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3월 12일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를 포함, 카톨릭이 지난 200년 동안 저질렀던 과오에 대해 전세계를 향해 용서를 구한다고 선언했다.
교황은 이날 오전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거행된 사순절 미사를 통해 "우리 카톨릭은 기독교도들 사이의 분파와, 진리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행한 폭력, 그리고 다른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대적인 의식 등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사순절을 기념하기 위한 보라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집전했으며, 성당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성직자와 교인 1만 여명이 참석했다. 교황은 참석자들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고백문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그의 얼굴은 이날 참회자의 모습 이어서인지 더욱 어두워 보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교회의 과거 과오들에 관한 6개항 90쪽 분량의 이 문건은 이미 3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제출, 발표된 바 있다. 이 문건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제 3천년기의 개막을 준비하면서 양심의 성찰을 통해 교회의 역사적인 과오를 반성하도록 요청한 것이라는 것이 교황청 당국의 설명이다.
문건은 십자군 원정에서부터 유태인 탄압, 중세의 종교재판, 신대륙 원주민 학살 등 카톨릭 교회가 과거에 범한 과오들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각종 관련 문서들을 집약해 교회의 입장을 총정리한 것이다. 문건은 그러나 그리스도의 배필로서 거룩하고 흠 없는 교회와 항상 죄사함을 받아야 하는 죄인으로서 교회의 구성원들을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다. 열거된 역사적인 과오들이 교회의 오류라기 보다는 항상 회개하고 회심해야 하는 교회 구성원들의 죄라고 말하고 있다. 문건에서 지적된 교회의 역사적 과오는 다음과 같다.
◇ 십자군 원정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에 의해 시작된 원정으로 많은 유대인과 회교도들이 학살됐다. 첫 원정에서 십자군은 4년간 7만명을 학살했고 6차례의 원정을 통해 많은 도시를 약탈했다.
◇ 유태인 박해
교회는 오랫동안 공공연히 반유태주의를 표방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유태인을 원수로 여겼다. 11세기 십자군 원정 때부터 유태인 탄압이 본격화 됐고 가장 고통스런 과거인 유태인 대량학살(홀로코스트)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 중세 고문형
소위 마녀사냥으로 대변되는 가혹한 형벌은 교회 역사의 가장 어두운 역사의 하나이다. 12세기부터 시작돼 15세기 이후 100년 동안 이어진 화형식, 그리고 스페인 등에서의 고문형은 19세기가 돼서야 공식 폐지됐다.
◇ 신대륙 원주민 학살 방조
신대륙 발견 후 선교와 이방 문화 척결을 명분으로 벌어진 원주민 학살을(로마교회는) 방관했다. 16세기 멕시코 원주민 수는 이로 인해 1500만명에서 300만명으로 줄었다.
☞ 반 응
◇ 이에 대해 카톨릭 내 강경론자들은 "교황청의 사과로 교회의 권위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 카톨릭의 참회 내용이 기대에 훨씬 미흡하다는 비난도 있다. 유태인 측에서는 이날 교황의 사과에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침묵했던 교황청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카톨릭 교회를 이끄는 과정에서 '종교적 독재'를 자행하고 있다고 독일 튀빙겐 대학 신학과 칼 요세프 쿠쉘 교수가 비판하고 나섰다.
쿠쉘교수는 시사주간지 슈피겔(Spiegel) 최신호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교황이 카톨릭 교회의 오류와 죄과에 대해 사죄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지만 이런 사죄의 태도에 상응하는 교회의 혁신과 개선에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교조적인 교회법 적용,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 화해자세의 결여 등으로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쿠쉘 교수는 '혁신이 따르지 않은 사죄'라는 제목의 글에서 교황이 행한 사죄정신과 모순되는 일련의 사례를 열거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교황은 94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카톨릭교회의 공직에 오르는 것을 재차 금지시켰다. 교황이 여성 차별을 속죄하는 서한을 발표했던 95년 에 교황청은 여성에 대한 사제 서품 금지가 영원히 지켜야 할 계율이라고 못박았다. 독일법은 교회와의 상담을 거쳐 임신 3개월 내에 낙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나 교황은 독일 주교단이 이 상담에 참여하는 것을 독단적으로 금지시킨 사례도 제시했다.
쿠쉘교수는 현재의 교황 아래서도 이혼자,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 전직 신부 등은 여전히 천대받고 있고 카톨릭은 개신교회와의 화해 문제에 있어서도 여전히 공동성찬식, 교회직분의 상호인정 등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교황의 절대 명령권과 무오성이라는 독단이 계속 고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쿠쉘교수는 특히 교황이 "신에 의해 세워진 필연적인 조직은 카톨릭 교회뿐"이라는 주장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타종교와의 진정한 화해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카톨릭 교회가 과거의 오류와 죄악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사죄의 뜻을 현실 속에서 교회의 개혁으로 실천하지 않는 다면 교화의 이번 사죄는 신뢰성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베를린-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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