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00원과 소요시간 2시간 50분을 저울질한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까?
시간은 돈이라는데, 그래서 40분이 17,100원이 될까?
5월 4일 KTX 광주-용산 왕복 노선을 이용해 보고 나서 필자가 내린 결론으로는, 광주에서 서울을 가는데 소요시간과 여행의 안락함, 요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우등고속이다. 만일 고속철 전용선로 구간인 대전-서울간을 비교한다면 고속철 쪽으로 기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광주-서울 구간에서 고속철의 고속요금은 조금 억울한 면이 있었다.
여행의 안락함에 있어서는 두 가지 면을 고려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좌석의 편안함은 우등고속이 더 나았다.(고속철 일반석 기준) 다만, 자동차 도로에 비해 철도 여행 자체의 장점에서 오는 운행시 안정감은 물론 고속철이 낫기는 하다. 필자의 개인적 경우를 예로들면, 우등고속을 이용할 경우 낮이건 밤이건 아예 출발시점부터 잠을 청해서 도착할 때까지 억지로 잠을 자는 게 상책이다. 운행 중에 수시로 발생하는 가속도 때문에, 책이라도 보려하면 멀미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속철의 역방향 테이블 좌석에 앉아서도, 운행 중에 노트북을 이용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멀미 현상은 없다. 그래서 이 두 가지 관점을 종합한다면, 여행의 안락함은 고속철이나 우등고속이 동점이라고 해도 좋겠다.
필자와 동행했던 어떤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좌석의 안락함에 있어서는 오히려 무궁화호보다 더 못하다고 하셨다. 개통 첫날 방송에도 보도된 바 있지만, 순방향과 역방향을 승객이 임의로 조작할 수 있도록 했으면(무궁화호처럼) 더 좋겠고, 앞 좌석과의 공간도 좀 더 여유를 확보하는 것이 좋겠다. 좌석의 좌우 폭은 고속철 일반석과 우등고속버스의 좌석이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고속철의 가장 불편한 점은 앞좌석과의 공간이 좁아서 발을 뻗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발 받침대는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그나마 발을 뻗는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잘못하면 발을 삐는 등 부상의 위험만이 있을 뿐이고, 걸터 앉는 자세에서는 발 받침에 발을 올리는 것이 그냥 바닥에 편하게 두는 것에 비해 인체공학적으로 어떤 이득을 주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필자의 키는 174cm이고 상체에 비해 하체의 길이가 더 짧은 편이다.
한편, 테이블 설치 좌석은 필자의 경우 그 목적(예매할 때도 일부러 테이블석을 선택했음)에 적합하게 잘 활용하였다. 물론 일반 좌석도 앞 좌석의 등받이에서 비행기처럼 간이 테이블을 펼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그 공간에 노트북을 놓고 작업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고, 더구나 앞 좌석 승객분이 등받이를 뒤로 젖혀 잠을 청하기라도 한다면 아예 노트북을 접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역시 하행 길에 생면부지의 숙녀분과 마주 앉게 되었는데, 이제 잠을 청하려고 보니 다리를 편하게 뻗기가 참 실례되고 부담스럽다. 역시 테이블의 길이와 마주보는 좌석과의 거리를 좀 더 여유있게 확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행선에서는 일부러 특실을 한 번 방문해 보았다. 물론 특실은 특실 다웠지만, 광주-용산간 특실 요금이 36,300원 또는 40,000원 수준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인터넷에서 요금을 검색해보니 무려 50,800원이라니... 차라리 비행기를 타고 말겠다.
