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말 2001. 4월호
경 제 초 점
국민■주택은행 합병 초읽기 / 긴급제안
국민■주택 합병은 이미 물건너간 사안인가. 그러나 한국경제가 합병으로 건너간 물이 저승의 강 카론
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찬근 교수는 본지에 보내온 긴급제안서를 통해 합병유보의 방법을 제사하
는 한편 국민경제적으로 타당한 금융시장의 구조를 다시 구성하자고 호소한다.(이찬근/시립인천대 무역
학과 교수)
뉴욕증시 상장 이후로 유예하라
『조선일보』등 주요 일간지에서는 최근 정부(국가)가 지배하는 은행 수가 너무 많다며 시비를 걸고 있
다. 그러나 도리어 문제는 실상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은행권은 국민■주택 합병은행과
한빛은행 중심 지주회사 등 3~4개의 독과점체제로 바뀌고 있고, 더욱이 이들 은행은 속속 외자의 영향
권하에 들어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은행합병은 국민경제 해외매각과 동의어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국민경제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정부■여당은 마치 정권의 존립이 걸린 문제인양 대형화 의지를 고수하고,
야당은 정부■노조간 대립구도를 은근히 즐기고 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기획기사를 통해 문제점
을 짚어야 할 텐데, 이미 대세가 결정된 마당에 뉴스거리가 안 된다며 발뺌만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절박한(?) 이유로 은행권을 외자지배의 독과점 구조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 무모
한 빅뱅 기도의 배후에는 정부의 대형화 불가피론이 있다. 정부는 줄곧 은행대형화가 세계적 추세이므
로, 우리도 세계적 규모의 대형 선도은행을 만들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해 왔고, 상당부분 씨알이 먹
혔다.
하지만 과거 70년대에 행해진 재벌키우기와 비교해 봐도 은행덩치 키우기의 논리가 얼마나 황당한 것인
지는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무엇보다 재벌 대기업은 해외시장에 나가 선진 대기업들과 몸싸움을 벌여
야 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자원을 집중해 이들을 밀어 줘야 했다.
그러나 은행은 전혀 다르다. 대형은행을 만들어 봐야 국내금융에 치중할 것이 뻔하고, 결코 국제금융시
장에 나가 굴지의 은행들과 경쟁을 벌여 포춘 500대 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일수 있으리라 기대 할 수
는 없다. 외환은행에 부행장으로 나와 있는 독일 코메르츠 은행의 만프레드 드로스트씨는 필자에게 다
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한국에서 국제금융 분야에 가장 경험이 많다면 단연코 외환은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환은행이 국
제은행으로 발돋움한다는 것은 먼 장래에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또 재벌 대기업은 외견산 사기업이었지만 사실은 상당 기간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했던 국적 기업이었
다. 국가가 필요로 한다면 출혈수출을 해서라도 열심히 외화벌이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외자에 지배
되는 초대형 은행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국익이 아니라 은행 자체의 수익성만이 지상명제로 등장하게
된다. 뉴브리지 캐피탈이 51%를 소유한 제일은행의 경우를 보라. 최근 다른 모든 채권은행이 합의했던
구제금융(회사채 인수조치)에서 발뺌하는가 하면 소액저축에 계좌유지 수수료를 부과하는 등 유아독존
의 행태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왜 은행업이 공익성과 결코 유리될 수 없는 것인지. 그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
쉽게 말해 경제는 항상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경기순환에 따라 불경기가 반복적이고 필연적으로 오
게 마련이다. 그런데 주식이나 채권을 취급하는 자본시장은 결기 사이클을 심하게 타므로, 경기가 바닥
을 칠 때면 곧잘 유동성 순환기능이 마비되곤 한다.
그 결과는 뻔하다. 부실기업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실물경제에서 매출이 급감하고, 재고
가 쌓이면서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빠르게 악화되는데, 자본시장에서는 신규자금을 끌어다 댈 수 없다.
제 2의 대우사태, 제2의 현대사태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을 모두 죽일
수도 없다. 직간접적 연관으로 수십만 명의 일자리가 걸려 있는 기업체를 단칼에 죽일 수 있는 정권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한국식 금융개혁, 독일도 망한다.
