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의 판세를 읽다 보면 권력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고 잔인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한때 막후 실력자로서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캐스팅보드를 쥐고 양 김을 대통령으로 만든 김종필은 두 명의 대통령을 만든 영광도 누렸지만 두 번의 쓰라린 배반을 통해 아프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박빙의 표차와 막판에 가서 합의한 경선룰에 포로가 되어 탈락한 박근혜도 모든 것을 승복하고자 했지만 현 정권이 박근혜의 수족을 자른다며 공천학살을 감행하여 무자비한 수모를 당해야 했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권력은 둘이서 나누어 갖기 불가능한 속성을 가졌다고들 한다. 국정 동반자라는 립서비스를 받고 난 후, 곧이어 공천학살을 단행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결코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권력을 쉽사리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했었다. 지켜보는 국민들이 이러할 진데 박근혜는 오죽했을까?


박근혜는 참 진중하다. 공천학살과 갖은 도발에도 묵묵부답 거기에 산이 있듯 항상 있어야할 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도 않았고, 또는 자신의 세력을 동원하여 반격하지도 않았다. 때론 초연하게 강태공이 세월을 낚기 위하여 낚시를 하듯 그렇게 그곳에서 관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침묵과 조용한 행보, 그리고 잠룡으로서 자신의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때 조조의 득세로 굴욕의 세월을 감내해 가던 유비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길을 걸었다. 언젠간 반드시 정적이 도발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명분을 쌓아나갔다.


때가 무르익자 예견된 도발은 단행되었다. 세종시를 필두로 진검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이미 양 진영은 너무 멀리 왔다. 건너지 못하는 루비콘 강를 건너 버리고 말았다. 어느 쪽이든 밀리면 끝장이라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펼치는 진검승부처럼 보인다. 또한 양 쪽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엊그제 비록 정치성향은 달라도 정동영, 노영민 등이 지원하며 행자부 차관을 지내는 등 민주당 청주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친한 동창친구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교외에 거주하는 관계로 급하거나 날씨가 궂을 때는 택시를 대절하여 청주 시내로 나간다. 오고 갈 때 택시를 타면 어쩌다 정치이야기가 나오고 자연스럽게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의 이야기가 오가는 적이 많다.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개인택시 기사님 왈 “차기에 박근혜가 나오면 무조건 찍어 주겠다”라고 하면서 너무도 단호하게 주장한다. ‘세종시 문제로 이기고 지는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싸움을 하는 수준과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도 밉지만 무엇보다 싸움을 하는데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름도 꽤나 유명한 친이계 진영의 인사들이 돌아가며 박근혜를 매몰차게 인신공격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전직대통령까지 나서서 망령을 떤다고 한동안 얼굴을 붉히며 목청을 높여 갔다. 또한 TV방송과 신문을 앞세운 언론플레이를 하는 현 정권의 박근혜에 대한 엄청난 공격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세력을 동원하여 세 겨루기도 하지 않고 그저 홀로 당당하게 맞서는 박근혜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먹었으며 한편으로는 강력한 정치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보았다는 것이다.


한때는 그 개인택시 기사님도 연약한 여자가 무슨 정치를 하느냐며 갸날퍼 보이기 만한 박근혜가 대통령 감으로서 못마땅했지만 세종시 문제로 현 정권과 맞서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 '박근혜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민심이 아닌가.


문득 세종시 전투에서 박근혜가 패하더라도 잃을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홀 단신으로 살아있는 권력의 모든 파상공격에도 결코 흔들림 없는 박근혜의 카리스마가 여성 지도자라는 핸디캡을 멋지게 날려 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세종시 덫에 걸린 쪽은 누구일까?


어차피 미래권력 박근혜의 존재는 처음부터 현 정권이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며 적당한 시기에 제거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마침 시기가 무르익어 세종시라는 핵폭탄을 준비하였지만 그 폭탄을 박근혜에게 던지지 못하고 이제 친이계 진영 안방에서 터지게 되었다. 정말 멋진 박근혜라 아니할 수가 없다. 결국 세종시 대첩에서 박근혜가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최진무(citiangel)


출처 : 조선일보 토론마당 최진무(citiangel)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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