한편 소요 시간 면에서, 우등고속(일반고속도 마찬가지이지만)의 경우 교통 지체 현상이 없다면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결국 고속철을 이용할 때 대략 40분 정도(17%)의 시간을 버는 셈인데, 요금을 비교한다면 거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기 때문에 별로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어떤 경우에 그 40분이 17,100원 이상의 재화를 창출해 낼 수도 있다면, 또는 출퇴근 시간대, 주말, 명절 때 등 자동차 도로의 지체 현상이 심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보통의 평일에는 40분이라는 시간 절약에 비해 추가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호남선의 경우 고속철은 고속버스에 비하여 또 하나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시간 접근성'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비교 문제를 단순화하기 위해 평일날 예매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터미널 또는 역에 도착 즉시 승차권을 구입하고 바로 탑승하려 한다고 가정하자.(실제로 평일의 경우 고속버스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 예를들어 10시에 출발하는 차를 타려다가 시내 교통 체증 등 이유로 인하여 그 차를 놓쳤다면, 우등고속의 경우 최소한 10분 이후에 출발하는 다음 차편을 바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고속철의 경우 보통 2시간(최악의 경우 242호 열차와 244호 열차의 배차 간격은 4시간임) 정도를 기다려야 다음 차편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 부담을 사전에 고려한다면, 고속철을 이용하려면 상당한 시간 여유를 두고 미리 집을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고속철이 벌어준 40분의 시간에서 다시 10분 내지 15분 정도를 공제해야 한다. 또, 고속버스의 경우는 시간을 알아볼 필요도 없이 무조건 나서도 되지만, 고속철의 경우는 전화로든 인터넷으로든 출발 시각 정보를 미리 알아보아야 한다.
더구나 하행선의 경우 종착역인 광주역에 내렸을 때, 또 하나의 문제점이 눈에 띄었다. 필자는 22:27에 도착하는 243호 열차를 이용했는데, 이미 시내버스를 이용하기에는 늦은 시간이고, 택시 승강장을 보니 대기열이 만만치 않았다. 1호차에서 내린 관계로 하차 후 집표구를 빠져 나오는 시간이 꽤 걸렸는데, 당시에 택시 승강장의 상황은 대기 중인 택시는 없고 기다리는 승객만이 3 40명 정도 줄을 서 있었다. 필자의 집이 진월동이라서 비교적 원거리인 것이 좀 도움이 되었을까? 편법이긴 하지만 합승을 유도하는 약삭빠른 기사 덕분에 대기열에 서지 않고 3명이 합승하여 이내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순진하게 대기열의 끝 부분에 줄 서서 기다렸다면 또 10분 정도 손해를 보지 않았을까? 고속버스의 경우 거의 연속적으로 일정한 수의 승객들이 여러 방면에서 도착하기 때문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도 많고 승객들도 항상 30명 이내 정도의 수준으로 줄을 서게 되지만 이내 그 줄은 해결된다. 그런데 열차의 경우 광주역은 가끔 한 번씩, 갑자기 많은 승객들을 토해 내기 때문에 기다리는 택시의 열도, 승객의 열도 매우 불규칙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고속철이 벌어 준 시간은 몇 분인가? 앞 뒤 대기 시간 공제하고 나면 20분에 17,100원이라...?!
필자의 의견으로는, 고속철 요금 체계를 전용 선로 구간과 일반 선로 구간을 이원화하여 적용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전용구간을 달리는 서울-대전 구간은 현행 요금을 받더라도 고속버스나 무궁화호, 새마을호 등에 비해 시간의 이득이 탁월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일반 선로 구간인 대전 이하 구간에서는 시간의 이득이 현저히 상쇄되기 때문에 고속버스는 물론 같은 철도 노선인 무궁화호나 새마을호에 비해서도 비교우위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주-서울 구간을 예로 들면,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볼 때 대략 2만5천에서 3만원 정도의 요금이라면 적당하다고 본다. 그리고 좌석의 방향을 승객이 임의 조작(무궁화호처럼)할 수 없다면, 역방향 좌석의 경우 최소한 10% 정도의 할인 요금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행 요금대로라면, 자동차 도로의 지체 염려가 없는 평일의 경우 우등고속을, 지체가 염려된다면 고속철보다는 무궁화호를 이용하겠다.(새마을호의 경우도 이용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요금만큼의 안락함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좀 비싸다는 느낌이 든다. 시간의 이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71095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