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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ㆍ실무형과는 거리 멀어

결국 DJ는 이번 개각을 통해 현 정권의 국정 운영 기조인 ‘4대개혁 드라이브’와 올해 초부터 표방해온 ‘강한 정부론’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짧 게는 내년 상반기의 지방선거, 길게는 내년 12월의 대선까지를 내다본 다목적 ‘ 정치 포석’으로 이번 개각을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개악 ’이라는 야당의 반발과 여론의 비판을 예상하면서도 이번 개각을 친정체제 강화와 반 한나라당 세력 규합의 기회로 삼는 강수를 또 한번 띄운 셈이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관계자는 “DJ는 기본적으로 현실적인 정치인”이라며 “여론에 밀려 명분과 모양새에 연연하지 않고 정치적 실리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개각으로 탄생한 ‘3·26 내각’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 내각’이라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전면에 배치돼 당초 예상돼온 ‘전문성을 갖춘 내각’ ‘실무형 내각’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이번에 교체된 장ㆍ차관급 인사 14명 중 한승수(한승수) 외교통 상부 장관을 비롯해 김영환(김영환) 과학기술, 장재식(장재식) 산업자원, 오장섭(오장 섭) 건설교통, 정우택(정우택) 해양수산부 장관, 김덕배(김덕배) 중기특위장(장관급), 차관급인 박지원 정책기획수석 등 절반인 7명이 정치인 출신이다. 또 정통 관료 출신 이지만 이근식(리근식) 신임 행정자치부 장관 역시 지난 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때 입당해 통영ㆍ고성 지구당위원장을 지냈고 합참의장 출신인 김동신(김동신) 국방장관 도 지난 민주당 창당 때 입당했기 때문에 이번에 입각한 장관(급) 중 양승택(량승택) 정통부 장관과 나승포(나승포) 국무조정실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당적(당적)을 소유 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3·26 개각’ 이후 내각에는 이한동 국무총리와 김원길(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20명의 내각 멤버 중 절반을 정치인 장관이 차지하게 됐다. 이같은 정치인들의 전면 배치에 대해 여당에서는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조치라고 자평(자평)하고 있지만 이 역시 DJ의 정국 정면 돌파 의지의 산물(산물)이라는 것이 대 체적인 관측이다. 즉 국정 난맥상에 대한 야당의 ‘정치 공세’를 용납지 않고 오히려 민국당까지 가세한 3당 정책연합 추진을 통해 야당을 압박하는 포석을 깔다 보니 실무 능력보다 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해 정치인들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 3월 26일 오전 박준영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이 개각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일단 여권에서는 이번에 한승수 의원이 외교통상부 장관에 기용됨으로써 민주당· 자민련·민국당의 ‘3당 연합’이 사실상 성사됐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민국당 내 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김윤환(김윤환) 대표의 신임 여부와는 상관없이 국회와 정부에서 ‘3당 연합’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약 개각을 계기로 3당 연합이 원만히 굴러갈 경우 공동 여당은 국회에서 과반수인 137석을 확보, 실질적 으로 야당을 힘으로 압박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기택(리기택)·장기표(장기표) 최고위원 등 민국당 내부와 야당의 반발 강도가 걸림돌이긴 하다.

이번에 자민련 현역 의원 3명을 입각시킴으로써 DJP 공조를 공동정권 출범 초기 수준으로 복원한 것 역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에 자민련은 오장섭 건교 부 장관, 정우택 해양수산부 장관, 장재식 산업자원부 장관 등 3명의 의원이 입 각함으로써 이한동 국무총리를 포함해 내각에 4명을 포진시키는 괄목할 ‘성과’ 를 올렸다. 이 때문에 자민련 내부에서도 “명실상부한 공조의 틀을 갖추게 됐다 ” “이제 우리가 공조를 먼저 깨고 나설 가능성은 없어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 다. DJ로서는 이번에 말이 아닌 행동으로 DJP 공조 회복을 보여줌으로써 DJP 공조 를 기본 구도로 다음 대선을 치르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볼 수 있다.

