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형사소송법을 열심히 공부해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변호사조차 사기를 당한다면?
서울지방변호사회 웹진 ‘시민과 변호사’ 3월호에 소개된 김상영(41·사시41회) 변호사의 체험담이 네티즌의 눈길을 끈다. 김 변호사는 이 웹진에 기고한 “아는 분의 소개로 찾아왔습니다”에서 어처구니없이 사기당한 사연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김 변호사에게 “아는 분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다”는 A씨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개업한지 얼마 안된 어느 봄날. 수십억원에 이르는 상속재산 때문에 가족들 간에 다툼이 생겼으니 상담을 받겠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속으로 ‘얼씨구, 큰 건이로구나’ 하며 급히 상속 관련 이론과 판례를 점검했다.
다음날 사무실로 찾아온 A씨는 자신의 이력을 거창하게 늘어놓았다. “한미 양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둘 다 따고 UN에서 근무하다가 재정경제원에 특채돼 귀국했는데, IMF가 터져 강경식 부총리가 물러나는 바람에 함께 퇴직했다”는 소개에 김 변호사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A씨는 한술 더 떠 “아버지가 외교관이라 일찍부터 영어에 익숙하다”고 자랑했고 김 변호사는 그저 ‘이 사람 대단하구나. 부잣집에서 똑똑하게 태어났구나. 부럽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증거를 확인해보니 승소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A씨는 “선임료는 충분히 드릴테니 대신 빨리 끝내달라”고 부탁했고, 김 변호사는 속으로 ‘이 사람 인간성도 좋고 스케일도 큰가보다’ 하며 통 크게 수임료를 제시했다. 기분좋게 약정서를 작성하고 서명까지 확실하게 받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A씨는 “실수로 지갑을 놓고 나왔다”면서 “내일 착수금 보낼 때 같이 송금할테니 기름값하고 식사비 좀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내일이면 거액의 착수금이 내 통장으로 들어올 건데 까짓 거…’란 생각에 김 변호사는 선뜻 수십만원을 건네고 말았다.
이상한 마음이 든 것은 A씨가 떠나고 한참 뒤였다. 사무실 직원에게 공인회계사협회에 A씨의 이름이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시켰다. “그런 사람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약정서에 적힌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김 변호사는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신문에서 그와 비슷한 수법으로 사기를 치던 사람이 지방에서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며 “(동일인라면) 지금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변호사·세무사 등을 상대로 비슷한 짓을 저지르고 있지나 않을까,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까 걱정”이란 우려로 글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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