이럴 경우엔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하거나, 은행을 비틀어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나라들은 대형 은행의 국적을 중시한다.
국민경제라는 밥그릇을 깨지 않기 위해서는 유사시 은행이 나서 경제안정화 기능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
이다. 그런데 돈벌기 위해 들어온 외자에게 우리 국익을 고민하자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는가.
싱가폴은 누구나 인정하는 개방경제지만, 1999년 5월까지 외국인의 은행지분 소유상한을 40%로 묶어 4
대 은행의 국적을 지켰고, 경제안정도 기할 수 있었다. 호주, 캐나다, 말레이시아 등도 유사한 규제장
치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공히 외자통제 노하우의 축적 정도에 맞춰 은행업을 개방한다는 것이 기
본 방침이다.
이처럼 정부가 의도한 대형은행을 만들기는 여러 모로 무리수이다. 독과점 체제로 인해 신용불안이 만
성화되거나, 금융 시스템 전체의 붕괴 위험이 높아지고, 외자 지배체제로 인해 공익성이 말살될 수 있
다 그렇다고 경쟁력이 키워지는 것도 아니다. 경쟁력이란 그야말로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았을 때야
비로서 생겨나는 것인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대형은행들은 단지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통해 소
비자로부터 초과이윤을 자내거나, 중복된 점포와 인원을 잘라내서 극히 한시적으로 이윤을 얻을 뿐이
다.
바로 이 때문에 은행 대형화는 반드시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 은행권에 진정 필
요한 개혁이 무엇인지를 근본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한국은 결코 은행 수가 많은 나라가 아니다. 별다
른 차별성이 없는 지점들이 대거 난립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지만 효율적경쟁 구도를 만들기엔 한국의
은행 수가 오히려 적다고 보아야 한다.
독일의 경우에는 놀랍게도 3천여 개의 은행이 박 터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흔히 독일의 은행이라면
도이체 은행, 드레스너 은행, 코메르츠 은행이라는 3대 민간은행을 떠올리지만, 이들이 은행권 총자산
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저축 은행과 상업은행
이 5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고, 이들은 독일의 최대 강점인 전통 제조업의 중소■중견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고 소득수준이 1만 달러도 안 되는 이 나라에서 월가의 수익성 기준에 따라 기업을 죽이고 살리
다 보면, 산업 기반은 크게 흔들리고 국민들에게는 일자리가 만들어질 까닭이 없다. 유일하게 국내 기
준으로 투자를 떠맡을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해 독일에서 만난 분데스방크의 기업금융 담당 국장
은 이렇게 말했다.
독일의 중소■중견기업에 월가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아마도 99%는 도산해야 할 것이다. 실로 충격적인
발언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은행이 금융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영
국, 미국처럼 자본시장 중심으로 가기엔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 경영 투명성, 신용평가제도, 회계
제도, 외부 주주권리 강화 등 증시 하부구조가 일천하고, 부를 축적한 중산층의 폭이 좁아 외국자본의
맘먹기에 따라 장세가 변덕스럽게 춤추고 있지 않은가.
이때 혹자는 대기업의 방만한 과잉중복투자를 조장하고 방치한 주범이 바로 은행인데 이들을 그대로 두
잔 말인가라고 반박할 수 있다.
물론이다! 오랜 기간 정부의 시녀 역을 도맡아 도덕적 해이를 저질러온 은행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
다. 그러나 은행을 개혁한다고,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깨는 것은 큰 잘못이다. 지금가지 제대로
된 경쟁을 벌인 적이 없는 한국의 은행 간에 치열한 수익성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이 무한 경쟁은 아니다.
게임 룰에서 벗어난 과열경쟁은 은행의 도산을 부르고, 이는 연쇄도산으로 이어지면서 금융권을 파국으
로 몰고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당국은 적정 경쟁 혹은 효율적 경쟁의 구도를 만들어 내야 한다. 모든
은행이 모든 영역(대기업금융, 중소기업금융, 가계금융, 지역금융)에서 경쟁할 수는 없으므로, 주요한
업무영역별로 짜인 경쟁 구도를 구상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은행 뉴욕즉시 상장 통해 합병 미루라
가계금융의 60% 이상을 치지할 것이 뻔한데도 국민■주택은행을 무모하게 합병한다거나, 중소기업 금융
을 주도해 온 기업은행을 외환은행에 대책 없이 넘긴다거나, 한빛은행 주도의 지주회사에 부실 지방은
행을 몰아넣어 지역금융을 말살하는 정책은 명백한 죄악이다.
