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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9일 서울 여의도 "전국농민대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전국농민연대(8개단체)가 주관한 한강시민공원 대회장에는 7만여 명이 모였습니다. 영동에서도 관광버스가 12대, 전국에서 1000여대가 넘게 모인 농민들이 갖고 온 깃발과 만장만 해도 1만여 개. 쌀 포대로 옷을 만들어 입거나, 어떤 농민은 지금 농업이 죽어가고 있다. 농업은 부모와 같은 의미로 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지난8월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한 농민 고 이경해 열사의 따님이 무대 위에 올라 "아버지의 뜻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큰절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전국 농민회 문경식 부의장은 "지금 이 땅의 농민들은 빚더미에 눌려 농약을 먹고 자살을 하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다, 손배가압류다 해서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그런데도 정치권은 내가 덜 먹었네 네가 더 먹었네 하며 정치판을 개판으로 만들고 있다. 농민들은 일한 만큼 보상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며 "내년 총선에서 한-칠레FTA(자유무역협정)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정 장소를 이탈하여 혹 무대 주변에 아는 분들이 있는가 싶어 찾아가 보았습니다. 역시 한나라당 의원들 몇 명이 보였고, 일면식도 없는 민노당 권영길 대표도 대여섯 발자국 거리에 서 있고 그 뒤에 열린우리당 이우제의원이 보였습니다. 잠시 망설이게된 것은 다가가서 내가 먼저 악수를 청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지난 해 대회 때도 이 자리에서 보았지만, 그 때는 한나라당 소속이어서 외면해 버렸지요. 그러나 지금은 탈당하여 명실공히 개혁정당인 열린우리당으로 떳떳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어, 다가가 손을 내밀었더니 꼭 잡으면서 여전히 나를 알아보고 반기며 "지금도 농사를 짓느냐"고 물었습니다. 내 땅 세마지기도 안돼는 농사로 어떻게 살아 갈 수 있단 말인가.

오래 전에 그만두고 신문배달 해 온지 15년이 넘었다했죠. 이 의원을 처음 만나기는 20년도 훨씬 거슬러 1978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농촌 지도자 농민교육을 받을 때였습니다. 한국농민운동의 씨앗을 뿌리다가 박정희 유신독재로부터 탄압 받고, 징역살이도 한 분이시다. 이 땅의 농민운동 선구자시다.

군부 독재가 마감하고 처음엔 민중당으로 출마해 낙선하고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한나라당으로 백기들고 들어가듯 하여 변절자, 배신감 느낀다며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열린우리당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싶어, 힘내라고 두 손을 잡고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 때 마침 우리 고장의 한나라당 심 의원이 저 만큼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작 내 앞에 나타나 손을 내밀면 거절할 수 없겠지만 특별히 서로 존중하는 관계도 아닌지라 악수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역구가 농촌인 의원들은 표를 의식해서 '눈도장' 받으러 다니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농민들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아니겠죠. 쌀자루로 옷을 만들어 입은 300여명의 논산에서 올라온 농민들은 이인제 의원이 와서 악수를 하자는 것을 뿌리쳤답니다. 평소에 자주 찾아주지 않고 악수를 하자니 적대감마저 생기겠지요. 이렇게 열린 대회절차는 오후 5시에 마감하고, 농민대열은 국회의사당과 한나라당사로 행진이 이어지고....농민들이 떠난 뒷자리엔 유난히 2홉들이 소주병이 늘여 있어 아마 수 만개는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날씨마저 썰렁하여 농민들의 가슴을 덥혀주고 위로해 주는 것은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아니라'소주'였습니다. 얼마나 농민들이 정치인들을 불신했으면 행사장 무대 위에도 올라가지 못하게 했겠습니까. 지난해 대회 때는 그래도 무대 위에 올라가 수많은 농민들을 눈 아래 바라볼 수 있었는데.... 농민들의 행진은 곳곳에서 앞을 가로막는 경찰들과 몸싸움이 벌어지고, 심지어 경찰의 물대포로 진압합니다. 국회의사당에서 다소 떨어진 도로에 관광버스가 장벽을 이루고, 길가엔 경상도 경산에서 온 농민들이 쪼그려 앉아 큰 가마솥에 오뎅국을 끓여 만든 국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이건 바로 전쟁터요, 피난민 같았습니다. 젊은이는 보이지 않고 늙은이 뿐이었습니다.

