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박정희 대통령 -일화로 본 그의 인간성 그리고 신념과 애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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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균(李炯均)│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
 
 
박 정희 대통령은 그를 잘 알지 못하거나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근엄하고 권위주의적이고 독선적이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를 빈곤에서 해방시키고 중진국의 산업사회로 우뚝 서게 한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필자로서는 항간의 일부 악의적인 평이 그릇된 의도에서 나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랫동안의 통치기간 중 박대통령이 남긴 갖가지 일화를 살펴보면 그는 겸허하고 소탈하면서도 정이 많은 인간임을 알 수 있다. 그의 모습에서는 시골 교장선생님과 같은 자상함과 예의 바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자나깨나 가난에서 국민을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신과 국민 앞에 닥친 고난을 극복하는 데 강인한 성격을 보여주기도 했고 어려운 국민을 쓰다듬어 주고 격려하는 서민적인 대통령의 풍모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를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자처하면서 가난한 국민들과 애환을 함께 하였다.
 
 
  정의롭고 강직한 성품의 팔방미인형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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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통령은 정직성과 강직한 성품이 말뿐 아니라 행동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언행일치의 지도자였다. 사람들은 흔히 박대통령을 웃음이 없고 근엄하며 유머가 없는 멋없는 사나이로 단정 짓고 두려운 지도자로 평가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막상 그와 한번이라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본 사람은 그가 더없이 다정다감하고 웃기를 잘하고 눈물이 많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대통령임을 느낄 수 있었다. 박대통령의 인간상은 소탈한 서민적 성격이며 타협을 모르는 정의감과 강직한 성품의 지도자로 집약할 수 있다.
 
  박대통령은 다양한 취미와 소질을 지닌 보기 드문 지도자였다. 승마, 활쏘기, 정구, 배드민턴, 야구, 배구, 수영, 사냥, 골프 등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 오르간, 그림, 서예, 시작(詩作) 등 예술 면에서도 상당한 수준급 애호가였다. 대구사범에 다닐 때 학교 밴드부의 나팔수이기도 했던 그의 퉁소 부는 솜씨 또한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설 정도였다. 노래의 작사, 작곡도 전문 음악인을 능가할 수준급이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는 새마을노래의 작사, 작곡가가 바로 박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1972년 4월 말 낙상으로 허리를 다쳐 요양중이던 박대통령이 자신이 직접 지은 가사에 작은 영애의 피아노 도움을 받아 작곡을 끝낸 다음 국립교향악단의 홍연택 씨의 자문을 거쳐 널리 보급한 것이 바로 이 새마을노래였다. 1976년 가을 한국신문협회에서 국민가요를 공모할 때 “내가 응모해서 상금 1백만 원을 탈까”라고 가족들에게 말한 후 10월 어느 주말에 가사를 쓰고 스스로 곡을 붙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우렁차게 불려졌던 ‘나의 조국’이 바로 이렇게 해서 탄생된 노래였다.

 
맥탁주, 막사이사이를 즐기던 서민적 스포츠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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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의 서민적 풍모, 다시 말해서 한국적인 인간상은 그가 텁텁한 막걸리를 마시며 담배를 권하는 모습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자주 저녁식사를 같이 할 때면 으레 막걸리를 갖고 오라고 하여 기자들의 좌석을 돌면서 손수 술을 따라주곤 했다. 도중에 막걸리가 떨어지면 맥주를 가져오라고 한 다음에 남은 막걸리에 맥주를 섞어서 한 잔씩 권하며 당신도 거나하게 취할 정도로 즐겨 마셨다. 막걸리에 맥주를 탄 칵테일을 박대통령 자신이 ‘맥탁’(맥주+탁주)이라고 명명했다. 애주가인 박대통령은 옛날 청년시절 문경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 동료교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던 기억을 회상하고는 했다.
 
