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변호사 비리 > 시험도 안보고 자격증 받는 변호사 놈들

<< "왜 시험도 안보고 자격증 주나" >>

김종철/권우성 기자 [email protected]

"작년 이맘때 정도 됐을까? (세무사) 합격자 발표가 난 다음에, 근처에서 선후배들과 술을 먹었는데, 평소 친하게 지냈던 선배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었죠. 그때 선배도 저처럼 오래 공부해서 CPA(공인회계사) 합격했는데…."

소주 한 병 정도를 비웠을 때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던 이세연(34, 가명)씨는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는 서랍에서 '자격증' 하나를 꺼내 기자에게 보인다. '세무사 등록증'이다. 재정경제부 장관의 빨간 직인도 보였다. 이씨의 말이 이어진다.

"CPA에 합격해도 문제라는 거죠. 원하는 (회계)법인에서 수습을 받기도 어렵다는 둥, 그러면서 선배가 '뭐 안되면 세무사나 하면서 대충 먹고 살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을때,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난 직장 때려치우고 나와 3년을 꼬박 이것(세무사 시험)에 매달렸는데, 후배 앞에서 속 뒤집는 소리한다고 따지다가 말싸움이 커졌던 거죠."

담배 연기를 길게 내“b으며, 그는 이제 다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 이 시간 어느 뒷골목에서 작년에 우리와 같이 입씨름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22일 밤 11시께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기자를 고시촌 입구에서 마중하면서 한손에 '민법'이 쥐어져 있었다.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온 지 만 4년이 돼간다는 이씨의 버릇은 어딜가더라도 손에 책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 그의 손에는 '세법'책 대신, '민법'이나 '형법'과 같은 책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내년 1월에 있을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40년 넘게 이어온 '보이지 않은 특혜'>

이씨가 절친했던 선배와 말다툼을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어떻게 세무사 시험도 제대로 보지 않고, 단지 회계사 시험에, 사법 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유로 세무사 자격을 얻느냐는 것이다.

현행 세무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세무사 자격은 크게 세가지다. 우선 세무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과 함께 '공인회계사'와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사람에 대하여 세무사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공인회계사법이나 변호사법에는 해당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 의해서만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유독 세무사법에만 이들 회계사와 변호사에게 세무사라는 자격 부여를 명시해놓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에게 세무사 자격이 주어지게 됐을까. 국내에 세무사 제도가 처음으로 법제화 된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지난 1961년.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세무 대리 업무를 할만한 전문적인 사람이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는 세무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당시 대학 석사, 교수부터, 고시 합격자, 국세행정 경력자, 공인회계사, 변호사 등에게 세무사 자격을 주었다.

하지만 국가에서 별도로 세무사 자격시험이 치러지기 시작하고 합격자만으로도 세무대리 인력이 일정부분 만들어지자, 정부는 지난 1972년 석사, 교수, 행정고시 합격자에 대해서 세무사 자동자격을 폐지하게 된다.

이어 지난 국민의 정부때인 2001년, 행시 합격후 10년이상 국세행정에 종사한 경력자에게 주어졌던 세무사 자동자격도 전격적으로 폐지됐다. 이들 공무원의 경우 조세에 관해서는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자동 자격이 폐지된 이유는 특정 공무원에 대한 특혜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세법 등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들 국세 공무원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변호사나 회계사들은 지난 42년 동안 자신들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는 셈이다.

