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국책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개발과 환경보전의 가치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그렇고,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가 그렇다. 개발이든, 환경보전이든 둘 다 내세우는 목적은 국민 편익 증진이다. 따라서 갈등은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가운데 공사 지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착공한 지 10년이 넘은 새만금 사업은 중단 여부가 법원의 판결에 맡겨진 상황이다. 어제 행정소송에서 1심 재판부가 “사업계획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3년6개월간 계속된 법정 다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어야 해결될지 알 수 없다. 천성산 터널 공사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 한 개인의 반발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정부와 환경단체 대표로 구성되는 공동조사단이 터널 공사에 따른 환경영향을 다시 조사한다지만, 방법이나 결과를 놓고 논란이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자칫 새만금 사업처럼 또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처음부터 이들 사업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한 데 있다. 개발에 따른 국민 편의만 따진 나머지 자연훼손, 환경파괴에 따른 손실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를 하긴 했지만 일방적으로 어설프게 한 탓에 객관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환경단체 등의 참여가 배제된 결과다. 그러다 보니 국민으로부터 사업 자체의 타당성마저 의심을 사고 있다. 나아가 정부가 추진하는 어떤 국책사업도 불신을 사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밀어붙이기식 국책사업의 배경에는 정치논리가 깔려 있다. 정치권이 대선, 총선을 앞두고 표만 노리고 내건 공약의 ‘덫’이 오늘날 이같은 엄청난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민정당 후보시절 공약으로 발표했다. 당시 타당성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도 새만금 사업을 둘러싸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다. 법원의 ‘사업계획 취소 또는 변경’ 판결에 대한 여야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열린우리당 쪽은 “전북도민을 실망시키는 결정”이라면서 “계속 추진돼야 한다”는 반응인 데 반해 한나라당은 달랐다.
경부고속철도 사업도 비슷하다. 치밀한 사전 준비도 없이 시작한 뒤 잦은 사업계획 및 노선변경으로 공기가 지연되면서 사업비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노선 선정은 처음부터 주먹구구식이었다. 기술적 요소보다 정치적 판단이 우선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대구~부산 신설 노선은 더욱 그렇다.
정부는 현재 이들 국책사업이 지연되는 데 따른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왕 시작한 공사인 데다 막대한 돈이 투자된 만큼 공사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부가 거의 무시하다시피 한 환경보전의 가치를 제대로 따진다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새만금 사업의 경우 개발을 중단하는 것이, 천성산 터널 공사는 노선을 바꾸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발 편익과 환경보전의 가치를 비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 사업의 이해당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들 국책사업의 표류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 사업계획 단계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환경단체를 포함한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여론 수렴, 갈등 조정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 사업추진 시기는 늦어지더라도 사회·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이 먼저 각성해야 한다.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리한 공약을 졸속으로 제시하고 추진해서는 안된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 중인 신행정수도 건설사업이 훗날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걱정이다. 국가 현안인 원전센터 건립에도 이번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 2005년 2월 4일자 경향신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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