  풋고추나 오징어를 곁들여 막걸리를 마시거나,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칵테일한 ‘막사이사이’를 마시던 얘기를 하면서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기자들과 막걸리를 마실 때에도 김치를 손으로 직접 집어 먹기도 하는 등 서민적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박대통령은 담배를 너무나도 즐겨 피운 애연가였다. 청와대를 예방한 손님을 맞으면 자리에 앉자마자 담배를 권한다. 예방객이 황송한 모습으로 사양하다가 자꾸 권하는 박대통령으로부터 한 개비를 받아들면 얼른 성냥불을 그어 담뱃불까지 붙여준다. 그리고는 ‘담배는 라이터불보다 성냥불로 피워야 제 맛이 난다’면서 자신도 맛있게 담배를 피웠다. 한때는 담배를 하루에 세 갑이나 피울 정도로 체인스모커였다. 1978년 축농증수술을 받고 의사로부터 금연해야 한다는 강경한 조언에 따라 그렇게 즐겨 피우던 담배를 단숨에 끊어버렸다. 금연중이던 어느 날 박대통령이 기자들과 환담하는 중에 “누가 담배를 하도 맛있게 피우길래 한 대 달라고 하여 뻐끔뻐끔 피는데 눈을 떠보니 꿈이더라” 고 말해 그가 얼마나 담배를 좋아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1979년 7월 청와대에서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나누던 중 옆자리에 앉아있던 필자에게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 부장, 나 담배 한 대만 줘”라고 말한 후 기자가 드린 담배를 맛있게 피운 적도 있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씩 빨면서 “담배를 많이 피우면 암에 걸려 죽는다는 의사들 얘기는 말짱 거짓말이야”라면서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서민 대통령으로서의 풍모는 스포츠를 얼마나 좋아하고 아꼈는지를 보면 더욱 실감할 수가 있다. 그 자신이 수영이나 배드민턴 등 운동을 좋아했지만 각종 운동경기를 관람하기를 즐겼다. 직접 경기장에 가지 않을 경우에는 텔레비전 중계라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1965년 4월 아시아 여자농구선수권대회의 패권을 가름하는 한·일전을 시청하면서 한국 측이 일본을 가볍게 누르고 승리하자 한국농구의 호프인 박신자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 정말 훌륭했다. 우리 꼬마하고 TV중계로 잘 보았다.”고 격려했다. 그는 즉석에서 청와대 점심초대까지 약속했다.
 
  1966년 6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권투 세계 주니어미들급 선수권 쟁탈전을 관중과 함께 직접 관전하면서 매 라운드마다 경기에 도취되었다. 김기수 선수가 벤베누티를 누르고 챔피언이 되자 열광하는 관중과 한마음이 되어 기뻐했다. 1976년 여름 휴가지인 진해에서 염동균 선수와 파나마의 리아스코 간의 권투대전을 TV로 시청했다. 주심의 편파적인 운영으로 염선수가 판정패를 당하자 관중들이 방석을 던지고 병을 깨는가 하면 링 위로 몰려가 한바탕 난동을 부렸다. 다음 날 박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내가 보기에도 심판이 편파적인 것 같더라”고 말하면서 염선수의 판정패를 아쉬워했다. 어느 날 박대통령은 지방에 출장 갔다가 귀경하는 길이었다. “빨리 가서 유재두 권투시합을 보자”면서 운전사에게 재촉했다.
 
  박대통령은 프로레슬링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1964년 2월 TV에서 장영철 선수와 일본의 아라구마 선수의 레슬링 시합을 중계했다. 박대통령은 장선수가 아라구마 선수를 들어 올려 내던질 때마다 “잘 한다”를 연발했다. 장선수가 승리하자 박대통령은 “털보 잘 싸웠다”라고 흐뭇해 했다. 1964년 5.16혁명 3주년 자축연이 청와대 뜰에서 베풀어졌을 때 TV중계시간이 되자 수상기를 아예 잔디밭으로 옮겨 레슬링시합을 구경했다. 같은 해 7월 일선시찰에서 돌아온 후 TV수상기 앞에서 레슬링 중계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되어도 고대하던 레슬링이 중계되지 않자 그는 레슬링협회에 전화를 걸어 “경기가 없느냐?”라고 물은 후 “경기가 없다”라고 하자 못내 섭섭해 한 적도 있다.

 
익살이 아닌 참된 유머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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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P통신의 에드윈 화이트 기자는 박대통령을 가리켜 “잘 웃지도 않고, 유머도 없는, 과묵한 대통령”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그만큼 외부세계에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가 굳게 각인돼 있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평소에 말수가 적고 과묵한 대신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할 경우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띠면서 의미가 깊은 유머를 구사하곤 했다.
 
