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당림2리 47가구
30년 전 마을 소떼 돌연사 "그담부터 무서워 안 키워"

가을볕 아래 집집마다 황구(黃狗)가 컹컹 짖고 장닭이 푸드덕댔다. 염소와 사슴이 오물오물 풀을 씹었다. 소 우는 소리는 안 났다. 코끝을 톡 쏘는 소 두엄 냄새도 없었다.

9일 오후, 춘천시 서면 당림2리. 47가구 130여명이 사는 외딴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개·닭·염소·사슴은 키워도 소는 안 키운다. 구멍가게 앞 그늘에 앉은 촌로들이 하품을 했다. "왜 안 키우긴…. 옛날에 이 마을 소들이 이유 없이 차례로 죽어나갔어. 그담부터 무서워서 안 키워. 30년 가까이 됐어."

노인회장 허장희(71)씨는 "1970년대 초만 해도 집집마다 1~5마리씩 소를 키웠다"고 했다. 1974년 가을, 송병철(72)씨네 소가 쓰러졌다. 송씨는 "온종일 소를 끌고 밭일을 하다가 저녁때 여물을 줬는데 안방에 누워 있자니 외양간에서 '쿵' 소리가 났다"고 했다. 송씨가 뛰어가 보니 소가 외양간 바닥에 쓰러져 네 다리를 쭉 뻗고 있었다. 소는 덜덜 떨다가 거품을 물고 죽었다.

이후 두 달간 송씨네 소 네 마리와 송아지 한 마리가 전부 똑같은 증세로 죽어나갔다. 농협에 따르면 당시 수소 한 마리(500㎏) 값은 60만~80만원, 쌀 한 가마 값은 4만원 안팎이었다. 2009년 8월 기준 수소 한 마리(600㎏) 값은 606만원, 쌀 한 가마 값은 15만4800원이다.

송씨네뿐 아니었다. 다른 집 소들도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5년간 80여 마리가 차례차례 급사했다. 수의사도 원인을 몰랐다.

전염병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앞마을 강촌2리와 옆 마을 당림1리 소들이 멀쩡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강촌2리와 당림2리 사이엔 북한강이, 당림1리와 당림2리 사이엔 삼악산(三岳山·654m) 줄기가 있다.

건국대 수의학과 정병현(59) 교수는 "전염병은 강과 산에 가로막혀 있어도 사람·새·쥐 등을 통해 번지게 돼 있다"고 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질병진단센터 관계자는 "전염병이라면 소들이 일정한 기간 내에 한꺼번에 죽지 5년에 걸쳐 띄엄띄엄 죽지는 않는다"고 했다.

강원도 가축위생시험소 관계자는 "1970년대 말에 강원도와 춘천군(현 춘천시) 관계자들이 가축위생연구소(현 국립수의과학검역원)와 합동조사를 벌였지만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서낭당에 제를 올리고,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도 했다. 푸줏간 주인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푸줏간 주인이 죽은 소를 염가에 사들이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죽은 소가 싸니까 독을 먹인 것 아니냐"고 의심한 것이다. 푸줏간 주인이 경찰서에 불려간 사이에도 소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바람에 혐의가 벗겨졌다.

주민 정재갑(74)씨는 "1980년대 초에 춘천군청 공무원들이 시험 삼아 송아지 2마리를 마을에서 키우게 했는데, 그것도 7~8개월 만에 똑같이 죽었다"고 했다.

이후 영농 기계화 바람이 불면서 주민들은 소를 잊었다. 초가집을 슬레이트집이나 벽돌집으로 고치면서 집에 있던 외양간도 없앴다. 현재 당림2리에는 염소 1마리, 사슴 10여마리, 개 20여 마리, 닭 50여마리가 있다. 인근 강촌2리와 당림1리에서는 지금도 소가 잘 큰다. 강촌2리 사람들은 소 21마리, 당림1리는 147마리를 기른다.

주민들에게 "다시 소를 키워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주민들은 고개를 저었다. 송병철씨는 "수백만원 들여서 송아지 샀다가 또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축사가 없어서 공기 좋고 물 맑아진 걸로 만족해요. 그래도 그때 소들이 왜 죽었는지 누가 좀 밝혀주면 좋겠어요. 궁금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