사회안전부(경찰)집결소로 넘어가게 되었다. 바로 석방시킬 수도 있지만 고생을 더 시킨다는 차원에서 넘긴 것이다.
그 고생이란 수인이 수인에게 맞는 과정이다. 신참수인의 <첫 인사>는 고참수인들로부터 무작정 모두 매를 맞는 것이다. 신음소리를 내면 덜 맞았다고 더 때린다. 손발은 물론 몽둥이로도 때리는데 팔뚝만한 것이 부러져 나갈 정도다.
혜산 전문학교 출신의 학생 수인은 고막이 터져 며칠 후에는 고름이 흘러 나왔고, 다른 수인들도 그 후유증으로 죽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 실례가 혜산시 건설돌격대(작업대) 소대장 김재철(당시 32세, 백암군 출신)의 사망이다. 문제는 죽어도 어떻게된 사연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데 있다. 김재철의 경우도 타살이 아니라 심장마비 부검 증명서를 만들어 상부와 가족에게 통보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감방내의 수인들에게는 『헛소리를 했다가는 알지』하고 엄포놓고 처리를 끝낸다. 만약 이 사실을 누군가 폭로했다면, 부검증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오히려 당하게 되며, 또 어디다 호소할 분위기도 아니다. 그래봤자 손해밖에 나는 것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런 사실을 남한에 와서야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생명의 빛을
정치보위부집결소(예심소)에서 경제범(주로 월경밀수꾼)으로 판단되면 수감 10∼20일 후 사회안전부집결소로 넘기며, 정치범 혐의자는 적어도 3개월, 보통 6개월 이상 수감하였다가 정치범 수용소인 「관리소」에 넘긴다. 여기서는 몇 년간 <혁명화> 후 석방하는 대상과 종신 수용하는 대상으로 분류하여 끌어간다.
집결소 생활(예심기간)의 한 달은 일반수용소 생활의 10년 맞잡이라고 할 정도로 심리적 압박과 정좌와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린다.
내가 갇혔던 집결소 감옥생활기간(1990년 11월∼1991년2월)에 하루 평균 2명 정도 붙잡혀 들어 왔다. 수감된 월경자 중에는 밀수꾼이 많았고 또 정치적 월경자도 있었다.
그 중 기억나는 정치범들을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① 아버지가 정무원 고급간부라는 20대 청년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경유 홍콩에 이르렀으나 그만 중국당국에 체포되어 북한에 이송됐다. 내가 심문 당할 때 곁에서 그 청년도 심문 당하고 있어 알게 되었다. 조사관(예심원)은 『이 놈의 새끼 아버지는 고급간부인데 이 자식은 남조선으로 달아나려 홍콩까지 갔던 놈』이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그 청년 은 더 변명할 여지가 없는 조건에서 이제는 정치범으로 죽겠구나 하는 낙심의 얼굴이 곁에서 보아주지 못할 정도로 처량하였다.
② 혜산에 살고 있던 40대 사람
쏘련 벌목공으로 갔다 온 40대의 사나이다. 아무리 폐쇄된 씨비리 밀림 속이지만 외국을 다녀와서 세상물정도 좀 알던 차 중국으로 탈북하여 몇 년간 살다가 체포돼 왔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간수와 말싸움도 곧 잘하였다.
그는『북한이 중국보다 좋으면은 왜 탈출했겠냐』고 간수들의 말문을 막기도 하였다.
약이 오른 간수는 그 추운 겨울감방에 찬물을 끼 언 져 붓 군 하였다. 혜산 토배기출신이었는지, 장기수여서인지 집결소 근처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음식차입도 유일하게 받아 먹 군 하였다. 음식차입은 원칙에는 없지만 뇌물을 주면 허용되기도 하였다.
③ 인민군 중사
군부대에서 탈출하여 전국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압록강 얼음판을 넘었으나 뭣 때문인지 되돌아오다가 국경경비대에 체포되었다. 부모님의 집은 혜산과 가까운 운흥군이라고 기억된다. 감방 첫날 기운차 보였던 그는 그 다음날 벌써 풀이 죽어 있었다. 군인이니 군에 넘겨 처벌받았을 것이다.
④ 평양출신 10대 후반 청년
평양에서 살던 가족이 백두산 두메산골 백암군 지역으로 추방되였다. 월경 시도하다 체포·수감됐다. 어린 나이에 너무 괴로워 얼굴이 파리해 허공만 쳐다보군 하던 애처로운 모습이 생생하다. 감옥 내 밀정 임무 받고 나에게 접근 해온 적이 있다.
⑤ 동 감방 227번
황해도 신계 출신으로서 남한 삐라를 보고 수 천리를 걸어서 중국 국경을 넘었으나 북한 옷차림을 수상하게 여긴 중국 경찰이 체포해 북송함. 경제범으로 감옥생활 전적이 있었으며, 집결소 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워 관리소(정치 범 수용소)에 빨리 보내달라고 요구하며 단식, 자살기도도 있었다. 밀정 짓도 서슴치 않았다. 소금을 빨면 달다고 한 수인이다.
⑥ 동감방 ×××번
고급 당 간부 자제이다. 중국으로 탈출하여 넉 달 동안 체류함. 길림성 통화의 열 차 안에서 술 취해 단속 체포됨. 부모님이 과학자였다고 속이면서 나에게 접근하였던 감옥 내 밀정. 음식과 담배를 주며 밀정 짓을 하라면 누구나 응할 상태의 굶주림과 무조건 복종의 감옥 분위기로서 그를 탓할 수만은 없다.
이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범 또는 경제범으로 어제도 오늘도 고통받고 있다.
탈북자가 체포되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처벌하는 것이 관례이다.
주요 인물인 경우에는 일가 친척은 물론 관련 인사들까지 처벌을 가한다.
요즘 완화 되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탈북자가 너무 많아 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황장엽 비서의 경우 세계여론을 의식해 그의 가족 심지어 탈출하려다 체포된 아들도 한동안 평양 본집에 두었다가 여론이 갈아 앉자 끌어갔다.
중국 당국도 국제법과 세계적 여론을 의식해서 황장엽의 망명을 인정하였고 남한 행도 허용하였다. 큰 인물의 망명이라는 세계적 이슈 속에 북한의 요구대로 맘대로 넘길 수 없었다.
이 사실을 놓고 탈북자와 그의 가족, 그리고 북한에서 인권유린 당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인권보호 당위성을 황비서 망명만큼의 세계적 여론으로 끌어 올려놓고 나갈 때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확신한다.
인권불모지 북한을 제약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세계적인 인권운동 하에 조국 남한에서 북한인권 운동을 벌려야 한다.
이러한 운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 대표적 움직임이 1996년 5월 에 발족한 「북한 동포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시민연합」과 일본의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가 있다. 또한 탈북난민보호유엔청원 1천만서명운동이 그것이다.
한 국회의원은 2만 여명의 미송환 국군 포로 문제를 국회와 남북대화에 상정하겠다고 하였다.
북한 인권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남북교류와 통일도 바랄 수 없다.
따라서 북한 사회와 감옥 생활의 체험자로서 누구보다도 이 운동 에 앞장서야 한다는 자각을 가지며 이 글을 마치게 된다.
* 이글을 북한의 인권을 위하여 아시는 사이트에 올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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