  1974년 4월 국회를 취재하던 필자가 청와대 출입으로 옮긴 날 청와대에서 열린 환영 오찬 때 필자는 박대통령에게 질문을 했다. “박대통령께서는 어째서 신문방송에 웃는 모습이 안 나오고 항상 근엄한 표정으로만 나오십니까?”고 묻자 박대통령은 “내가 웃지 않는 대통령으로 국민에게 인상이 박힌 것은 사진기자들이 나의 너무 근엄한 표정만을 찍어서 보도했기 때문”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박대통령을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던 제주도 이시돌 목장의 매킨리히 신부는 “박대통령의 유머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익살이 아니라 넓고 깊은 인간성에서 나오는 참된 유머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1972년 10월 국군모범용사 77명을 접견했을 때 박대통령은 “휴전선 근방에 요즘에도 북한방송이 들리느냐”고 묻자 장병들이 “7.4성명 이후 조용해졌다가 서울회담 이후에는 다시 시끄러워졌고 예전처럼 욕지거리도 나온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박대통령은 “내 욕을 많이 하지 않더냐? 그러나 공산당한테 욕을 먹으면 감기도 안 든다”라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ㄷ일보기자 피습사건이 나던 1966년 7월의 일이었다. 박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강도라면 왜 하필 ㄷ일보기자의 시계만 뺐지? 허구 많은 사람들이 롤렉스시계를 차고 있는데 시계도 ㄷ일보기자의 것이 좋다는 것인가”하고 조크를 해서 화제가 다른 데로 옮겨졌다.
 
  1966년 1월 박대통령은 국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한 후 공화당 의장실로 찾아가 여야간부들과 차를 나누면서 잠시 환담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대표인 박순천 여사에게 본관을 물으면서 “박씨는 본관이 경주에 가까울수록 양반입니다”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박대통령은 고령 박씨이고 박여사는 밀양 박씨로 고령이 경주에 가깝다)
 
  어느 날 경기도 광주의 모범 마을을 시찰할 때 마침 장날이라 소장수들이 여러 마리의 소를 길 한복판에서 몰고 갔다. 박대통령이 타고 있는 승용차가 가까이 다가가도 그중 한 마리가 길 복판에 버티어 서서 비키지를 않았다. 박대통령은 “임마, 나를 몰라 봐? 내가 너희들 황소당(황소가 공화당의 상징 동물)의 총재야!”라고 소리쳐 수행원들을 웃겼다.
 
  1976년 5월 포항 종합제철 제2기 설비공사 준공식 후 귀빈숙소에서 준공기념파티가 열렸을 때 건설사대표들에게 “장사하는 사람들은 경기가 좋을 때 돈을 벌어 경기가 나쁠 때 써야지, 항상 돈만 벌면 처치가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는데 이 말에는 큰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언론을 통해 국민의 소리를 들었던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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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신문과 방송을 가까이 한 대통령이었다. 조간신문은 아침식사 이후 집무를 시작하기 전에, 석간신문은 점심식사 후 가판을 대충 읽은 후 저녁시간에 상세히 읽었다. 신문 구석구석까지 읽었던 박대통령은 논단 중에서도 경제평론은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고 중요한 대목은 줄을 쳐 가면서 정독했다. ‘정부, 여당 연석회의 등 각종 회의에서는 어떤 신문에 어떤 글이 실렸더라’ 면서 “그 글을 읽어 봤느냐”고 물어 미처 읽지 못한 참석자가 어쩔 줄 몰라 한 적도 많았다. 특히 신문에 딱한 사정에 처한 사람에 관한 기사가 나면 꼭 도와주었고 또 국민생활에 피해를 준 행정사례들이 보도되면 관계 비서관에게 사실을 알아보도록 지시하곤 했다.
 
  박대통령이 언론을 멀리하고 심지어 기자를 싫어한 것으로 한때 알려지기도 했지만 박대통령을 가까이에서 접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 박대통령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 평가했고 언론의 계도적 역할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가정의례준칙을 지키지 않는 저명인사나 고위공직자, 부정식품을 만들어 파는 업자 등의 이름을 신문에 공개해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일이 많았다.
 
  1972년 8월 국무회의에서 “수해가 났을 때 자가용을 탄 사람들이나 일부 젊은이들이 물 구경이나 하고 있는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런 사람들을 전부 붙들어다 수해복구 작업에 동원했으면 좋겠지만 강제로 할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이런 일에는 역시 신문이 앞장서서 일깨워주면 좋겠다”고 피력한 적이 있다.
 
