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장교들 상대로 로비, 외국 업체에 정보 넘기고 월급·업무 추진비 받아
법원선 10년간 솜방망이 처벌

군수(軍需) 관련 업무나 군사기밀을 다루던 군 간부들이 퇴역한 후 민간업체에 취업해 군사기밀을 빼돌리다 적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현역 시절 쌓은 인맥을 활용해 기밀을 빼내고 업체들을 위해 로비를 했다. 로펌이나 기업이 '전관예우'를 노리고 고위 공무원 출신들을 영입하듯 군에서도 이른바 '전군(前軍)예우'가 작동한다는 점을 업체들이 활용하는 것이다.

◆'前軍' 스카우트하는 군수업체들

스웨덴 군수업체 사브그룹은 2007년 공군 소장 출신 김모(57)씨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매달 1000만원씩의 보수와 업무추진비를 줬다. 계약 조건은 "한국군의 무기 구입 계획과 무기 보유 현황 등을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박모(해군 예비역 중령)씨와 조모(육군 예비역 중령)씨, 김모(공군 예비역 준장)씨는 전역 후 헬기 제조업체인 미국 시콜스키사(社)와 이스라엘 엘비트사(社)의 국내 판매를 대리하는 업체에 스카우트돼 군의 방위력 개선 관련 사업 수주 업무를 맡았다.

공군 대령 출신 장모(58)씨는 2006년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에 영입됐다. 공군대학 교수를 지낸 '무기체계 전문가'라는 이력 등이 고려됐다고 한다. 록히드마틴은 그에게 국내 대리점 부사장 직책을 줬다.

◆실제 스카우트 목적은 기밀 빼내기와 로비

업체들의 스카우트 이유는 겉으론 '전문성'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론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법원 판결문과 검찰의 공소장에서 드러난다. 사브에 영입된 김 전 소장은 2급 기밀인 '합동군사전략 목표기획서'를 빼냈다. 박모씨 등 외국 헬기 제조업체 대리점에 취업한 세 명은 3급 군사기밀인 2006~2010년 국방 중기계획 내용 일부를 업체에 유출했다. 국내의 한 차량용 발전기업체는 육군에 납품하기 위해 2000년 중령으로 전역한 이모(59)씨를 스카우트해 군 통신체계에 들어가는 발전기 조달 계획 등의 기밀을 빼냈지만 겉으로는 이씨에게 월 200만원씩 주고 납품에 성공하면 수주액의 3%를 성공 보수로 주는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현역 때부터 관리

사격 장비 개발업체인 N사는 2009년 1월 송모(54) 육군 중령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송씨 아들을 업체 인턴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서류를 꾸며 월 250만원씩의 보수와 월 100만원씩 법인카드도 쓰게 해줄 테니 잘 봐달라는 취지였다. 송씨는 후배인 홍모 중령에게 N사를 '인계'한 뒤 1년 후 전역했다. N사 대표는 검찰에서 "군내 인맥이 넓은 송씨를 현역 때부터 미리 관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군의 허술한 정보 관리… 前軍예우 대책 전무

육군 대령으로 전역한 황모(66)씨는 2005년 국방 관련 연구원을 설립했는데 2009년 연구원 경영이 어려워지자 후배인 현역 중령을 연구원에 초청해 강의를 맡긴 뒤 강의 과정에서 나온 군사기밀을 미국 군수업체 NGC에 빼돌렸다. 강의를 했던 현역 군인은 "중요한 기밀이 포함돼 있으니 메모하지 말라"고 했을 뿐 결과적으로 군사기밀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데 도움을 줬다.

외국 업체 등으로 군사기밀이 유출되는 것은 일차적으론 이 업체들에 취업한 예비역들의 책임이지만 군의 무대책과 제도적 허점도 원인이다. 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상당 기간 현직 때 담당하던 업무와 연관된 업체 취업을 제한받지만 예비역 군인에겐 이런 제한이 없다. 법원은 1993년 이후 10여년간 군사기밀 유출 혐의자에게 실형을 선고한 일이 없다고 한다. 이 같은 온정주의적 처벌 경향도 '전군예우'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