같은 시간, 대학로에서도 김제, 강진 전 남북 농민들 7천여 명이 대회를 했으며, 전국여성농민회 윤금순 회장은 "노무현 정부에겐 더 기댈 것이 없다"고 투쟁 결의문을
낭독했던 것입니다. "지난 90년대 우루과이 협상 당시 정부가 분노한 농심을 달래기 위해 24조원을 융자해준 것이 지금은 40조원의 빚더미로 변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정부가 더 잘 알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두 눈과 귀를 열어 농민들의 피눈물 흐르는 탄식과 고통을 겸허한 자세로 들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농업을 살리려는 노력과 함께 400만 농민이 살 수 있도록 농가부채를 해결하고 도시 소득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농사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1년에 1백명의 농민들이 농약자살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정치권, 정치인들은 뭣 하는 사람들입니까. 그들이 농민이나 전체 국민들을 위해 뭣하나 제대로 한 것이 있는가. 자기들 배만 불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러고도 내년 4월 15일 선거 때 표 달라고 손 내밀지 않겠습니까. 농민(국민)이 골고루 잘 살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 아닙니까. 이렇게 농민들의 단결된 힘은 바로 정치인들의 귀와 눈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농민들도 울어보자는 게 대회이고 거리행진. 이래서 신문과 텔레비전에 보도되는 것 아닙니까.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가만히 있으면 언론에 단 한 줄도, 단 1초도 방영하지 않습니다. 농민들의 가두행진을 따라 저도 마포대교를 건너고 공덕동 로타리까지 왔고, 오후 7시. 여기서 더 이상 전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그리고 밤 열차를 타고 왔기에, 새벽 3시에 신문 배달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농민대회 참가 소감을 피력한다면, 20여년 전이나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하겠습니다. 저는 1982년 초에 축사 및 소 입식 자금으로 260만원을 정부가 지원 단기융자를 받아 소를 길러 보았지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이 외국소 수입으로 폭리를 취하고 국내 소 값이 폭락하여 축산 농가들이 빚더미에 눌려 자살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외국농축산물 수입 반대 시위를 하다가 '집시법'위반으로 구속 6개월 교도소에 생활을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260만원 때문에 밭 260평을 농협경매로 빼앗겼고, 그러고도 연체이자가 되어 현재 500만원 넘은 액수로 독촉을 받고 있으며, 이 부채로 인하여 '신용불량자'란 누명을 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축산 자금원금으로 술 한잔, 담배 한 개피 사 피우지도 못한 서러운 인생을 이렇게 모질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의 해답은 간단합니다. 그 첫째는 나 하나 죽으면 모든 것은 끝납니다. 그런데 아직도 죽지 못하고 생존해 있다는 현실이 답답할 뿐입니다. 둘째는 지금 신문을 배달하고 있는 이 짓을 15년 동안 해 오면서, 머슴살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신문사가 고용하는 머슴 아니라 '자영업'이라는 지국운영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선 신문이란 물건은 '고급상품'이지만 아무나 보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신문을 찾아 구독하는 분이 2~3%에 지나지 않습니다. 판촉사원이 고가의 물품을 주어가며 독자를 끌어들여도, 읽고 이해하는 기간도 걸립니다. 불과 6개월도 못 가서 보기 싫다고 하는 이도 많습니다. 최근 고층 아파드 배달하며 어느 1층집에 신문을 좀 봐 달라는 뜻으로 투입구로 넣어 봤더니 아무 반응이 없어, 잘 읽는구나 생각했죠. 15일 째되는 날 문 앞에는 14부 신문을 펴보지도 않은 채 놔뒀고 <신문사절>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나 같으면 궁금해서도 펼쳐 보겠는데...진작 거절했으면 이렇게 쓰레기가 되어 손해를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초에 투입한 제가 불찰일까요. 아무튼 신문 배달 할 사람이 없어 안달인데 다행히 변두리 지역에 사는 독자님이 그 지역의 아파트에 20부만이라도 배달해주겠다고 해서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지면관계로 이만 끝낼까 합니다. 차거워지는 날씨에 모두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2003,11 ) [email protected] 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