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지도층이 워낙 썩다보니… ....... 裵今子
(조선일보 2003.02.09)
요즘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은 우리나라가 도덕이 무너지고 정신가치가 밀려나는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한다. 정치적 사건에서부터 사회현상에 이르기까지 도덕성의 타락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대북 비밀 송금사건의 경우도 그렇다.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속이고, 대통령과 측근이 밀실에서 온갖 불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향해 총칼을 겨누고 있는 북한에 엄청난 돈을 갖다 바치고, 이것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계속 거짓말을 하고 은폐하였다.
대통령 비서실장 박지원씨는 국회에서 선서까지 한 후 “1달러도 준 일이 없다”고 했었고, 감사원의 감사로 일부 실체가 드러나자 대통령은 통치행위라면서 수사를 못하게 하였다. 이런 행태로 대통령은 스스로 도덕성과 자신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다.
우리의 성매매산업의 규모가 나라의 농림어업 분야 총생산 규모와 맞먹는 24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보도방과 인터넷 등을 통한 성매매, 청소년의 원조교제 등의 성매매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인데도 이 정도다. 전국은 불륜장소로 둔갑한 러브호텔로 뒤덮였다. 성매매와 불륜행각이 창궐하고, 향락과 쾌락문화가 만연되면서, 성도덕 불감증과 에이즈 등이 급속히 확산되고, 가정이 붕괴되고 청소년 비행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한 외부 환경에서의 공해문제에는 많은 관심을 가져왔지만, 정작 우리 내면의 정신타락으로 초래되는 의식차원의 질적인 저하, 도덕성의 타락에 대해서는 무감각해 졌다. 일반 국민들도 도덕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부추긴 전국 도박판 열풍은 어떠한가? 현 정부가 1998년 6월에 설립 허가한 강원랜드, 2002년 12월에 허가한 로또복권은 전국에 도박의 광풍이 불게 하고 있다. 사행심과 한탕주의가 팽배하고, 로또복권 발행 이후로 기부까지 줄고 있으며, 카지노·경마 등 정부가 허가한 도박으로 가정까지 파괴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아무리 수입금을 공익사업에 사용한다 해도 국민의 정신을 타락시키고 건전한 근로의식을 무너뜨리고 도박중독으로 가정까지 파산시키는 돈을 재원으로 한다면 이는 얼빠진 정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고지도자에서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는 부정직함과 도덕성의 타락, 물신주의와 한탕주의가 팽배하는 원인은 이 땅에 오랫동안 부패와 비리가 만연되고, ‘원칙과 정도’가 실종된 정치사회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계층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층·상류층·지식인·언론인 등 소위 ‘사회지도층’이다. 역대 대통령과 측근들이 저지른 탐욕과 부도덕한 모습들이 국민들에게 끼친 폐해는 너무나 크다. 독재정권과 투쟁하다가 인권대통령으로 취임한 대통령마저 그 자식들과 측근들이 보여준 행태는 군사정권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국민들에게 더 큰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오죽했으면 김수환 추기경이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의 도덕성 회복이란 매우 간단한 문제입니다. 대통령이 처먹지만 않아도 우선 국민에게 버림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친인척 모두 처먹지 말아야 하며, 그를 당선시키는 데 기여한 모든 자들이 처먹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했겠는가?
최고지도자들이 썩고 거짓말하는데 어떻게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가 성산업이 번창하고 도덕적 타락이 만연한 데는 사회지도층 남자들이 향응 접대문화에 길들여져 있으며, 성적서비스를 받는 것에 죄의식은 커녕 부끄러움조차 없는 자들이 수두룩 한 것도 큰 원인이라고 본다. 언론도 말로만 도덕적 타락현상을 개탄할 것이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당장 성적 서비스와 연결된 업소 출입을 삼가는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공중파 방송은 저질 프로그램을 청산하는 혁신을 단행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새 정부가 진정 강한 국가건설, 부패 없는 사회 구현을 생각한다면 그 어떤 물질적 힘보다 강한 도덕성과 정신적인 가치를 우위에 놓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裵今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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