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오름 반경 500m 내 곶자왈 지대 중 일부가 ‘황무지’로 변했다. 용암지대에서 지하수를 머금고 자라 독특한 식생을 띄던 나무와 덤불들이 있어야 할 곳이 온통 흙밭으로 변한 것이다. 지대 간 편차가 제각각인데다 땅속에서 나온 현무암들이 곳곳에 나뒹굴었다.
이곳은 원래 천연 원시림들이 울창하게 자란 곳이라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 선흘곶자왈 지대다. 천연기념물이자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완충지역이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지질학적 가치도 뛰어나 제주특별법에 따라 중점 관리되는 생태계보전지구다.
그런데 개발업자들이 땅값을 노리고 약 18만8419㎡(5만6997평)을 밀어버렸다. 나무 1만28그루가 있던 자리였다.
◇'유네스코 3관왕’ 제주 지키는 중점검찰청
제주도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등재됐고, 이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유네스코 3관왕을 차지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800m 이상의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응회구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였다.
하지만 관광객이 급격히 늘고 개발이 계속되면서 각종 환경훼손 범죄가 증가했다. 제주지검은 대검찰청에 지속 가능한 자연유산 보호와 균형있는 개발을 위해 중점청을 건의했고, 대검은 2017년 12월 제주지검을 ‘자연유산보호 중점청(제주지검 형사3부)’으로 지정했다.
제주지검 중점청은 신재홍(사법연수원 35기) 부장검사를 필두로 전철호(39기) 검사, 장태원(43기) 검사, 권다송이(변호사시험 4회) 검사로 구성됐다. 제주자치경찰단(자경단)에서 파견받은 1명 등 수사관 5명과 실무관을 포함하면 총 12명 규모다. 제주지검은 자경단과 함께 합동수사단의 이전 격인 ‘자연유산 훼손 범죄 합동수사 체계’를 통해 중점청을 운영하고 있다.
◇자경단과의 합작품인 ‘거문오름 사건’
합동수사 체계는 제주지검만의 장점으로 꼽힌다. 검·경 수사권이 조정됐지만 자경단은 법률상 특별사법경찰관에 해당, 이들이 수사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제주지검이 수사지휘를 할 수 있다. 검찰이 환경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권이 없는 상황이지만, 자경단과 수사 초기부터 압수수색 및 구속 여부 등 유기적 협조를 통해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거문오름 사건’ 수사도 합동수사 체계에 따라 자경단과의 유기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철호 검사는 지난달 30일 조선비즈와 만난 자리에서 “기록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일반 사건과 달리, 자경단은 직접 기록을 들고 온다”며 “대면해서 배후 사정과 면담 등을 하면 기록 파악과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주임검사였던 장태원 검사와 자경단 소속 이동건 수사관의 협력으로 거문오름 관련 수사가 확대될 수 있었다.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개발제한구역이라고 공사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개발업자들이 진행시켰다”는 중장비 기사들의 증언을 확보한 것이다. 개발업자의 형제들이 범행에 가담했는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토지 시세차익이나 관광지 개발 등을 노린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확보했다.
5억원 상당의 일본산 참돔 약 3만5000㎏을 국내산으로 속여 유통한 혐의를 받는 일당을 적발하기도 했다. 신 부장검사와 권다송이 검사는 수사 초기부터 제주자치경찰단과 긴밀하게 협력해 혐의를 뒷받침할 핵심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제주지검에 따르면 자연유산훼손 범죄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잠시 주춤했다가, 코로나 확산세가 줄면서 다시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 범죄 유형으로 꼽히는 ‘산지관리법 위반’ 사건은 2019년 총 37건이 기소됐다. 이후 2020년 34건, 2021년 47건으로 증가하더니 올해 7월까지 33건에 달했다.