  텔레비전의 역할에 대해서도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청와대 출입기자 중 뉴스 앵커를 보고는 “당신들이 얘기하는 것이 대통령인 내가 얘기하는 것보다 더 영향력이 있으니 잘 계도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1964년 기자들과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정부고관들이 떠들어 대는 것보다 몇 신문에서 기사를 써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면서 “내가 일대 식량증산운동을 전개하려는데 신문들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줘야지.... 우리가 식량을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야 없겠지”라고 언론의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한편 박대통령은 언론에 대한 불만도 숨기지 않고 털어 놓기도 했다. “대통령이 하는 일에 나쁜 것은 나쁘다고 비판해야 하지만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써 주어야지”라며 일방적으로 비판기사만 쓰는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 1964년 학생소요사태가 연일 신문에 보도되자 “신문이 데모얘기를 너무 쓰는 것 같다”면서 “영국에서는 최근 5천 명이 데모를 한 일이 있는데도 그곳 신문은 조그맣게 썼다고 하더군.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써대니 중학생들까지 데모를 하지 않나”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1966년 9월 30일 49회 생신을 맞아 점심에 출입기자들을 초대하여 오찬을 베풀었는데 이날이 마침 추석이었다. 그는 “추석과 같은 명절날은 기자들도 쉬어야지, 난 신문 없는 일요일 아침이 제일 좋던데...”라고 조크를 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신문을 열심히 읽었고 기자들을 무척 아꼈다. 기자들과는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어떤 농담도 서슴지 않았다. 1966년 4월 제주관광호텔 앞뜰에서 기자들과 환담하는 도중에 언론사를 경영하는 모 국회의원이 기자들 틈에 끼어 얼굴을 내밀었다. 박대통령은 힐끗 그 의원을 쳐다보면서 “당신은 기자와 사촌간이지. 당신도 기자를 했으면 악질기자였을 거야”라고 농담을 해 폭소가 터졌다. 1967년 10월 한국신문협회 회원인 전국 신문발행인들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협회회장으로부터 신문협회 마크 모양의 조각선물을 받고는 그곳에 붙은 만년필촉 모양을 가리키며 “이 촉이 이렇게 뾰족해서 신문기자가 그렇게 날카로운 모양이군”이라고 한마디 해 웃음바다가 되었다.
 
  1964년 12월 독일 방문 후에 열린 언론인을 위한 송년파티에서 박대통령이 한 신문에 기고한 방독소감이 화제에 오르자 “거 글을 오래 안 쓰다가 오랜만에 써보니 글이 잘 되지 않습디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언론인들이 “그래도 그만하면...”이라고 칭찬하자 “그만하면 글이 되었소? 그럼 대통령 그만 둔 뒤에는 신문사 말단기자로 취직시켜 주겠소? 핫핫핫”하며 파안대소했다. 박대통령은 언젠가 언론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신문을 읽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것은 직접적인 국민의 소리라고 보니까요. 그런데 나같이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신문을 보는 사람을 보고 신문관이 나쁘다니 이해가 안갑니다. 다만 신문의 그릇된 자세를 항의하는 것과 신문관이 나쁜 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신문이 부정부패를 들춰내는 것은 국가를 위해 잘 하는 일이지만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데는 질색입니다. 그러나 오랜 동안 정부를 맡아 일해 오면서 신문과 정이 들었지요.”
 
 
형식과 가식을 싫어했던 작은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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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통령 인간상의 또 하나의 특징은 결코 가식이 없으며 일부러 제스처를 꾸미는 것을 극히 싫어했다는 점이다. 1966년 8월 당시 서독의 제2TV 촬영 팀이 박대통령을 소개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박대통령은 끝내 카메라 앞에 서기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는 공보부장관에게 “자네 내 성질을 알지 않나? 남에게 보아달라고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란 말이냐?”고 호통을 치고 “나 개인보다 한국의 아름다운 농촌풍경이나 소개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형식적인 것과 가식을 싫어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박대통령의 신장이 1미터 65센티의 작은 키였지만 그러나 단구에 대해 아무런 콤플렉스도 느끼지 않았다. 1978년 봄 청와대 뜰에서 기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키가 작은 필자가 뒤로 물러서려 하자 “자기의 키가 얼마나 크다고. 이 앞으로 나오지”라고 말하면서 필자를 끌어 당겨 나란히 사진을 찍도록 했다.
 