●DJP 공조 초기 수준으로 복원

특히 이번 개각을 계기로 앞으로 김종필(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역할이 크게 주목된다. JP는 개각 전날 경기도 용인의 골프장에서 긴급 연락을 받고 이례적으 로 라운딩을 중단한 채 귀가해 집에 찾아온 한광옥(한광옥) 청와대비서실장과 개 각 인선(인선)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평소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개각에 대해 입장 표명을 자제해온 JP는 이번에 이례적으로 ‘이 총리 유임’을 사전에 통보, 총리는 자민련 몫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실질적인 공동정권 2대 주주로서 JP가 자신의 말대로 ‘킹 메이커’로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음을 보 여주는 대목들이다. 또 앞으로 민국당까지 참여하는 정책연합이 원만히 굴러갈 경 우 ‘3당 합당’도 대두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치적 포석’과 관련해 이번 개각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부분은 임동원(림동원) 국정원장의 교체와 신건(신건) 신임 국정원장의 임명이다. 이는 지금까지 대북 문제 에 몰두해온 임동원 국정원장 체제를 ‘본연의 임무’로 되돌리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 이와 관련, 민주당 내에서는 이번 개각을 앞두고 모 실세 의원이 국정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비판적인 보고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즉 임동원 전 원장이 너무 대북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국내외 정보 수집이라는 국정원의 기본 역할이 그야말로 와해(와해)에 직면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한다. 때문에 신건 체제의 국정원은 국내외 정보 수집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다시 주력할 것으로 보인 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는 신건 신임 국정원장의 경력도 주목된다. 전주 출신으로 대검 중수부 1, 4과장을 지낸 신건 원장은 검찰에서 특수 수사로 이름을 날렸고, 현 정권 들어서는 법무 차관에 이어 국정원 2차장을 맡아 ‘국내 정보’에 주력해 왔다. 이 후 민주당으로 옮겨서는 당 법률구조자문위원장을 맡아 야당을 상대로 각종 선거 소 송을 지휘해 왔다. 이런 경력에 비춰보면 신건 원장의 발탁은 현 정권의 최대 과제 인 차기 정권 창출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그동안 음지(음지)에서 사실상 대북문제를 총괄해온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통일부 장관을 맡아 양지(양지)로 나섰다는 것 역시 기존 대북(대북) 포용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DJ의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오히려 국정원장이라는 위치 때 문에 가해지던 제약에서 벗어나 임 통일부 장관이 대북 포용정책을 더욱 강력히 추 진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대북정책과 함께 현 정권의 국정 운영 기조인 ‘개혁 드라이브’를 계속 밀고 나가겠다 는 것은 개각 직전 이해찬(리해찬)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다시 발탁한 것에서 이미 예고 됐다. 민주당 내에서는 산적한 정책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해찬 의원 말고는 ‘적임 자’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으나 의약분업 사태의 책임자를 ‘해결사’로 다시 기용하 는 데서 문제의 수습보다는 기존 개혁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라는 DJ의 강한 주문이 읽힌다는 것이다.

또 이번 개각에서 재야 노동계의 진보적 인사인 이태복(리태복) 노동일보 회장을 청와대 복지노동 수석에 기용한 것에서도 개혁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DJ의 의지가 보인 다.

●야당 "실망을 넘어 절망 그 자체"

박지원(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의 등용도 여론의 동향에 신경을 쓰지 않는 DJ 특유의 ‘고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빛은행 불법 대출사건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물러났지만 여론의 비판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측근 중의 측근을 과감하게 발탁한 것이다. 특히 박 수석은 청와대 수석 중 선임수석으로 평가받는 정책기획수석을 맡음 으로써 집권 후반기에 더욱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국 운영 전반의 전략기획 사령탑으로서 기존 정책기획수석들과 달리 비서실 내에서 실질적인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DJ가 기존의 ‘강한 정부’와 ‘개혁 드라이브’를 그대로 유지하며 차기까지 내다보는 포석으로 이번 개각을 단행했지만 이러한 DJ의 의중이 그대로 관철될지는 의문이다. 일 단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권철현(권철현) 대변인은 이 번 개각에 대해 “철저한 나눠 먹기, 측근 재등용, 정계 개편을 위한 정략이 어우러진 한 국 정치사 최대의 개악(개악)”이라며 “실망을 넘어 절망 그 자체”라고 혹평했다. 또 “ 인사가 망사가 된 이번 개각 내용은 김대중 정권이 이미 정상적인 국정 운영 의지를 아예 포기했음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한나라당은 국무총리 해임 등을 위한 수순을 밟아 나갈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총체적 국정 난맥상의 수습책으로 기대되던 이번 개각이 오 히려 또 다른 국가적 분란의 소지로 비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집권 말기로 치닫는 DJ의 계 속되는 강수(강수)가 이번에는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

(정장열주간조선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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