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가 "당장 갚을 돈이 없다"고 하자, 그로부터 약 열흘 뒤 은행으로부터 '환 손실액을 대(代)지급했으니 대금을 갚지 않으면 연 17%의 배상금리를 물릴 것'이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이 날아들었다. 또 '예금계좌는 자동으로 지급 정지되고 3개월 경과 시 예금계좌를 상계(相計)해 대지급금을 회수할 수 있으며 신용에 좋지 않은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전씨는 "돈을 빌려 쓴 것도 아니고, 펀드에 가입했을 뿐인데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며 "은행 측이 제안한 대출금리가 연 8%여서 결국 주위에서 돈을 빌려 갚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신용에 좋지 않은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은행 측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연합회 이광진 변호사는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려면 은행연합회 전산망에 입력시킬 관련 코드가 있어야 하는데, 선물환 손실의 경우 등록요건에 맞는 코드가 없어 등록이 불가하다"고 말했다. 결국 고객이 돈을 갚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은행이 돈을 받기 위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압박을 가한 것이다.

◆저리 대출로 어르고…

일부 은행은 역외펀드 선물환 거래 손실금을 갚지 못하는 고객에 대해 CD금리 수준의 저리(低利) 대출을 주선해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과의 고통 분담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객이 선물환 손실금을 물어내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는 은행이, 대지급금을 대출로 전환해 준 뒤 신용불량 등의 압박을 가하려는 속셈"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B은행에서 배포한 '선물환특별자금대출 질의응답'이란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선물환 관련으로 본 대출(CD금리 저리대출)을 받고자 하는 고객에게 특별히 주지시켜야 할 것은 무엇이 있나요'란 질문 항목에 '대출(이자포함)을 3개월 이상 연체한 고객은 신용거래정보에 연체 정보로 등재가 되는 사실을 고객에게 꼭 알려주셔야 합니다'라고 답변이 되어 있다. 답변 말미에는 다른 항목에는 없는 '매우 중요함'이란 단서가 괄호 안에 표기돼 있었다.

◆세게 반발하면 물러서고…

선물환 손실 때문에 손실금을 물어내게 된 대부분의 고객들은 처음엔 분개하다가도 '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등의 말을 듣고 대부분 손실금을 직접 혹은 은행 측이 제안한 대출을 통해 갚고 있다.

은행의 불완전 판매 등을 이유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회원수 약 1800명의 한 인터넷카페 운영자는 "소송 참가자 대다수가 펀드 환매 등을 통해 이미 손실금을 은행에 물어준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은행은 '세게' 반발하는 고객에 대해선 각종 당근을 제시하며 한 발 물러서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모(62)씨는 2007년 부인이 아들과 부인 본인 명의로 역외펀드에 약 3억원 정도 가입했다가 작년 11월 C은행으로부터 환 손실이 났다는 얘기를 처음 듣고 선물환 가입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가 "선물환을 통한 헤지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상품 계약 자체가 무효"라는 식으로 은행 측의 방어논리를 조목조목 따지자 처음엔 '대지급금을 갚지 않으면 신용에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으르던 은행의 태도가 돌변했다. 이씨는 "은행 본사 펀드대책팀에서 수차례 찾아왔고, 은행 측에서 선물환 관련 손실액을 10%까지 깎아주고, 손실액에 대해선 무이자 대출을 해주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말했다.


선물환(先物換)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미리 정한 환율로 미래의 일정 시점에 외화를 사고파는 계약. 역외펀드도 환 헤지를 위해 선물환을 이용하지만,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일 경우 원금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펀드 가입자가 '생돈'으로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메워 넣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작년 11월 말 현재 국내에서 판매된 역외펀드의 순자산액은 약 2조2400억원으로, 이 중 60% 정도가 선물환 계약을 맺은 것으로 금융감독원은 추정했다. 업계에서는 해외펀드의 손실률 등을 감안하면 역외펀드 자금 중 2조원 이상이 선물환 계약을 맺은 것으로 추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