권 검사는 “제주 도심에는 지반이 단단해 땅을 파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없다”면서 “하지만 도심을 제외한 지역은 흙으로 돼 있어 공사하기가 편한 데다 사람들의 관심도 적어 대규모 개발이 쉬운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직접 피해자 없고, 적발·회복 어려운데... 범죄는 증가”
이처럼 자연환경훼손 범죄는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에서 발생한다. 일단 범죄 발견이 어려운 데다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도 없어 수사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신 부장검사는 “범죄가 발생해도 누군가 직접 신고하거나 피해를 호소하지 않는다”면서 “외부 신고가 유일한 수사 단서이고, 누가 신고하지 않는 이상 인지할 수 없는 특징이 있어 단속 인원 확충이 절실하다”고 했다. 실제 거문오름 사건 역시 제주세계유산본부 소속 직원이 범행을 목격해 신고하면서 적발될 수 있었다.
환경훼손 범죄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아도 형량이 낮은 점이 문제로 꼽힌다. 2016년 제주 한림읍에서 2만여㎡ 임야를 무단 훼손한 일당 2명이 기소됐는데,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5년 간 돼지농장을 운영하며 가축분뇨를 곶자왈에 무단 방류했던 농장 운영자도 징역 8개월을 받는데 그쳤다.
장 검사는 “제주특별법상 절대보전지역은 관리보전지역, 상대보전지역에 비해 보전의 필요성이 높은 지역이지만, 훼손하는 경우 형량은 고작 2년”이라고 지적했다. 신 부장검사는 “그간 개발이 주된 가치였고, 직접적인 피해가 생겼다고 보기 어려워 형량이 낮았던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형식적인 원상 회복’이 양형 요소로 받아 들여지는 점도 문제다.
권 검사는 “재판에서 재판부가 ‘원상회복할 것인가’라고 물으면, 피고인들은 ‘꼭 할 것’이라 대답하고 자료도 제출한다”면서 “하지만 막상 가보면 100년 된 나무를 자른 자리에 묘목을 심어 놓고 ‘원상회복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실질적인 원상회복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합동수사단 확대, 용도지역 재지정 등 추진”
제주지검은 이원석 전 제주지검장(현 검찰총장 후보자)이 추진한 합동수사 체계를 ‘합동수사단’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자경단 소속 수사관을 제주지검에 파견하는 형식인데, 규모를 더 키우겠다는 것이다. 신 부장검사는 “자경단과 업무협약을 통해 구체적인 구조를 확정할 것”이라고 했다.
자경단 수사권 문제에도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거문오름 사건의 적발과 초동수사는 신속하게 이뤄졌다. 다만 범죄수익환수, 증거위조, 범인도피 등에 대한 수사는 초동 수사 단계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개발업자들의 수익을 환수하지 못했고, 증거위조 등 혐의까지 수사가 진행되지 못한 것이다. 초동 수사를 담당하는 자경단에 몰수·추징보전할 권한이 제한돼 있어 적시에 범죄수익을 동결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증거위조나 범인 도피에 대한 수사권도 없는 상황이다.
장 검사는 “(피의자들의) 증거인멸 혐의가 짙더라도 자경단은 조사를 할 수 없어 눈 앞에서 놓치게 된다”며 “이처럼 초동 수사 단계에서 권한이 없어 ‘수사 공백’이 생기고 있는데, 자경단 등 특사경에 이 같은 권한을 인정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지검은 제주도청 측에 보다 실질에 부합하도록 ‘지목, 용도 변경’ 등도 정식 건의할 방침이다. 실제 거문오름 사건의 개발업자들은 해당 땅의 지목이 산지이더라도, 용도가 ‘초지’로 돼 있는 점을 악용했다. 주소는 ‘산90, 산 96′이었다.
신 부장검사는 “누가 봐도 산지고 자연유산이 인접한 곳은 산지관리법으로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죄 발생지에 대한 ‘원상회복’에도 힘쓰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장 검사는 “문화재청에서 원상회복 명령이 내려오면, 토지 양수인에게도 회복 의무가 승계된다”며 “원상회복 명령 준수 여부를 철저히 감독하고, 문제가 된다면 고발하는 등 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