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라고 따질 것도 없이 우리나라는 문을 숭상하고 무를 경시하는 혐군적(嫌軍的) 사고방식이 뿌리 깊다.

그래서 당하고 사는 게 체질에 맞는지 몰라도 우리사회에서는 “억울함”이 최대의 방어논리로 통한다.

지금 우파정부로 보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 흔히들 말하는 군 출신이라는 고위 장교 출신자들이 입각에 배제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군 출신 배제는 차치하고라도 핵심요직의 대부분을 병역미필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의무병역을 시행하는 국민개병주의 국가에서 말이다.

만약 이번에 군대 안 갔다 온 정운찬이 총리로 기용되면, 우리나라는 국가최고 요직인 대통령, 국무총리, 감사원장, 국정원장 모두가 병역미필자로 구성된다.

사실, 언제부터인지 좌․우 정권을 막론하고 내각과 국회로 진출한 자들의 병역면탈이 횡행되어 왔다.

본인이 아니라도 직계비속의 병역문제로 대선구도까지 결정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의무징병제 하에서 병역미필자의 고위직 기용은 사회적 박탈감과 불만감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얌체에게 자리와 그릇을 빼앗기는 심정”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일보』에서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병역면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중 상당수도 군대를 가지 않은 것을 보도했다.

물론 군대 못(?)간 “깊은 사연”이 있는 것인지, 군대 안 간 “화려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대부분 가난, 질병, 고령, 수형 등 구실이 많은데, 이를 따져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가난 때문에 군대 못 갔다는데, 그 이유도 따져보면 우습다.

그 가난한 기간 동안에 대학원을 어떻게 다녔나 하는 점이다.

군대 못갈 정도로만 똑 떨어지게 가난하고, 그 기간 동안에 대학원에 다닐 수 있을 정도로만 가난하지 않았다?

이거 제대로 믿기는가? 대학원 가는 게 군대 가는 것보다 생계부담이 적은 것인가?

질병도 보면 그렇다.

군대 안 갈 정도까지만 똑 떨어지게 장애가 되는 질병에 걸렸다.

병역 이외에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하는 데는 전혀 장애가 안 되는 질병에 걸렸단다.

병명도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하게 이름이 긴 질병이다.

그 정도의 첨단의술로 진단하면 우리나라에 정상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고령으로 군대 못 갔다는 것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병역을 기피하다가 고령이 된 것 아닌가? 왜 그리 말을 빙빙 돌리는가.

병역기피로 군대 안 갔다고 해야 옳은 말 아닌가?

결국 병역미필 사유가 “진실이면 하자”이고 “거짓이면 사기”라는 것이 된다.

지금 정부는 병역기피에만 정확하게 해당하는 희한한 특수질환 장애자만 골라서 모였나?

뭘 자랑할 땐 건강 과시하며 멀쩡한데, 병역 얘기만 하면 전부 한 맺힌 불구자인가.

아무리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한들 대통령, 국무총리, 감사원장, 국정원장 모두가 병역미필자로 구성된다면 이걸 뭐라고 해석해야 하나.

‘우연’이라기보다는 ‘성향’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오죽하면 군 출신이 아닌 국방차관이 국방장관을 무시하고 지 맘대로 예산을 삭감요청하고, 대통령은 그런 하극상을 저지른 국방차관을 비호하고 국방장관을 경질하는 사태가 벌어진단 말인가.

어쩌면 예전에 육사-비육사 출신 간 갈등, 장성-영관 출신 간 갈등 같은 것은 사치였는지 모르겠다.

더욱 양보하여 장교-사병 출신 간의 갈등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병역필과 미필 간의 갈등도 초월하여, 이젠 아예 병역미필자가 판을 치는 세상이니 말이다.

징병제 국가의 경영이 병역미필자의 판단으로 운영되는 이런 꼴을 언제까지 보고 살아야 하나.

미국은 아예 병역여부를 초월하여 역대 대통령의 75%가 장교출신이요, 참전여부로 다투는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참전여부와 장교출신은 고사하고 김영삼 이후 75%가 병역미필자라는 점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간간히 장애인 관련 보도를 보면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장애인들이 정상인들만 가능한 군복부가 부러운 나머지 일부러 군부대 행사에 가서 사격을 해보는 장면이었다.

정상인 친구들과의 대화중에 괜히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나 경험 얘기에서 소외되는 게 싫어서일 게다.

그게 정상인과의 소통을 위한 그들의 노력인지 모르겠다.

참고로 필자는 흔한 소총수에 지나지 않는 육군 병장 출신이다.

아들 녀석들 쳐다보며 병역문제를 생각하면 손해 아니라고 여기는 부모가 있을까마는 그나마 “너희들은 정상인이기 때문에 군대 가야 한다.”고 멍청하게 가르치고 있다.

모병제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