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통령 각하께! - 'YS 충성편지 1탄'
"김 대통령 각하께 올립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복잡한 국내 정치 풍토 속에서 묵은 땅을 갈아엎고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 하나님이 맡겨 주신 개혁의 사명과 새 역사 창조사업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시겠습니까?"
권호경 목사가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직을 내팽개치고 CBS 사장으로 부임(94년 2월)한 지 6개월이 지난 94년 8월. 권호경 CBS 사장은 당시 최고 권력자인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 통의 사신(私信)을 보냈다.
이름하여 'YS 충성편지 1탄'이다. 구구절절이 CBS 40년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불초 본인도 CBS 사장에 취임한 이래 각하의 개혁정책보다 더 우선하는 시대적 사명은 없다는데 공감하고 저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각하의 뜻을 함께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선 CBS의 내부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간부사원의 재산을 공개했으며, 매양 정부 시책을 비판하면서 편견에 치우쳤던 프로그램들을 대폭 정비하고, 30년 동안의 오랜 전통을 이어온 CBS 논평 프로인 세상만사, 월요특집, CBS 칼럼 등은 작가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힘들다고 보아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했으며, 인사 이동을 통해 문민정부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진용으로 개편했습니다.
사회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정부시책과 동일한 노선을 추구한다는 시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마는, 이 길만이 CBS가 교회와 국민에게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 후략)"
권호경 사장의 정치권력에 대한 굴신(屈身)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 … 'YS 충성편지 2탄' - 권 사장은 가룟 유다?
권호경 사장은 이 땅의 민주세력과 한국교계가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염원하면서 한 목소리로 "대북지원 창구의 다원화와 민간단체의 주도"를 외치던 96년 8월, 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의 사신(私信) 한 통을 또 다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냈다. 주요 내용을 발췌해보면 이렇다.
"지난 7월 8일자 주신 서신을 반가이 받고 감히 각하의 국정운영에 만에 하나라도 참고가 되셨으면 하는 생각에서 북한 거주 동족 구호대책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동족 구호 대책은 일원화시켜야 합니다. … 집행 시에는 반드시 실무책임팀이 동반하여야 하며 이 실무팀 안에는 국가기관 요원이 고려되어져야 합니다."
"구호대책의 시기, 장소, 물량, 내용 등은 국민 안보의 책임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정보를 확보하고 있는 국가 기관 요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합니다. 북한의 책동에 이용당하지 않고 효율적인 북한주민 장기 구호대책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 점이 고려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통일의 산파역임을 자임해온 권호경 사장. 바로 그가 현직 대통령에게 "대북지원 사업은 일원화돼야 하며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주도돼야 한다"고 건의했다. 96년 총선 이후 김영삼 정부의 대북 정책이 보수 강경 기조로 돌아서자 그 같은 흐름에 편승해 민주세력과 한국교계의 통일의지와 민족애에 찬물을 끼얹는 의견을 올린 것이다.
'YS 충성편지 2탄'이 공개되자 교계의 한 지도자는 "당시는 한국교계가 한 목소리로 대북지원 창구의 다원화와 민간단체의 주도를 외치고 있을 때였는데 권호경 사장이 아주 은밀한 방법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그와는 정반대되는 건의를 올렸다는 사실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 반민족적, 반통일적, 반교회적 행위다."며 참담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 … 대통령각하에서 대통령님까지 - 'DJ 충성편지'
권호경 사장의 정치적 굴신의 끝은 어디일까? 권호경 사장은 정권이 바뀌자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이른바 'DJ 충성편지'다.
"대통령님께!
난국을 헤치고 제2건국을 위하여 나라의 초석을 다시 놓으시느라 노심초사하시는 대통령님께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중략)
저는 94년초에 대통령님께 CBS에 부임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올리고 94년 2월 18일부터 CBS에 봉사를 했습니다.
저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좋은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급변하는 방송 환경 속에서 기독교방송이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전직원이 일치해서 방송프로그램을 선교, 시사, 정보뉴스로 특성화 했고, 제작비가 많이 들고 다른 방송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 등을 전부 삭제하고 시끄러운 음악은 제외시켰으며 조용한 음악프로와 남북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찾아 방송해 왔습니다. ( … 후략 )"
5년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낸 'YS 충성편지 1탄'과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대통령에 대한 호칭이 '대통령각하'에서 '대통령님'으로 바뀌었을 뿐. 권호경 사장의 대(代)를 이른 권력 굴신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권호경 사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충성편지'를 보낸 것은 지난 99년 5월 CBS가 33일간 총파업의 진통을 겪고 난 직후였다. CBS가 사내문제로 파업을 한 것은 창립 46년만에 처음 있었던 일로, 당시 파업은 권호경 사장의 무능 경영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이를 의식한 탓일까, 'DJ 충성편지'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저의 부덕한 소치로 지난 한 달 동안 방송을 파업하게 되어 대통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송구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 중략)
노조는 임금협상을 하다가 갑자기 중앙노동위원회에 고발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안을 사는 어렵지만 수용했으나 노조는 거부하고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노조는 노동문제가 아닌 재단개혁과 사장 퇴진을 주장하며 불법파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 중략)
방송파업이 근 한 달에 이르러서 불가피하게 불법파업을 주도한 노조쟁의대책위원 등 23명 중 파업철회자 2명을 제외하고 면직처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 중략)
거듭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하게 생각하오며 하나님의 은총이 대통령님과 국가 대업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마치 철부지 아이가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듯, 혹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듯 파업상황을 미주알고주알 보고하고 있다. 언론사 사장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현직 대통령에게 이처럼 굴종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내야 한단 말인가?
◇ … "축 총선 승리" 화분 사건
4·13 총선을 석 달 가량 앞둔 지난해 1월 24일. 한겨레신문 2면에 컬러사진 한 장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총선을 앞두고 새 옷을 입은 집권 여당 새천년 민주당의 김옥두 신임 사무총장에게 배달된 축하 화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사진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화분이 하나 있었다. 그 화분에는 이렇게 쓰여진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축 총선 승리. 권호경 기독교방송 사장"
한겨레신문은 "언론사 사장의 덕담 치곤…"이라며 신랄하게 꼬집었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대변인 공식논평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고 CBS측의 해명을 요구했다. 45년 동안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어느 특정 정치권력에 기울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편에 서서 정론직필(正論直筆)의 길을 걸어온 CBS 직원들에게 참으로 치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도 권호경 사장은 공개사과와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노조 위원장에게 "'축 총선 승리 앙망(仰望)'이라고 쓸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그냥 '축 총선 승리'라고만 써 보냈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축 총선승리' 화분 사건 역시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권호경 사장의 정치권 줄대기와 정치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굴신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권호경 사장이 한국교회연합기관의 장(長)으로서의, 언론사 사장으로서의, CBS 사장으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보는가?
※ '충성편지' 전문은 C사모 홈페이지
www.cbslove.com를 참조
- CBS 살리기 운동본부
www.noj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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