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친박 표적사정, ‘설마’ 했는데...

편집국장 고 하 승

설마 했던 일들은 모두 사실일지도 모른다.

지난달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들에 대한 사정기관의 뒷조사 의혹에 이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감시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올 때만 해도 ‘설마’ 했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주장은 한나라당 친박계 이성헌 의원에 의해 제기됐다.

친박 측은 또 "같은 계파 소속의 의원 6명이 사정 당국의 조사 대상에 올라가 있으며, 나머지 친박 의원들이나 보좌진에 대해서도 기업에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했는지 광범위한 내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제보를 여러 차례 받았다"며 표적사정 의혹을 제기했다.

박 전 대표는 물론이고 친박 의원과 심지어 그 보좌진들까지 광범위하게 표적사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표적사정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극구 부인해 왔다.

그런데 이제 청와대의 주장은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

최근 친박계 김영순 송파구청장이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김 구청장은 지난 1월 29일 올림픽파크텔에서 에세이집 '최초는 짧고 최고는 길다'(위즈덤하우스)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 재선을 향한 집념을 불태워 왔었다.

그런데 지난 2일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는 이날 ‘6·2지방선거 불출마를 발표하며’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민선 5기에는 새로운 비전과 열정, 능력을 가진 새사람이 또 다른 모델을 만들어 내도록 길을 터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불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으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실 현직 구청장의 불출마 선언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대체 그는 왜 불출마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를 궁금해 하던 즈음에 송파구 관내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을 지낸 김종현씨가 전혀 뜻밖의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18일 한 언론사 토론마당에 “김영순 송파구청장의 불출마 선언은 분명히 내가 김 구청장을 고발한 사건과 모종의 연루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김영순 송파구청장이 3월 2일 불출마선언을 하자 그동안 무려 33개월을 끌어오던 나의 김 구청장에 대한 고발사건이 3월 8일자로 대검찰청에서 기각처리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즉 현 정권이 한나라당 내 친박 성향인 김영순 송파구청장을 내치기 위한 소재, 즉 일종의 빅딜의 소재로 김씨의 사건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그는 “만약 지금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이 서슬 퍼런 공안정국에서 나는 벌써 감옥을 가도 열댓 번은 더 갔다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김씨 고발 사건과 김 구청장의 불출마 선언이 연계됐다는 직접적인 물증은 아직 없다.

친박계 김 구청장의 불출마 선언을 이끌어 내기 위해 사정기관이 김씨 사건을 가지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도 아직은 없다.

하지만 사정기관들이 박 전 대표의 뒤를 캐고 다니는 모습이나 친박계 의원 및 보좌관들까지 광범위하게 내사를 한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김씨의 추론에는 상당한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 민주당에 입당한 정동일 서울 중구청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관내에서는 친이계 나경원 의원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구청장 후보를 내보내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 정동일 구청장의 출마를 봉쇄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문대로 공권력은 정 구청장의 숨통을 바짝 조여 왔다.

단지 작년에 '자율형 공립고 선정'이라는 문자를 중구민들에게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은 두 차례나 중구청을 압수 수색하는 등 그야말로 구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러다 전국의 한나라당 지방자치단체장들 후보들은 모두 ‘이비어천가’를 부르는 친이계 인사들로 교체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스럽다.

사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재판 역시 표적수사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 아닌가.

지금까지 몇 차례의 공판이 있었지만, 검찰의 유일한 기소 근거인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고 횡설수설이다.

심지어 곽 전 사장은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는 등 오히려 검찰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4월 9일에 있을 선고는 무죄로 판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와 유사한 표적 수사가 곳곳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러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20년 전으로 후퇴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