이제 결론을 말하자. 은행 대형화의 첫 단추인 국민■주택은행 합병은 일단 보류되어야 한다. 3월 말
로 합병계약이 성사되고, 곧이어 4월 말에 양 은행 주총에서 합병 승인이 내려지고 나면 되돌리기 어렵
다. 각종 국내외 송사가 터져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필자는 그래서 정부에 주택은행(이미 뉴욕증시에 상장을 마침)의 합병 파트너인 국민은행이 뉴욕증시
상장을 마무리 해 주택은행과 동등한 자격을 갖출 때까지 합병계약을 일단 미뤄 시간을 번 뒤 합병의
국민경제적 타당성을 재채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이 같은 합병계약 유보조치는 그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 온 주주자본주의의 정신에도 부합되는 것이
다. 양 은행의 합병비율은 지난해 말 합병발표 시점에서의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하게 되는데, 주택은행
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과대평가 되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공정성 시비에 걸릴 수 있다.
그간 주택은행은 맥킨지로부터 경영컨설팅을 받는다거나 뉴욕증시에 주식을 상장시키는 등 다양한 쇼맨
십으로 거품주가를 만들어냈다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지 않은가.
이 점은 주택은행의 대주주인 ING 베어링측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이야기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주지
하듯이 주택은행은 그간 주택금융분야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으면서 비교적 안전하게 먹고 살아
온 은행이다. 그런데 주택금융 분야는 이미 모든 은행으로 자율화되었고, 건교부로부터 위임받아온 국
민주택관리기금 업무도 더 이상 독식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게다가 중소기업 대출분야
의 상당 부분은 현재 큰 몸살을 앓고 있는 건설업체가 대부분인지라 포트폴리오 구성이 극히 취약하
고, 수신분야도 주택청약예금이 대부분인지라 탄탄한 고객기반을 가졌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주택은행의 이러한 실상은 주택의 주가가 버블일 수 있음을 뜻하고, 이대로 합병을 강행한다면 국민의
소액주주가 대의명분에 밀려 부지불식간에 손해를 입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당연히 국민은행도 뉴욕증
시의 상장절차를 밟아 국제기준에 따라 동등하게 주가를 평가받고 난 이후에 합병계약을 체결하는 것
이 올바른 수순일 것이다.
뉴욕증시 상장은행이 비상장 은행과 합병한 사례가 없는데도 한국이 정치일정에 짜맞추어 이를 강행하
는 것처럼 보인다면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고, 합병을 하루라도 빨리 기정사실화하고 싶은 외국인 대주
주의 책략에 노리개가 되는 것일 뿐이다.
양 은행 노동조합은 단결하라
국민■주택의 합병문제는 단지 양 은행 종업원의 일자리 문제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는 외자지배의
독점적 은행을 출현시켜 향후 국민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중한 사안이
다.
양 은행 노조는 이러한 관점에서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데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만에 하나, 양 은행 노조가 주도권 시비에 휘말리면서 연대체제에 틈새가 벌어진다면 여론의 차가운 눈
길 속에서 애국적 공론화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며 어느 한쪽에 득이 돌아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
를테면 주택의 김정태 행장이 합병은 행의 CEO가 되면 주택직원들에게 뭔가 유리하겠지 혹은 국민의 김
상훈 행장이 자리에 앉으면 국민 직원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와 같은 식의 발상은 지극히 위험천만이
다.
노사협약을 밥먹듯이 어기고, 수시로 말바꾸기를 일삼아 온 두분에게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가. 노조
는 이번 합병의 주역이 어디까지나 정부와 외국인 대주주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직시해야 한고, 일단
합병이 성사됨과 동시에 외국인 대주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짚어봄으로써 가장 떳떳하고 힘있는 대
응방향에 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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