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위기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권투선수가 한방의 KO편치에 쓰러지는 것같지만 게속되는 잽을 허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진맥진하여 무너지는 것이다. 일격의 순간에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누적된 피로감이 쌓여서 갑자기 쓰러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담은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가 30일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하는 등 영토주권과 연관돼 매우 민감한 사안인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발언 논란은 꾸준히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독도문제는 내달 7일 국민소송단이 요미우리신문을 상대로 제기한 1심 판결에 따라 재차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또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종시 문제가 가장 큰 변수지만 3월 들어 외압설 등 선거판을 뒤흔들 대형 이슈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민심을 겨냥한 여야간 정치 공방전이 격화되고 있다. 여당은 야당의 파상적인 정치공세에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입장이지만 한나라당은 ‘이러다간’하며 안절부절이고, 민주당은 ‘이렇게만’ 동남풍이 불면 순조롭게 이긴다는 느긋한 표정이다.

한나라당의 '무상보육'과 민주당의 '무상급식' 이라는 정책프레임 대결에 이어, 여권에 악재가 꼬리를 물고 있다. 먼저 지난 12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주교회의는 “4대강 사업이 이 나라 전역의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17일 동아일보사 월간지 [신동아]가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의 “(MBC 인사는) 큰 집으로 (김재철 사장을) 불러다가 쪼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라는 발언을 보도했다.

18일엔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최근의 사법제도 개선 논의는 사법부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진행방식 자체만으로도 매우 부적절하다”며 한나라당의 법원제도개선안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나라당은 “정치적 배경이 일절 없다”고 해명했지만 사법부 반발 움직임이 부담스러운 기색이다.

21일엔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자승 총무원장을 만나 ‘현 정권에 비판적인 스님을 강남 부자 절에 그냥 놔두면 되겠느냐’고 말했다”고 주장해 일파만파로 파문이 커지고 있다. 그야말로 여러 사람의 입을 막기가 어려운 중구난방(衆口難防)이 되고 있다.

이 네 가지 사안은 발생 장소는 정치권 밖이지만 야당 지지자들을 자극할 만한 이슈들로 내용상 권력 핵심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관련 당사자들이 종교계·사법부·방송 등 여론 전파력이 높은 집단으로 전선이 확대되는 것도 여권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여기에 위기관리의 문제점을 드러낸 천안함사건까지 터져 총체적 국가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해군 초계함 침몰은 아직은 '태풍의 눈'처럼 숨죽이고 있지만, 언제 어느순간 소용돌이 바람으로 정치권을 강타할지 모른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김연아선수를 안으려고 시도하는 듯한 동영상을 유포한 네티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또 한나라당 대전 유성구 정당선거사무소가 김연아 선수 사진과 '김연아 선수, 멈추지 않는 열정이 있었기에 세계의 최고가 되었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세로 10여ｍ 크기의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사진이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퍼지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각종 `설화(舌禍)`와 천안함 사고 등 돌발사건이 잇따르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3년차 증후군`이 지적되고 있다. 세종시가 집안싸움으로 발목이 잡혔다면 4대강 사업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에게 일격을 당한 형국이다. 천주교 주교회의에 이어 불교 조계종마저 4대강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놓아 양대종교와 대립하게 됐다. 특히 정권초기 불교탄압 논란에 이어 안상수 대표의 `설화`로 불교계와의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천주교와도 등을 질 경우 4대강은 물론 향후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된다는 평가다.

여권내 잇단 악재는 이 대통령이 새해 예산안과 세종시, 4대강 등 주요 정책 추진과정에서 소위 역사적 소명의식에 바탕을 둔 선지자적 자만감으로 일관한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부작용이 임기 3년차를 맞아 레임덕현상과 복합적으로 맞물려 터져나온 ‘선지자적 소명의식의 반작용`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은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절대선이라는 기본인식에 따라 반대자들은 정쟁이나 일삼는 집단으로 매도했다. 소통과 설득을 위한 이 대통령의 행보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했다. 뒤늦게 천주교를 향한 설득에 나섰지만 설명과 설득의 대상으로만 접근해 그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북문제에 있어서도 햇볕정책을 백안시(白眼視)하고 강경일변도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호재를 만난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우룡 사태, 명진 스님 사건 등은 각각 게이트로 발전할 수 있거나 종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만한 사건”이라며 쟁점을 4월 국회는 물론 지방선거까지 끌고 간다는 계획이다(우상호 대변인). 특히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등 기존의 정책 이슈와는 별개로 여야 각 정파가 부분적 합종연횡을 시작하면서 지방선거 정국이 점점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양상이다.

합당까지는 아니지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등 야4당의 지방선거 후보 단일화 추진도 파장이 간단치 않은 변수로 꼽힌다. 현재 민주당내 반발등으로 단일화 논의가 잠정 중단된 상태지만 '정권 중간심판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야권 후보 단일화시 수도권 등에서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내달 9일로 예정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뇌물수수 재판도 파장을 가늠하기 어려운 복병 가운데 하나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5월23일)와 맞물릴 경우 선거판은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는 흔히 기(氣)· 세(勢) ·판(版) · 운(運)이 결정적으로 작용되는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고 한다. 선거의 달인(達人)이랄 수 있는 YS는 사석에서 ‘당선은 4할이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상대방의 실수‘라고 역설한바 있다. 역대 선거 결과가 대부분 상대방의 자살골에 기인하고 있음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한다. 그래서 투표를 최선보다는 차악의 선택이라고 한다. 이번 지방선건도 이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짜 위기는 인지된 문제점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덫에 있음을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치명적 위기는 자기 약점이 아니라, 강점에서 온다는 사실이다. 성공공식을 반복, 확대 활용하고 적용하다가 다른 부분에 소홀히 하게 되어 도리어 약점이 된다. 혹여 현 정권의 과거성과 중에 앞으로 발목을 잡을 것이 뭔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예의주시(銳意注視)해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교만하고 과욕을 부리면 오히려 화를 입는다는 겸수익(謙受益) 만초손(滿招損)을 강조하고 싶다. 정치인은 영원히 역사의 법정에 선 피고인이라는 겸손한 자세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스포츠서울닷컴>

[박종렬ㅣ가천의과학대학교 경영대학원장.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