  어느 날 미국 국무성의 키가 전봇대만한 한 고위 외교관을 접견한 일을 소개하면서 “키가 크면 싱겁다고 하지만 그래도 키는 크고 보아야 해”라고 말해 단구에 대한 일말의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미국 AP통신 전 아시아 총국장 로버트 언슨 기자가 서술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대통령 일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동안 박대통령은 자신이 앉을 의자에 놓여 있던 두툼한 방석을 들어내어 보기 좋게 던져버리는 것을 함께 취재를 하던 AP통신의 사진기자 샘 존슨 씨가 목격했다. 의자에 방석이 없으면 박대통령은 나란히 앉은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키보다 작게 찍힐 것이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1966년 9월 주월남 미군사령관 웨스트모얼랜드 대장 내외를 위한 오찬회에서 장군이 “토굴 속의 베트콩을 소탕하는 데에는 체구가 작은 한국군이 적격”이라고 한국군의 용맹성을 찬양했다. 그러자 박대통령은 “나같이 키가 작은 사람도 이제 자신이 생기는군요”라고 조크를 해 웃음바다가 되었다.
 
  박대통령의 다정한 말씨와 포근하게 안겨 오는 듯한 대화내용은 사람의 심금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것이야말로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진 박대통령의 인간상을 만든 바탕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1966년 6월 유성온천에 있는 만년장 호텔에서 기자들과 조찬을 함께 하며 곡식에 관한 얘기가 화제에 오르자 “기자 여러분도 어렸을 때 밀사리 해 먹어본 적 있소? 불에 구워 먹으면 참 맛이 있지. 보리도 쪄서 그대로 먹으면 맛이 있고...”라고 말해 도시출신 기자들은 무슨 말인지를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1974년 11월 재무부 순시 때에 새로 생산한 시제품으로 나온 화랑담배 한 개비를 피워 본 박대통령은 “예전엔 주머니에 화랑담배를 넣고 한참 훈련을 하다 보면 담배 알맹이는 다 빠져버리고 껍데기만 남았는데 이제는 그 정도는 아니겠다”라면서 옛날 일을 회상했다. 화랑담배에 얽힌 애환을 회고한 박대통령은 진정으로 서민 대통령이었다.
 
  1963년 가을 어느 날 청와대 서재 근처에서 똑딱거리는 나지막한 망치소리가 들려 정원을 산책하던 박대통령이 소리가 나는 곳을 가보니 일꾼들이 벽에 기댄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무얼 하는 거요?”
 
  “보일러를 수리하는 중입니다.”
 
  “일하는 품이 왜 그리 힘이 없어 보이는 거요?”
 
  “각하께서 집무중이시라 방해가 될까봐 그럽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시끄러워도 좋으니 힘껏 일하시오.”
 
  일꾼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뎅강뎅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예정보다 빨리 일을 해치웠다. 박대통령은 “똑딱거릴 때는 신경을 건드렸는데 뎅강뎅강 소리를 내며 일하니까 오히려 기분이 상쾌하더라”고 후일 그날의 일을 상기했다.
  
  박대통령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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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탈하고 서민적인 박대통령의 몸에는 근검절약 정신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절약과 근검에는 누구 못지않게 솔선수범했다.
 
  1967년 7월 전력사정이 악화되어 간다는 보고를 받고 청와대 안에는 일체의 불필요한 전력소모를 막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보안상 필요한 곳을 제외하고는 외등을 모두 껐다.
 
  1973년 이후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 복도의 전등조차 반만 켜도록 해 복도를 걷다가 사람을 만나도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냉난방도 일정한 온도를 정해 최대한 가동을 억제했다. 박대통령은 아무리 더워도 냉방기를 틀지 못하게 하고 그 자신이 부채를 사용했다. 삼복더위에 청와대에서 국가 최고지도자가 부채질을 하는 모습을 본 내방객들은 모두 박대통령의 절약정신에 탄복을 했다. 박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뒷수습을 하던 주치의가 박대통령의 허리띠 가죽이 너덜너덜거리는 것을 보고 눈물을 훔쳤다는 얘기도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1964년 박대통령은 친필메모를 비서실장에게 내려 보내 “청와대 안에 있는 TV의 시청료를 납부하고 있는지, 안 내고 있으면 즉각 절차를 밟아 내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도 공사에 얼마나 철저한 분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그 자신이 교편을 잡았고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한 탓인지 모든 면에서 절도 있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머리가 유난히 긴 선수를 보고 “머리가 길면 기술연마에 지장이 있으니 단정히 하라”고 타이르고, “옛날 장인(匠人)들은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목욕재계하고 머리를 단정히 빗고 옷을 갈아입은 후 정신통일을 했다”고 강조하고는 했다.
 
