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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검찰] ‘견제와 균형’ 통해 권력남용 제한

미국 등 선진국 검찰의 권한은 우리처럼 막강하지 않다. 보통 수사권은 경찰 등 일선 수사기관에 있으며 기소독점권을 행사하지도 않는다.그러나 현직 대통령을 조사하고 전직 총리를 구속하는 등 그 사법처리의 강도는 우리와 비교되지 않는다.

◆미국/ 수사권 분산… 검사, 기소권도 없어

▲ 미국검사들이 지난 11월 한 테러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클린턴만큼 검찰에 시달린 대통령은 없다. 우선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을 파헤친 켄 스타 특별검사가 떠오른다. 하지만 클린턴은 다른 연방검사의 수사대상이었다. 1996년 대선 자금 불법모금과 관련, 2000년 4월 백악관에서 4시간 동안 연방검사와 FBI 요원들의 조사를 받았다. 물론 그 자리에는 백악관 법률고문과 클린턴의 개인 변호사들이 배석했다. 클린턴은 그 전에도 연방검사의 조사를 받았다.

고어 전 부통령은 불교사찰의 불법 선거자금 모금행사 참석 등에 연계돼 재임기간 동안 다섯 차례나 연방검사의 조사를 받았다. 이처럼 미국 검찰은 권부의 상징인 백악관까지 철저하게 수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연방검사는 모두 94명이다. 이들이 전국 50개주를 지역별로 나눠 관할하고 있다. 알래스카 같은 작은 주는 연방검사가 한 명이고 캘리포니아 같은 큰 주는 4명이다. 이들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임기는 대통령과 같은 4년이다. 그리고 대부분 공화당 또는 민주당원들이다.

언뜻 생각하면 연방검사들은 자신을 임명해 준 대통령에게 철저히 복종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연방검사들은 검찰총장으로 불리는 법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지만 상당한 재량과 자율성을 누리고 있다. 법무부는 연방검사들을 관할하기 위해 소규모의 국(局)을 두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관할하는 연방검찰청이 규모가 제일 큰데 연방검사보 350명, 지원인력 350명 등 모두 700여명의 보조인력을 두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각 주(州)별로 주 검찰총장과 주 검사를 두고 있다. 미국은 거의 모든 정부 조직이 연방과 주별로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방검사는 연방법과 관련된 사항들을 처리한다. 주 검사는 대부분 선출직으로 당적(黨籍)을 갖고 있으며 선거를 통해 주민에게만 책임을 진다. 이들이 당리당략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지만 다음 선거를 생각하면 함부로 처신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법률 해석과 공소 유지 등이 주임무

미국의 검찰(연방, 주 포함)은 한국 검찰과는 사뭇 다른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수사를 하지 않는다. 연방정부나 주 정부의 법률 해석과 법 집행, 공소 유지, 연방정부와 주 정부를 원고와 피고로 하는 민사사건 담당 등이 주 업무이다. 검찰이 기소 독점권을 행사하지도 않는다. 기소는 민간인들로 구성되는 대배심(Grand Jury)이 결정한다. 검사는 대배심을 소집, 특정 사건의 수사 사항을 설명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크기는 하지만 기소권이 검사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서 수사는 대부분 각종 연방기관과 주 경찰이 검사의 지휘없이 독자적으로 담당한다. FBI는 법무부 소속으로 2만5000여명의 직원이 200여 종류의 각종 연방범죄를 수사한다. 법무부 산하에는 이밖에 연방마약국(DEA), 이민조사국(INS) 등이 있다. 재무부 소속인 관세청, 국세청, 화폐조사국 등도 일부 수사기능이 있고 우편조사국과 해안경비대도 활약하고 있다. 주에는 경찰과 고속도로 순찰대가 있고 카운티(우리의 군에 해당) 단위로 내려가면 주민들의 직선으로 선출되는 보안관(sheriff) 등 여러 명칭의 경찰이 있다.

이처럼 미국에서 수사권은 여러 기관에 분산돼 있고 견제와 균형이 유지되고 있어 어느 한 기관에 의한 수사권 남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감청이나 수색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반드시 검사를 통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검사의 간섭이 필요할 뿐이다. 기소는 검사를 통해 대배심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검사의 영향을 받는다.

