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KAL)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국정감사에 이어 노조에서도 이를 놓고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 항공우주산업본부의 KAI 인수에 대해 '새우가 고래를 삼킨 꼴'이라며 정부개입설과 함께 특혜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훈련기와 전투기를 생산하는 KAI는 지난 99년 10월 대우중공업(대우종합기계)과 삼성항공(삼성테크윈), 현대우주항공(현대자동차)이 각각 28.1%, 채권단에서 15%의 지분으로 설립된 회사다. 창원과 사천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현재 종업원은 3200여명 규모다.
대한항공은 최근 "대우종합기계의 지분을 인수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KAI 지분의 과반수 이상을 취득해 KAI의 경영권을 행사하기로 삼성·현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현실화될 경우 대한항공은 민간 항공 부분과 군수 부분을 모두 독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강창희 한나라당 의원이 '특혜' 의혹을 제기했으며, KAI 창원공장 노조(위원장 류재선)도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의혹을 제기했다.
부실기업이 흑자기업 인수?
99년 1100억원의 적자로 출발했던 KAI는 2002년 165억원, 2003년(6월 현재) 54억원의 이익을 낸 흑자기업이다. 이는 설립 첫 해 500여명의 구조 조정, 그리고 임금 동결과 성과급 반납 등을 통해 이뤄낸 성과다.
올해는 284억원의 당기 순이익 달성이 예상되며, 2005년에는 증시 상장도 계획하고 있다. KAI는 종합 항공 완제기 제작업체로서 KT-1과 T-50 개발뿐만 아니라 이를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미국 보잉사 항공기 종합 설계능력인증도 부여받은 상태다.
반면 KAI 노조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대항항공은 올해 6월 현재 경상이익 266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노조는 "대한항공 항공우주산업본부의 경우 매출은 KAI의 1/5 수준이며, 1인당 매출 역시 KAI의 1/3 수준에 머무르는 부실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KAI 노조 류재선 위원장은 "대한항공은 영업 이익으로 이자 부담도 감당하지 못하는 등 재무 건전성이 열악하다"며, "항공기 업체로서 핵심 경쟁력이 취약해 기체 부품을 하청 생산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류 위원장은 또한 "경영 악화에도 불구하고 KAI의 지배주주가 되려는 것은 경영권 확보 후 부실 상태인 항공우주 부분을 통합하여 부실을 떠넘기려는 의도"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홍보실 관계자는 "부실로 따지면 KAI의 정도가 더 심하다"면서, "작년 이후 KAI가 흑자라 하지만 이는 영업 이익보다는 자산 매각에 따른 결과"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겉으로 보면 KAI가 흑자가 쌓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매년 누적적자가 쌓이고 있는 형편"이라며 "대한항공이 올해 상반기는 사스와 이라크 전쟁 등으로 침체를 겪었지만, 하반기에는 나아질 것"이라 말했다.
정부, 과연 개입했나
▲ KAI가 개발한 T-50
ⓒ KAI홈페이지
이런 가운데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강창희 의원은 "대한항공의 KAI 지분 인수에 대해 산자부 장관과 차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장과 과장들이 인수를 진행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강 의원은 "8월 28일 한국기술센터에서 열린 산업자원부 주재 회의에서 채권단은 대한항공의 KAI 지분 인수에 대해 장·차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과장이 로비를 받아 인수를 진행하고 있는 듯하다고 주장하는 등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의원은 대한항공에 "산자부에 대한 로비가 있었는지, 채권단의 불신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 밝히라"고 요구했다.
당시 대한항공측은 "1년 전부터 대우종합기계측에서 지분인수 요청을 해왔던 사항으로 특혜는 아니다"면서 "민간기업간 지분 양도양수에 정부의 특혜란 있을 수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 류재선 위원장은 "장·차관이 모르는 상태에서 산업자원부 국·과장이 '주인을 찾아준다'는 논리로 대한항공의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왜 무리한 인수를 정부가 나서서 추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문했다.
류 위원장은 "1999년 항공 빅딜 때는 대한항공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KAI의 경영이 호전된 상황에서 지분 참여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측 관계자는 "대우종합기계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하고 대주주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채권단과 협의하고 있는 과정"이라면서, "지분 인수는 기업체간 거래행위로 봐야지 정부가 나서서 공기업처럼 움직일 수는 없다"며 정부개입 의혹을 일축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 역시 정부개입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산자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개입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상황파악 차원에서 대한항공의 대우종합기계 지분인수 과정에 대해 살펴본 적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KAI 인수와 관련된 내용을 장·차관 모르게 실·국에서 추진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면서, "지난 7월부터 진행상황을 장관께 보고했으며, 한 두 푼 하는 회사도 아닌데 실.국장의 말을 듣고 기업이 움직일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21일 대우종합기계 이사회 분수령
KAI 창원공장 노조는 대한항공이 KAI의 지배주주가 될 경우, 구조조정에 의한 대량실업을 우려하고 있다.
류 위원장은 "경영주체가 대한항공이 될 경우 동반부실을 초래해 KAI 자체와 종업원 개개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칠 수 있다"면서,"통합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핵심설계인력의 이탈로 T-50 등 국가 핵심 전력증강사업과 해외수출의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앞으로 청와대와 산업자원부를 상대로 대한항공 KAI 인수반대 목소리를 높여나갈 계획이다.
KAI 창원공장 노조와 사천1공장 노조, 사천1공장 노사협의회는 우선 오는 21일로 예정된 대우종합기계 이사회를 주목하고 있다. 대우종합기계 이사회가 대한항공의 KAI 인수와 관련, 어떤 입장을 취할지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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