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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바꾸는 강삼재> '가난한 선거' 약속 안 지켜
96년 총선 당시 언론 보도와 현재 드러난 상황 비교

손병관 기자 [email protected]

15대 총선에서 집권 신한국당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강삼재 한나라당 부총재가 940억원의 안기부 예산을 183명의 후보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 출두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아직까지 검찰과 강부총재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할 계제는 못되지만,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총선 자금에 대한 강 부총재의 태도가 5년 전과 비교해서 사뭇 달라졌다는 것이다.

경남도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씨는 경남종금 계좌에 입금된 940억원에 대해 "그땐 집권당이었고, 당시 가락동 연수원 팔아 마련한 돈도 1000억원이 넘었을 것이다. 지방선거 후 나에게 넘어온 돈도 엄청났다"고 말했다. 940억원이 안기부 자금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막대한 자금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5년 전에는 뭐라고 말했던가?

강삼재, "96년 총선은 가장 가난한 선거"

강씨는 1996년 3월8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이야말로 집권당 사상 가장 가난한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지구당에는 법정선거비용수준인 9000만원 정도 지원할 방침이다. 법대로 선거를 치르라고 강력히 지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이중 300억원 정도가 지구당에 지원될 것이라고 덧붙였다(96년 2월25일, 동아일보 2면).

그러나, 검찰에 따르면, 강씨는 1인당 5억 원 이상의 선거자금을 지원한 것이 돼 13, 14대 총선 당시 여당에 손색 없는 규모의 자금으로 선거를 치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에 와서 당시 강씨의 언급을 반추해 보면, 엄살도 보통 엄살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금 지원과 관련해 당시 수도권의 30, 40대 젊은 위원장들이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에게 돈 문제를 꺼냈다가 "전임위원장들이 돈으로 운영해 온 조직에 기대하지 말라"는 강총장의 질책으로 망신만 당했다는 후문(96년 3월14일 4면, 경향신문)이 전해져 오는 14대 총선은 구여권이 주도한 금권 선거가 여당의 승인이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이 같은 금권선거에 총선 후 야당의 반발이 이어졌다. 국민회의가 22일 "총선에서 신한국당 중앙당이 지원한 돈이 1000억원이 넘는다"며 "금권, 관권, 흑색선전 선거를 치르고도 이를 은폐 날조하는 구태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비판했다(96년 4월24일 4면, 동아일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국민회의가 신한국당의 총선 자금 규모를 추산해낸 방법은 알 수 없으나 이때 제시한 수치가 검찰이 밝힌 안기부 지원 자금 규모를 약간 상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당시 신한국당은 전혀 거리낌 없이 이를 정면으로 부인한다.

강총장은 96년 4월 23일 기자간담회를 자청, "중앙당이 지구당에 지원한 액수는 지역구당 1억원 안팎으로 300억원도 안 된다"고 300억 지원설을 거듭 주장했고(96년 4월 24일 5면, 한국일보), 야권의 부정선거 공세에 대해 '선거패배를 호도하기 위한 공세'라고 일축했다(96년 4월 23일 2면, 국민일보).

손학규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19세기 식의 날조·조작된 주장으로 구태를 되풀이하는 국민회의의 깊은 반성을 기대한다"고 가세했다(96년 4월 24일 5면, 한국일보).

중앙일보가 보도한 안기부 자금 리스트에 2억원을 지급 받은 것으로 나타난 손의원은 "전혀 기억이 없다. 중앙당에서 1000만원 단위로 지원 받은 적은 있지만, 모두 합쳐도 1억원이 안 되는 것으로 안다"고 변명하고 있다.

강삼재 씨는 같은 날 한술 더 떠 "선거운동 기간 중 후보들의 재정지원 요청이 쇄도했지만 들어주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금권선거를 했다니 억울한 생각마저 든다"고까지 말했다(96년 4월24일 4면, 동아일보). 이 정도의 연기력이면 강삼재 씨는 정치인이 아닌, 배우의 길을 걸었어야 했다는 아쉬움까지 남는다.

현재로서는 검찰의 '관련자 사법 처리' 방침과 한나라당의 '야당 탄압'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구여권이 당시 야당에 비해 압도적인 자금줄을 무기로 금권선거를 부채질한 것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강삼재 씨가 검찰 발표를 전면 부인하지 못하고 마산 시민들의 지역 정서를 자극하며 숨기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이회창, "96년 총선은 변화의 시작"

이번 사건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선거대책위 의장은 3월6일 선거대책기구를 발족시키며 96년 총선의 의의를 "과거와 같이 선악의 대결이 아니라 미래의 선택"이라고 규정했다. 이의장은 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우리의 선거운동 문화를 바꿔 보는 것"이라며 "먼 훗날 우리가 4·11총선을 돌이켜 볼 때 그때 그 선거가 바로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96년 3월 7일 4면, 대한매일).

5년이 지난 지금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당시 여당의 선거 책임자로서 자기 휘하의 당직자가 어떠한 출처에서 얼마 만큼의 선거 자금을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도 파악 못한 '허세'로 비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돌이켜 볼 때 당시 그가 구사했던 '미래의 선택', '변화의 시작'이라는 표현은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가?

이 총재는 11일 "우리는 결코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잘못이 있다면 그에 대해 국민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고 사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과거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행위'에 대해서 자숙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금은 '수신제가'를 할 시기이지, "우리의 지저분한 모습이 밝혀졌으니 이제는 니네들의 '진면목'을 보여라"라고 맞불 작전을 놓을 때가 아니다. 세인들의 눈에는 "좋은 게 좋은 것이니 과거의 비리는 묻고 보자"는 꼼수 이상으로 비치지 않을 것이다.

야당 안팎에서는 현정권의 떨어지는 인기와 영남 지역의 압도적인 지지를 근거로 "이총재가 반드시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한 상황인데, 5년 전 이총재를 '얼굴마담'으로 전락시킨 손아랫사람의 농간조차 다스리지 못한다면, 이총재가 대통령이 되어서 어느 누구에게 영이 서겠는가?

이총재가 구여권의 썩은 무리들을 도려내는 '변화의 약속'을 5년 뒤에나마 실천해 주길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3년전의 국민들은 '아름다운 원칙'을 지키겠다는 이총재의 '변화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 다시 이총재의 약속 이행 여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내려질 시점은 이제 채 2년이 남지 않았다.

2001/01/12 오전 7: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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