◆일본/ 수사는 경찰 몫… 검찰은 문제점만 지적

▲ 일본 검찰 수사관들이 1998년1월26일 대장성 전,현직 관료의 '과잉진압'사건과 관련하여 대장성에 대한 압수수색을 위해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일본에서도 검찰은 무서운 존재다. 특히 과거 현직 총리까지 잡아넣었던 록히드 사건 등으로 감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권력’이다. 그러나 일본 검찰은 생각보다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의 수사를 경찰이 하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은 검찰과는 별도로 독자적인 수사권을 갖고 있다. 수사권 외에 체포ㆍ압수ㆍ수색ㆍ검증 등의 영장 청구권까지도 경찰이 자체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일본 법률은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있어 상호 협력해야 한다’는 선언규정까지 두고 있다. 각 지방 경찰청 소속 경찰들은 독자적으로 사건을 인지해 수사하고 종결까지 한다.

물론 인권 보호 측면에서 검찰 권한이 경찰을 통제한다. 경찰은 자신이 수사한 모든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해야 하며 검사의 지휘ㆍ지시가 있을 경우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검사는 자신에 속한 사법경찰에 대한 징계 및 파면소추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찰 수사의 문제점만 지적할 뿐 ‘이래라 저래라’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검사가 자신에게 올라온 경찰의 수사 보고를 피의자측에 흘렸다가 옷을 벗는 일도 있었다. 후쿠오카 지방의 한 고등법원 판사가 바람을 피워 판사부인이 그 사실을 알고 전화로 200여회 상대 여성을 협박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를 수사했고 해당 검찰청 차석(次席) 검사에게도 보고했다. 이 검사는 자신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사에게 그같은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를 눈치챈 경찰이 자신들을 지휘하던 검사를 은밀히 수사, 증거를 확보하는 바람에 검사는 최고검찰청 조사를 받고 쫓겨났다.

일본에서는 지난 20년간 검사가 참고인 등을 폭행한 사건이 세 건 있었다. 세 명 모두 유죄판결이나 정직처분을 받고 사표를 냈다. 1999년에는 도쿄 고검장이 술집여성과 눈이 맞아 지내다가 언론에 들켜 버렸다. 당시 최고검찰청은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처분 사안은 아니지만 청렴해야 할 검찰의 신뢰를 손상시켰기에 엄중한 주의처분을 받을 만하다”며 사실상 그를 ‘잘라 버렸다’.

이같은 검찰의 철저한 자정(自淨) 노력이 검찰이 국민적 신뢰를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홍콩/ 염정공서가 월권행위 엄중 감시

홍콩에서는 검찰이든 경찰이든 어느 특정 기능의 독점적 권한행사를 찾기가 힘들다. 염정공서(廉政公暑:부패추방위원회)가 각 기관의 월권(越權)행위에 대해 항상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다. 염정공서가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 투입되는 곳은 행정장관, 행정회의자문위원회, 입법회, 검찰, 사법부, 언론 등 광범위하다.

검찰 역시 과도한 권한을 행사했다가는 염정공서에 의해 조사당하고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최근 홍콩 검찰은 홍콩 거주권을 주장하는 중국 본토인들에 대해 지나친 기소권을 행사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들 중국인은 명백히 홍콩인의 가족들이고 홍콩에 건너와 10년 이상 살면서 홍콩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이들을 무차별 구속하고 심지어 중국으로 쫓아버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 권한남용이라는 거센 비난이 뒤따랐다.

홍콩 율정사(律政司:법무부) 조직에는 특이한 신분의 공무원들이 있다. 자문변호사들이다. 이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율정사 사장(법무부 장관)이나 고위직 검사 대부분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는 있지만 이들이 수사를 할 때에는 변호사들과 권한남용 여부를 상의해야 한다.

홍콩 검찰은 율정사 사장의 지휘를 받는다. 사장은 수사에 전권을 갖는다. 그러나 율정사 사장 역시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사건 즉 논쟁의 소지가 있는 안건에 대해서는 소속 변호사와 협의해야 한다. 수사상 증거가 충분한지, 증거가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정부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미리 가늠하기 위해서다.

홍콩 검찰은 검찰권을 행사할 때 고위층의 지시ㆍ압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수사철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만에 하나 상급자가 영향을 미칠 경우 즉각 염정공서에 보고되고 염정공서는 수사에 착수한다.

이런 영향 탓인지 홍콩사회에서 검찰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검찰권 남용, 검찰기능 비대 등의 비판 목소리를 듣기 힘든 것은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는 서구식 법ㆍ제도 때문이다.

(워싱턴=주용중 조선일보 특파원 [email protected]) (도쿄=권대열 조선일보 특파원 [email protected]) (홍콩=이광회 조선일보 특파원 [email protected])
2002.11.21. 17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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