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건설교통비리 > 서울 도심 ‘막개발’

서울시가 지난 수십년 동안 견지해온 도심 개발제한을 풀며 도심 곳곳에 3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추진해, 전문가와 학계·시민단체들로부터 유례없는 ‘도심 막개발’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이는 시 산하기관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이 마련중인 ‘도심부 발전계획안’이 도심 건축물 높이를 현재보다 더 제한하도록 하고 있는 것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확인돼, 시가 도시의 장기발전보다 개발에만 치우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20일 “‘도심 재개발 구역에서 주상복합 건물을 지을 경우 건물 높이를 현재 규정보다 1.5배 높일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도시환경정비 기본계획 변경안’ 공람을 30일까지 실시한다”고 밝혔다.

시 계획대로라면 현재 50m(10층 안팎), 70m(17층 안팎), 90m(20층 안팎)로 높이 제한을 받던 곳이 각각 75m, 105m, 135m(35층 안팎)까지 높아진다. 도심인 중구 장교·명동 일대와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는 최고 135m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경복궁 옆에는 중구 다동의 한미은행 본점(106m, 20층)만한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고, 종묘와 창덕궁·창경궁 주위에도 75m 높이의 고층건물이 들어서게 돼 고궁을 완전히 가리는 것은 물론 도심에서는 남산이나 북악산도 볼 수 없게 된다.

더욱이 시의 높이 제한 완화 계획이 건설업계에 미리 알려지면서, 일부 업체는 이미 올해 초 중구 회현동과 청계천 옆 중구 황학동 등에 30층이 넘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축하려는 계획을 세워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상구 경기대 교수(건축학부)는 “높이 제한을 1.5배로 풀어준다면 머지 않아 2배, 3배로 풀어야 할 것”이라며 “서울시 계획은 소수 주상복합아파트 거주자의 조망권을 위해, 다수 시민들의 조망권을 뺏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대로 재개발이 진행된다면 종로에서는 남산을 볼 수 없고,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도 건너편 북악산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서울시의 이번 변경안은 시정연이 도심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2002년 10월부터 연구를 시작해 오는 6월 완료 예정인 ‘도심부 발전계획안’의 높이 규제 계획과도 배치된다. 시정연은 ‘도심부 발전계획안’에서 도심에서 내4산(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을 잘 볼 수 있고 청계천 주변의 녹지대를 살리기 위해 중구 장교동(현재 90m)의 경우 건축물 높이를 50~70m로 하는 등 일부 지역은 지금보다 도심 건축물 높이 제한을 한층 강화했다.

때문에 시 도시계획 관계자들도 ”시가 발표한 계획은 시정연이 제시한 도심부 발전계획안의 뼈대와 정반대”라며 “어느 쪽 기준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경실련은 “서울시가 앞장서 주상복합건물의 높이 제한을 완화해주는 것은 일방적으로 개발업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며 곧 성명서를 내기로 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이희정 아주대 교수(건축학부)는 “몇년에 걸쳐 시정연과 학계, 시민들 사이에서 공론화를 거쳐 도심부 높이 기준에 대한 합의점을 찾았는데, 이제 와서 시가 불쑥 기준을 뒤집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도심 공동화를 막고 도심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높이 제한을 푸는 것이지 막개발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윤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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