  1966년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열린 이충무공 제향을 지내는 자리에 참석한 박대통령은 충남지사에게 “제주들의 예복이 그게 뭐요? 예절이란 정성이 깃들어 있어야 하는 것인데 몸에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초라한 복장으로 충무공을 추모하다니, 그 태도가 틀렸소. 앞으로는 정식으로 복장을 갖추도록 하시오”라고 호통을 쳤다.
 
  박대통령의 절도가 있는 생활태도는 그가 책상이나 식탁 앞에 앉아 있을 때에 더욱 두드러졌다. 담배 갑과 라이터, 또는 성냥, 만년필과 메모지를 반듯하게 가지런히 놓는 모습을 보면 조금도 빈틈이 없는 완벽주의자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처럼 완전주의자라는 그에게도 실은 눈물이 많았다. 1963년 민정이양에 앞서 육군대장으로 예편하면서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연설한 지포리(芝浦里) 전역식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 것은 유명한 얘기이다. 그보다도 1964년 서독을 방문하여 이역만리 외국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일하고 있는 우리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만났을 때 함께 애국가를 부르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줄기줄기 흘린 장면은 광부와 간호사들은 물론 우리 국민 모두에게 결코 잊혀지지 않는 극적인 장면이었다.
 
  1977년 6.25동란을 기념하여 초청된 외국의 참전용사들을 만났을 때 박대통령은 한국전에서 두 눈을 잃은 미국인이 부인의 손을 잡고 인사말을 했을 때 박대통령의 눈가는 젖어 있었다. 그 실명 미국인이 “각하, 저는 비록 두 눈이 멀어 직접 보지는 못하더라도 저의 집사람을 통해 한국의 발전상을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박대통령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눈물 많은 한국적 서민인 박대통령에게 있어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일이라도 기어이 해내고야 만다는 강인한 성격으로 인해 ‘무쇠 같은 의지를 지닌 행동가’ ‘집념의 지도자’라는 또 다른 인간상을 지니고 있었다. 무서운 결단력과 강력한 추진력은 최대 빈곤국인 우리나라를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했고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실현시킨 원동력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어떤 반대와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그 평가는 후세의 사가들에게 맡긴 채 기어이 실천에 옮겼다. 한일국교정상화가 그랬고,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그랬으며, 경부고속도로건설, 새마을운동, 남북대화 등은 당대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에 의해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던 것이다.
 
  박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캔두(Can Do)정신은 지금까지도 우리 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한국을 세계 10대 강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는 난관과 시련이 닥쳐오고 커다란 장애물에 부딪칠수록 결코 위축되거나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캔두정신으로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어 내고야 말았다.
 
  전국의 벌거숭이산을 푸르게 만들려는 그의 집념은 하나의 신앙에 가까웠다. ‘나무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우리 국토를 푸르게 만든 것은 박대통령의 초인적인 의지가 뿌린 씨앗이 거둔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박대통령 서거 31주기가 지났지만 그의 정직함과 소탈한 성품, 강인한 집념과 인정에 넘치는 훈훈한 인간상은 국민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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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차익조

  필자 약력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경향신문 정치부장,주미특파원,논설위원,편집국장,
  기획실장,조사연구실장
  경향신문 출판담당 이사
  한국프레스센터 전무이사
  한국PR협회 회장
  경희대 정경대학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겸임교수
  인하대학교 객원교수
  KBS올림픽방송 자문위원
  한국케이블TV협회 자문위원
  한국기자협회 고문(현)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현)
  서울대학교 동창회보 상임논설위원(현)
  한국PR협회 명예회장(현)
  미디어포럼 고문(현)
  프레스포럼 고문(현)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및 '기자대상' 심사위원장,
  방송위원회 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및 방송대상 심사위원,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논설위원장(현)
 
  상훈
  한국PR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