형평성과 전문성 결여... 평등권 침해 위헌소지 지적도

문제는 이들의 기득권 유지로 인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공정경쟁의 원칙이나 세무사와 회계사, 변호사 사이의 형평성,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세무사회 송춘달 제도개선위원장은 "모든 자격사들은 법률이 정하는 목적과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자격을 검증하는 시험과목도 다르게 돼 있다"면서 "공인회계사나 변호사의 경우 세무사 시험에서 치르는 세법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해당 시험과목을 보면, 세무사의 경우 1차 시험에서 재정학과 회계학을 포함 7개 세법과목을 치르며, 2차에서는 8개의 세법 과목에 대해 논술까지 포함해 치르고 있다. 하지만 공인회계사의 경우, 1차에서 기업관련 법과 세법개론을, 2차에서는 '세법' 한 과목을 보고 있다. 변호사의 경우는 이보다 더욱 열악해, '조세법'이 1차 시험에서 선택과목으로 돼 있어, 실제로 사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의 경우 세법을 공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송 위원장은 이어 "하나의 자격고시 합격자에는 하나의 자격을 주는 것이 시험제도의 원칙"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격을 덤으로 주는 것은 국가 자격시험제도를 부정하며 공정경쟁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같은 자동 자격제도 자체가 일반 수험생들과 차별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에서 보장된 평등권을 어기고 있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올 세무사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윤현경(20, 여, 서울시립대 세무학과)씨는 "세무사 시험의 경우, 변호사는 말할 것도 없고 회계사와도 비교해봐도 2차 과목의 내용을 보면 엄연히 차이가 존재한다"면서 "회계사들도 세무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어 "회계사나 변호사쪽에서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세무사 자격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세무사) 자격은 세무사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정당하고 시험의 취지에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세무사회 정구정 회장도 지난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회계사쪽의 논리대로 하면, 서울대 졸업했다고 연대나 고대, 지방대에서 졸업장을 주겠는가"라며 반문하면서 "이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어 "이를 위해 회계사와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업무는 그대로 하게 하되, 세무사의 자격이나 명칭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정부에 건의했다"며 "이것은 참여정부가 내세운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이라는 국정 이념에도 부합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세무사회는 최근 재정경제부에 세무사의 자격을 자동으로 주는 법 조항을 삭제해 줄 것을 정식으로 건의해 놓은 상태다.

<공인회계사 "아무 문제없는데 왜 고치려 하나">

공인회계사쪽에서는 세무사의 자동자격제도 논란에 대해, 최대한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세무사회쪽의 논란에 휘말릴 경우, 오히려 사안을 확대시켜 주는 꼴이 돼 이로울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세무사 자격 취득에 대해, 회계사쪽에서는 국내 세무사제도의 탄생 과정에서부터 회계사가 직무를 수행해 왔고, 회계사의 시험과목이나 이후 실무적인 측면을 감안해 국가에서 세무대리 업무 수행 능력을 인정해 자격을 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세무 시험과목과 전문성 논란에 대해서도, 회계사쪽에선 제도 자체를 단순비교해선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조세와 관련해서도 회계사의 부족함이 없었고, 합격이후에도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인회계사회'의 이태호 국장은 "89년 세무사법이 전면 개정된 이후, 정부의 감독일원화 차원에서 공인회계사나, 변호사든, 세무사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재정경제부에 등록하고, 세무사 이름으로 업무를 수행해 왔다"면서 "그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해 왔는데, 왜 다시 고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독일 · 중국 등 자동자격제도 없다>

세무사 제도가 도입돼 운영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독일, 오스트리아, 중국, 일본 등 대개 유럽쪽 국가들이 많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는 회계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별도의 세무사 제도는 없다.

세계 최초로 세무사 제도를 도입한 독일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중국 등 대부분 나라의 경우, 세무사 자격은 시험 합격자에 한해서 부여하고 있다. 또 세무사만이 세무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오스트리아는 회계사 시험을 보기위해서는 세무사 자격을 얻도록 돼 있다.

또 이들 나라의 경우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주는 곳은 한 나라도 없으며, 회계사나 변호사들이 세무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도 없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이들 국가 이외 일본의 경우가 우리나라의 세무사 제도와 가장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무사제도에 해당하는 '세리사' 제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은 세리사 자격을 세리사 시험합격자 이외 공인회계사와 변호사에게도 자동으로 주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세무사 명칭도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다만 일본은 회계사나 변호사가 세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무사회에 등록해야 한다. 또 우리나라와 달리 회계사나 변호사도 일본의 세무사법을 동일하게 적용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들 회계사나 변호사가 별도로 세무사회에 등록할 필요가 없으며, 세무사회에서 정하는 별도의 윤리 규정에 따를 필요도 없도록 돼 있다. 대신 재정경제부에 해당 업무를 위해 등록만 하면 된다. / 김종철 기자

2003/09/26 오전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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