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라도 오면 학교에서 돌아올 버스가 끊기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걸어서 와야 할 아이들 걱정에 일손이 잡히질 않아요. 촌에서 살면서 아이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기분입니다.” 경북 성주군 가천면 용사리 권영철씨(44)는 지난 10일 태풍 에위니아로 집중 호우가 쏟아지자 고교 1년생인 아들의 하교길이 마음에 걸렸다.
권씨는 결국 자신의 1t트럭을 몰고 학교로 갔고, 때마침 방향이 같은 중·고생 6명을 더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권씨의 차는 폭우속에서 논두렁에 빠지고 말았고 권씨는 인근 마을로 트랙터를 구하러 달려갔다. 하지만 트럭에 타고 있던 중학 1년생 왕모군(13)은 친구 2명과 함께 차에서 내려 자신의 집까지 1.5㎞ 정도를 더 걸어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농·어촌지역 학생들의 하교길은 늘 안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농촌 지역 학생들은 방과후 버스를 이용한다고 해도 하차후 인도와 차도의 구분도 없는 한적한 길을 성인들의 보호없이 다녀야 한다.
농촌 인구가 줄면서 학교들이 통폐합되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의 위험한 하교길은 더 길어졌고 그만큼이나 사고의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경기북부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 12일 경기 양주시 백석면에서 변을 당한 백석중 2년 박모양과 1학년 남동생 남매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폭우로 불어난 도랑을 함께 건너던 길이었다.
지난 10일 전북 남원시 운봉읍 주촌리에서는 초교 1년생인 전모군(7)이 태풍으로 단축수업을 받은 뒤 학교버스에서 내렸으나 보호자 없이 500여ｍ가량 떨어진 집으로 혼자 걸어가다가 급류에 휘말려 실종됐다.
수해 때마다 농촌지역 학생들에게 이같은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도시와 달리 버스 등 대중교통편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이를 보완할 지원책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에선 스쿨버스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버스에서 내려서도 먼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야 한다.
참교육학부모회 대구지부 김경련 사무국장은 “간혹 교사 또는 학부모자원봉사들이 승차도우미로 나서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농촌지역 파출소 관계자들은 “폭우 등 기상재해 때가 아니더라도 순찰을 돌다 학생들이 인도 구분이 없는 농촌 도로를 걸어 등·하교하는 것을 보면 사고가 날까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섬 지역 학생들의 통학로도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20t이 채 안되는 통학선을 타고 매일 10~30분씩 풍랑과 파도를 넘어 등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문중 김모군은 13일 “205일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선 태풍주의보가 내리기 전엔 위험을 무릅쓰고 배를 타고 등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성주 가천 중·고 한일환 교감(60)은 “학생 수가 적고 서로 사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 농어촌특성과 예산문제 등으로 큰돈이 들어가는 개선책은 어렵겠지만 기상재해가 닥칠 때 학생 수송을 위한 버스 운행을 늘리고 승차도우미를 배치하는 등의 안전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재해시 농어촌 지역 학생 안전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제주도 이창근 방재대책과장은 “재해시 학생 등하교 안전 관리는 현재 학교장이나 교육감의 재량으로 돼있다”면서 “지역 사정에 맞는 학생 안전관리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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